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방민호의 현대문학 명장면 20](2)20세기 문단 대부·인종차별주의자…‘두 얼굴의 시인’을 논하다
김성곤 | 문학평론가·한국문학번역원장ㆍ에즈라 파운드, 위대한 시인인가 국가의 반역자인가
■문단의 대가, 파시즘 옹호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는 20세기 초 유럽 이미지즘 운동의 선구자였고, 저명한 시인 T S 엘리엇을 키워낸 스승이었으며,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런던의 출판사에 데뷔시켜준 20세기 서구 시단의 대부였다.
사실 파운드가 출판해주지 않았다면 당시로서는 이상한 연애시였던 엘리엇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파운드가 대폭 수정·편집해주지 않았다면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파운드가 첫 시집을 런던에서 출간해주지 않았더라면 로버트 프로스트 역시 시인의 길을 걷지 못했을 수도 있다. 파운드는 제임스 조이스의 기념비적 대작 <율리시즈>도 문예지에 연재하도록 도와주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후견인 역할도 했다. 당시 파운드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단의 대가였고, 영미 작가들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그의 문학사적 위치와 공적에도 불구하고 파운드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물질주의적인 자본주의와 천박한 마르크시즘 둘 다 싫어했던 파운드가 이탈리아로 가서 무솔리니와 파시즘을 옹호했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을 비난하는 방송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파운드는 유대인을 싫어했고, 가난한 유럽 국가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던 세기말의 미국 사회를 비난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예술적 숭고함을 찾아서
파운드는 모더니스트 시인답게, 자신이 살았던 20세기 초를 저속하며 무질서하다고 느꼈고 대신 숭고함과 질서가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고전시대에 강한 향수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화, 중국과 일본의 고전문화에서 현대가 결여하고 있는 예술적 숭고함과 총체성을 찾으려 했다. 그런 그에게 세기말의 혼란이나 무질서, 또는 물질주의적 자본주의나 전체주의적 마르크스주의는 경박하고 저급한 현대문명의 상징일 뿐이었다. 그의 그런 태도는 그가 평생 써온 장시 ‘캔토스’에 잘 나타나 있다.
자신의 시대를 혼란과 무질서로 파악했던 파운드는 파시즘에서 총체성과 질서회복의 가능성을 보았다. 당시 서구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천민자본주의와 체제 전복적인 마르크시즘이 서구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파운드보다 훨씬 더 온건했던 엘리엇조차도 당시 첨예했던 파시즘과 마르크시즘의 대립과 상호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파시스트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립은 둘 다 비이성적이다, 그러나 나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파시즘에 더 이끌린다는 것을 고백하며, 감히 내 독자들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선호가 전적으로 비이성적인 것만은 아닌 이유는 파시즘의 비이성이 마르크시즘의 비이성보다는 내 비이성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즉 당시 파운드 같은 엘리트 모더니스트 작가에게는 파시즘과 마르크시즘, 또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라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고, 파시즘이나 고급문화가 공산주의나 저급문화보다는 그래도 더 나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파시즘으로의 일탈
예술가로서 파운드는 자신이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 ‘휴 셀윈 모벌리’에서 자신의 좌절과 환멸을 기록하고 있다. “삼년 동안이나 자신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죽은 예술인 시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했다/ 예전의 ‘숭고함’을 되찾으려고/ 그건 처음부터 틀린 일이었다./ 물론 그것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만, 반은 야만적인 나라에서/ 그것도 뒤늦게 태어나서/ 도토리에서 백합꽃을 피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제우스에게 대들었다가 죽은 커페니우스나, 가짜 미끼를 문 송어 꼴이 되고 말았다.”
파운드는 시인으로서는 소설의 시대였던 19세기 빅토리아시대의 세계관에 좌절했고, 지식인으로서는 소수인종들의 이민으로 인해 저속해지는 미국 문화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1차 세계대전도 자본주의자들의 전쟁으로 보았고, 그래서 미국이 싫어서 건너갔던 영국도 부정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갔다. 그 결과는 파시즘으로의 일탈이었다. 그러나 같은 모더니스트 작가였지만 헤밍웨이는 파시즘에 반대해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의 파시즘에 대항해 싸운 좌파들의 편을 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1945년 미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하자, 파운드는 체포되어 미국으로 압송되었고, 국가반역죄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전시에 국가반역죄는 사형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은혜를 입었던, 그리고 당시 유명 시인이던 로버트 프로스트가 나서서 파운드를 적극 변호, 뉴저지주의 성 엘리자베스 정신병원 감금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 에피소드는, 시 세계가 전혀 다른 두 시인이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의리를 지켰는가를 보여준 문학사의 한 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런던에서 파운드는 프로스트가 건네준 시를 읽고 자신의 시 세계와는 전혀 달랐지만, 그 재능을 인정해 출판사에 소개해주었다. 프로스트는 잘못 나섰다가 자칫 자신이 오해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전혀 다른 파운드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1958년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파운드는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살다가 1972년에 타계했다.
■문학적 성취와 정치적 과오 구분
에즈라 파운드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 문단은 그의 문학적 업적과 정치적 과오를 구분해서 평가한다.
예컨대 유대계 연극평론가 라이오넬 에이블은 “시인으로서의 파운드는 칭송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를 쏘아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했으며, 문학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도 “파운드가 위대한 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였고 파시스트였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였고 파시스트였기 때문에 위대한 시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즉 작가의 정치적 과오를 이유로 그 작가의 작품까지 폄하하거나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파운드가 아직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던 1949년에 미국 의회도서관은 파운드에게 유명한 볼링겐 문학상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문학적 업적을 인정했다. 헤밍웨이도, 파운드의 정치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문학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의 경우는 영국 시인 월터 새비지 랜도를 연상시킨다. 랜도는 ‘75세 생일을 맞아’라는 감동적인 시를 썼다. “나는 아무와도 다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다툴 가치가 없었기에/ 나는 자연을 사랑했고,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다/ 나는 인생의 모닥불에 두 손을 녹이고 있다/ 그리고 불이 꺼지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 랜도는 성격이 괴팍해 많은 사람들과 평생 다투면서 살아왔고, 빌린 돈을 갚지 않아 고소를 당해 두 번이나 이탈리아로 도망을 갔다.
그렇다면 그가 쓴 이 시도 허위로 보고 읽지 않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의 성격이나 사생활과는 별도로 이 시가 주는 감동적인 성찰과 삶에 대한 관조를 인정해야만 할 것인가?
음악에서는 바그너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바그너는 인간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돈을 빌리면 갚는 법이 없고, 습관적으로 친구들의 아내를 유혹했으며, 극도로 이기적이었고 과대망상에 빠져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칠 때까지 자기자랑을 해댔다.
그런 사람이 작곡한 음악이 과연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영혼을 구할 수 있는가는 많은 논란이 되어왔다. 더구나 바그너의 음악은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들이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답은 없겠지만, 사람들은 바그너의 음악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물론 위대한 작가가 되려면 먼저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인격적 미성숙자나 정치적 편견을 가진 작가가 쓴 작품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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