[사설]백씨 사망에 국가가 사과하라는 유승민, 이게 보수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백남기 농민 사망은 공권력이 과잉 대응해서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기 때문에 국가가 사과하고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왜 보수 혁명인가’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하고 엄단해야 하지만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면 이 사건은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새누리당이 백씨 사인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과 달리 ‘공권력의 과잉 진압’을 사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상식이자 보수 본연의 가치에 합당한 견해이다.
그런데도 그의 발언이 신선해 보이는 이유가 있다. 보수의 참모습과 거리가 있는 작금의 새누리당 행태 때문이다. 보수는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며 안정 속의 발전을 추구한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공익을 위한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정직과 공명정대 등을 추구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백남기씨 사인을 두고 무슨 논란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백씨는 경찰의 시위 진압 도중 물대포를 맞아 숨졌다. 사인이 명백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야당이 그의 죽음을 이용한다고 비난했다. 어제도 “거대 야당이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한 (백씨의) 부검 실시에 반대한다”며 야당의 특검법안에 반대했다. 사망원인을 알 수 없으니 백씨를 부검하겠다는 수사기관의 비상식을 통제하고 바로잡기는커녕 도리어 뒷받침하고 부추기고 있다.
새누리당의 비상식이 도를 넘은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행태는 더욱 보기가 민망하다. 특히 친박을 대표하는 몇몇 의원들은 몰상식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려 애쓰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와 공안 논리에 의지하며 억지주장을 하는 정당을 비상식적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언정 보수정당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형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을 규명하자는 시민적 요구를 배척하고 의혹을 덮으려는 것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태도일 뿐 민주주의에 토대를 둔 보수적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보수는 혁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보수가 혁명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유 의원의 문제 제기는 그런 수준의 변화를 하지 않는 한 보수라는 이름을 내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 정치에서도 온전한 보수가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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