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토성의 위성 타이탄/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2. 7. 10:21

과학

과학일반

‘인터스텔라’가 웜홀 갈 때…옆에 더 살기 좋은 별이 있었다

등록 : 2015.02.06 15:28 수정 : 2015.02.06 20:02

미국 항공우주국이 우주선 카시니호가 찍은 타이탄의 여러 이미지를 모자이크했다. 북극의 메탄 호수에 멀리 떨어진 태양빛이 변사되어 반짝거린다. 나사 제공

[토요판] 별 / 토성 위성 타이탄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이 납치당한 바로 그 별
풍요로운 메탄의 바다에서 태양은 정말 눈부실까

▶ 지난 연말, 낙조를 보러 강화도에 다녀왔습니다.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변할 때쯤 바다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었고 태양이 반짝, 보석처럼 빛나다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 지구 밖 어디에서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내심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태양계 내에 딱 한 군데, 볼 수 있는 곳이 있답니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입니다.

모두가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며 토성 근처에 열렸다는 웜홀과 항성간 여행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적어도 한 명의 천문학자는 딴생각을 했다. ‘바로 그 근처에 살기 좋은 데가 있는데 굳이 왜….’ 물론 살기 좋다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였다. 쿠퍼나 브랜드 박사(영화 속 두 주인공)가 산성의 화학물질을 견딜 수 있는 우주복이나 감압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잠시도 살 수 없는 유독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평균기온이 영하 180도로 조금 춥기도 하다. 그래도 이곳은 모래와 바위로 이뤄진 땅이 있고 강과 산(또는 언덕)이 있으며, 액체로 된 비가 내리고 두터운 대기가 있는 어엿한 ‘미니 지구’다. 이 천문학자(심채경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연구원)는 “튼튼하게 지은 온실만 있어도 사람이 충분히 살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천체, 태양계에 생명이 거주할 곳이 있다면 화성과 함께 첫손에 꼽히는 유력 후보지, 토성의 제1위성 ‘타이탄’이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웜홀 갈 때
그 옆에 더 살기 좋은 별 있었다
모래언덕, 갈색 먼지, 호수와 공기
그 공기는 ‘유기물’인 메탄…
생명체가 살 수 있다면 이곳이리라

‘은하철도999’ 철이·메텔이 간 별
척박한 환경, 인간이 개척했지만
과학기술로 망친 ‘방종의 별’
타이탄 호숫가 비치는 강렬한 태양
지금 인류는 타이탄에 사로잡혔다

메텔이 납치당한 바로 그 별

타이탄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천체다. 우선 거대하다. 토성에서 가장 큰 위성이자 태양계 전체에서 두번째로 큰 위성이다. 지구의 달도 태양계 위성 가운데에서는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데, 타이탄은 달보다도 1.5배 더 크다. 타이탄은 ‘공기(대기)’도 있다.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생명체가 만약 타이탄에 산다면, 적어도 숨은 쉴 수 있다는 뜻이다. 태양계 위성 가운데 대기를 가진 것은 타이탄이 유일하다.

물론 타이탄의 대기는 지구와 성분이 전혀 달라서, 사람이 그냥 숨을 쉬었다가는 단번에 질식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처럼 질소를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 것은 같은데, 산소는 거의 없고 대신 메탄이 일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매립장에서 발생하는, 혹은 소가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할 때 나온다는 바로 그 메탄이다. 메탄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호의적인 대접을 못 받는 물질인데, 천문학자에게만은 대접을 톡톡히 받는다. 유기물이기 때문이다. 유기물은 다른 행성에서 조금만 검출돼도 언론이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봤다’며 호들갑을 떨어주는 물질이다.

타이탄에는 이런 유기물이 심지어 흔하다. 대기 중 메탄 비율도 1~5%로 상당히 높고, 액체 상태의 메탄은 지면을 적시고 호수를 가득 메울 정도로 넘쳐난다. 호수는 이름이 붙은 것만 35개인데, 말이 좋아 호수지 큰 것은 한반도 전체 넓이의 거의 두 배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실제로 타이탄의 가장 거대한 호수 몇 개에는 ‘바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지난해 말에 나온 새 연구 결과를 보면, 이들 ‘바다’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은 수심, 아니 메탄심(深)이 170m에 이른다. 메탄 호숫물은 마치 지구의 바닷물처럼 증발해 구름을 이루고 비를 뿌리기도 하는데(물론 차가운 메탄 비다), 태양계 천체 가운데 이런 일종의 기상현상을 보여주는 것도 지구 외에 타이탄이 유일하다.

타이탄은 왕년의 만화영화 팬에게도 익숙하다. <은하철도999> 제3편이 타이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에서 타이탄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으로, 살인과 약탈, 납치마저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무자비한 세상이다. 철이와 메텔은 이 위험한 곳에 굳이 착륙했다가 바로 총에 맞고, 메텔은 납치를 당한다. 물론 철이는 언제나처럼 용감하게 메텔을 구해내지만.

하필 왜 타이탄이 이런 방종의 천체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단서는 있다. 만화에서 타이탄은 수로와 분수가 넘치는, 물이 매우 흔한 풍요로운 환경으로 묘사된다. 메텔은 “원래 척박했던 환경을 인간이 과학기술을 이용해 바꾼 결과”라고 설명한다. 혹시 위성 하나쯤은 쉽게 바꿔버릴 수 있다는 인간의 지나친 자신감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그릇된 생각으로 잘못 이어진 건 아닐까(이반 카라마조프의 우주시대 재림을 다룬 것 같은 이 우화는, 2000년대에 한국의 강에서 이뤄진 거대한 토목사업을 떠올리게도 한다. ‘수로’와 ‘분수’라니!).

타이탄에 처음 착륙한 주인공 철이가 처음 한 말도 의미심장하다. 철이는 메텔에게 “(타이탄이) 갈색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라며 놀라워한다. 이때 갈색은 황량하고 삭막한 풍경의 대명사가 아니다. 실제로 타이탄을 외부에서 관측하면 독특한 오렌지색 혹은 밝은 갈색의 천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색은 타이탄의 대기에 포함된 특이한 성분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대기에 황사 같은 미세한 먼지가 가득 차 있어 생기는 현상이다.

갈색 천체를 만든 ‘톨린’의 수수께끼

이 먼지의 성분은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알고 싶어도 직접 가서 대기를 떠올 수는 없으니 수많은 행성과학자들은 애간장이 탔다.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칼 세이건도 몹시 궁금했는지 이 미지의 물질에 ‘톨린’(tholin)이라는 이름까지 붙이고 정체를 기다려왔다. 톨린의 성분은 2000년대에 직접 탐사선이 가서 관측을 해도 오리무중이었다. 대기의 기체 성분은 다 측정이 됐는데, 톨린은 고체라 측정이 잘 안됐던 것이다. 남은 유일한 방법은 이 대기에 빛이 부딪힐 때 나오는 복잡한 파장을 분석해 먼지 물질의 종류를 추측하는 것인데(실제로 행성과학에서 많이 쓰이는 연구 방법이다), 기존에 알던 지식을 아무리 활용해 풀어도 실제 관측 결과와 잘 맞지 않았다. 이 분야는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 국내 타이탄 전공자 1호인 심채경 박사와, 김상준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가 상당히 유력한 후보 물질을 제안한 상태다.

타이탄은 탐사선이 직접 착륙해 관측한 극소수의 천체 중 하나다. 위성 가운데에서는 달과 함께 유일하며, 행성까지 포함해도 화성에 이어 세번째다. 최근에는 유럽우주기구(ESA)의 로제타-필레호처럼 작은 우주 바윗덩어리(혜성)에 착륙하는 진기명기를 보여준 탐사선도 나왔지만, 이 진기명기의 원조는 타이탄을 탐사한 카시니-하위헌스호다. 카시니-하위헌스호는 2004년 토성 궤도에 도착했고, 곧바로 착륙선인 하위헌스호를 타이탄의 두터운 대기로 떨어뜨렸다. 하위헌스호는 내려가면서 대기 성분을 분석하고 지상의 영상을 촬영해 지구로 보냈는데, 덕분에 타이탄의 지표면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어진 카시니호(지금도 토성 주위를 돌고 있다)의 레이더 탐색 결과까지 더해져, 메탄 강과 호수가 풍부한 지금 우리가 아는 타이탄의 모습이 완성됐다. 이 연구 결과는 2007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공개됐다.

타이탄의 대기 성분은 지구로 치자면 쓰레기매립장에서 발생해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메탄이다. 액체 상태의 메탄은 지면을 적시고 호수를 가득 메울 정도로 넘쳐난다. 나사 제공
일취월장하는 천문학 관측기술과 그로 인한 지식 때문에 우리는 인류가 우주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 마스’만 켜도 화성의 그늘진 부분까지 다 지도로 볼 수 있으니 화성 정도는 다 안다고 믿고, 안드로메다를 찍은 놀라운 영상을 본 적 있으니 이웃한 은하도 대충 안다고 생각한다. 이는 착각이다. 인류가 직접 가 본 천체는 달이 유일하며, 탐사선으로 간접 ‘터치’를 해 본 천체도 금성과 화성, 목성, 타이탄, 그리고 혜성과 소행성 한두 개에 불과하다.

주름 같은 지형, 사구와 흡사한 모래언덕

타이탄은 그중 가장 먼 천체다. 다른 가까운 천체를 놔두고 타이탄을 연구하는 이유는 그만큼 흥미롭기 때문이다. 지구와 비슷한 풍경과 기묘한 대기환경은 천문학자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이라는 점도 흥미를 자극한다.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이 발달한 나라들은 대부분 타이탄 연구도 활발하다”며 “연구가 활발하고 관측자료가 쌓이다 보니, 외국에서 이제는 천문학자 외에 지질학자나 지구과학 전공자 등도 연구에 참여할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1월1일 <네이처> 표지를 장식한 타이탄 연구 역시 지질학과 관련이 깊다. 타이탄의 지표면 중 호수나 강이 없는 곳 일부에는 멀리서 보면 꼭 주름처럼 보이는 지형이 있다. 이는 일종의 모래언덕으로, 지구의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사구와 아주 흡사하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발표 자료를 보면 이 사구는 높이가 100m, 너비는 1~2㎞이고, 길이는 수백㎞까지 이어진다. <네이처> 표지는 지구의 모래언덕과 레이더로 찍은 타이탄의 모래언덕을 합성한 것이었는데, 둘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이번 연구는 이 언덕이 생기는 조건을 지구에서 실험한 것이다. 연구에는 기계공학자도 참여해, 타이탄 연구는 이제 공학의 영역으로도 넓어졌다.

마지막으로, 최근 찍은 낭만적인 타이탄 사진 한 장을 소개하고 끝내기로 하자. 지난해 10월 미국 항공우주국은 타이탄의 북극 부근을 근적외선으로 촬영한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짙은 먼지로 덮인 대기 사이로 타이탄에서 가장 큰 호수가 보이는데, 한 귀퉁이가 태양빛에 반짝 빛나고 있다. 호수 테두리도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어 마치 아름다운 반지 같다. 만약 타이탄의 호숫가에서 이 풍경을 본다면, 서해 바다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던 낙조를 봤을 때만큼이나 감동적이지 않을까.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마 타이탄의 태양은 그리 강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호수를 반짝이는 빛은 미약하리라. 하지만 어쩌면 이 작은 낙조에도 우리는 눈이 부실지 모른다. 마음이 출렁이는 사람에게는 달빛마저 눈이 부신 법이니까. <은하철도999>에서 총에 맞은 철이의 목숨을 구한 노파는 “타이탄은 태양빛이 강하다”며 철이에게 모자를 건넸다. 만화를 볼 땐 비과학적이라고 웃고 말았는데, 사진을 보고 나자 웃을 수만은 없게 됐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그 누가 말을 할 수 있으랴.

윤신영 <과학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