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athan Haidt

진보와 보수, 상대방 악마화해선 안돼/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3. 08:41

문화

학술

“진보와 보수, 상대방 악마화해선 안돼…그게 독선 줄이는 길”

등록 : 2015.03.02 20:00 수정 : 2015.03.02 20:00

‘바른 마음’ 저자 조너선 하이트 인터뷰

“의견이 다른 진보와 보수가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않고 서로의 ‘바른 마음’을 이해한다면 독선을 줄일 수 있다.”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2012년 미국에서 <바른 마음>(원제: The Righteous Mind·사진)을 펴내며 미국 국제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뽑은 ‘세계 100대 사상가’에 선정된 바 있다. ‘바른 마음’은 인간의 판단과 집단적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도덕’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2008년 테드(TED) 강연에서 이에 기반해 ‘진보와 보수의 도덕적 뿌리’를 설명하면서 ‘스타 사상가’로 떠올랐고, 같은 해 미국 대선 당시 보수층의 도덕심을 고려하는 쪽으로 민주당 대선 전략 수정을 권고하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기도 했다.

‘도덕이 인간 판단·집단행동 결정’
스타사상가 떠오른 도덕심리학자
한국계 아내 등 가족과 함께 방한

“세월호 참사와 처리과정서 드러난
한국사회 진영간 의견 대립 ‘극심’
젊은 세대-50대 견해차도 커
더 벌어지면 재앙 불러올 수도”

“진보-보수, 상대 ‘신성모독’ 삼가되
이해와 상호보완 통해 함께 살아야”

조너선 하이트 교수가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세월호를 상징하는 리본을 배경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는 “한국 세월호 전복사고 소식을 처음 전해듣고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얘기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올해 연구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아시아 6개국을 순회하고 있는 그를 지난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아내는 한국계이고, 나는 유대계로서 양가 모두 아이들에게 헌신적이고 교육을 중요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정환경도 비슷해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 덕분인지 이번이 첫 방한이지만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적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 세대차가 엄청난데, 이는 최근 부를 축적한 아시아 각국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전쟁으로 어린 시절 안보와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부모 세대와 번영과 안전을 당연히 여기는 자식 세대간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 한국어판(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책이 출간되기 닷새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미국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고, 사고 원인과 처리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견해가 나뉘었다는 점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이트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를 다룬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논문을 보여주며 “한국의 경우 2004년 총선을 기점으로 진보와 보수 양진영의 의견 대립이 극심해졌고, 젊은 세대와 50~59살의 견해차가 심각하게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만약 이전에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지금처럼 분위기가 극단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양당제 의회 구도에서 점점 벌어지는 정치적 견해차가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바른마음>을 구상한 이유에 대해 “왜 (미국) 민주당이 서민층을 화나게 했는지 도움을 주려고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본인이 좌우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당시엔 좌파쪽에 속했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서 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끔찍하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지 부시의 승리는 세계의 비극으로 번진 재앙이었다. 부시가 싫은 만큼 앨 고어, 존 캐리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왜 민주당은 쉽게 이길 수도 있었던 선거에서 패배했는지 기가 막혔다. 민주당 후보는 연설을 하거나 정견을 밝힐 때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키거나 영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조너선 하이트 교수의 저작 <바른 마음>.
그는 보수파가 인간 도덕성의 5가지 기반인 배려,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 등을 모두 잘 이용하는 데 견줘 진보파는 충성심, 권위, 고귀함과 관련된 상대방의 도덕적 기반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보았다. 한마디로 “공화당원은 도덕심리학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민주당원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남북 대치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의 남침 가능성 자체가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에 쉽게 작용하는 ‘방아쇠’가 된다. 진보주의자는 왜 평화롭게 살 수 없냐고 주장하지만,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그 자체가 대단히 화가 날 만한 주장이 된다.”

하이트 교수는 ‘이성은 정당화의 근거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라고 본다. 직관이 전략적 추론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지난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가 ‘이성중독증’이라며 진보진영의 한계를 설명한 것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시했다.

“물론 권위에 대한 도전은 올바른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신성 모독’은 삼가야 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노인 공경과 남북 대치상황은 신성한 가치다. 예컨대 북한에 대한 개방정책을 하자고 할 때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안심시킨 뒤에 얘기해야 한다.”

최근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 여행길도 미국과 다르게 발전한 독특한 자본주의의 양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2017년에는 <자본주의에 관한 세가지 이야기>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자체를 (필요)악이라고 보는 좌파와, 그 반면 시장에 개입하는 정부가 악이라고 보는 우파의 대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 연구를 토대로 착취가 아닌 신뢰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예정이다.

하이트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을 향해 성경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에 성공한 ‘롤 모델’이고, 민주주의를 향상시킬 의무가 있다.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한다. 서로를 악마화하는 것을 누그러뜨리고 정견을 달리하는 형제자매에 대한 이해와 상호보완이 필요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