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핵심은 시민적 연대와 평등/ 김재홍/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29. 12:35

문화학술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핵심은 시민적 연대와 평등”

등록 :2015-05-28 19:46수정 :2015-05-28 20:52

 

김재홍 박사는 “정확한 번역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선명하게 밝히며 주석을 다는 행위까지 모두 번역자의 관점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유진 기자
김재홍 박사는 “정확한 번역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선명하게 밝히며 주석을 다는 행위까지 모두 번역자의 관점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유진 기자
지금 집필중 ⑥ 김재홍 전남대 사회통합지원센터 부센터장
내로라하는 서양 고전철학 연구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 전문가인 김재홍 박사. 최근 서구 정치학의 뿌리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정치학>(폴리티카) 번역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해 부랴부랴 만났다. 여러 판본을 대조해 탈문 되고 찢긴 부분들을 점검해가며 완성한 번역 분량만 원고지 3000장, 지금 작업중인 주석과 해제에서 방대한 설명을 덧붙일 예정이라서 관련 학계의 관심이 높다.

김 박사는 이달 초 문을 연 광주 전남대 사회통합지원센터 부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센터장은 김상봉 철학과 교수다.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를 위한 ‘상생 사회·경제적 모델’을 만들기 위해 광주시가 설립해 전남대에 위탁한 이곳에서 철학자는 무슨 일을 할까?

“사회통합모델을 만들면서 인문학적, 철학적 접근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우선은 회사 경영에 책임지는 윤리적 존재로서 ‘노동자’에 대한 윤리학적, 인문학적 고찰을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상생의 윤리학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정치학과 거리가 멀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윤리학(에티카)과 정치학이 뗄 수 없는 관계였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 개념은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이었다. 그는 “어떤 삶이 좋은 삶,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는 <정치학>에서 “‘좋은 국가’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으로 곧장 이전되었다.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폴리스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라고 했고, 이 명제는 ‘인간은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다’로 단순화해 널리 알려진 바 있죠. 개인과 국가의 ‘좋음’이 맞물려야 가장 바람직한 폴리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라는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 위한 최상의 정치제도를 고민했어요.”

당시 아테네 인구 가운데 17만명은 노예였고, 3~4만명만이 자유인이었다. 외국 출신인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정치에 참여하지 못해 ‘정치평론가’로서 <정치학>을 펼쳤다. 그는 오늘날의 시민적 연대와 비슷한 ‘필리아’(친애·우애)를 중시했다. 스승 플라톤의 <국가>(폴리테이아)와 다른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학원에서 20년을 수학했지만 스승과 견해를 달리해 조모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정치학> 완역 마무리 작업
상생모델 만들며 ‘정치학’ 실천
“철학함은 인간의 조건”

“스승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치인이 철인이 돼야 한다며 이상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통치방식과 엘리트교육을 강조했고, 귀족사회에 영향을 끼쳤어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입장은 ‘소셜 데모크라시’로, 공동체 정신과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가 가족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자연적인 공동체면서도 ‘정치적인’ 공동체라고 풀이한다. 경제학적 분석까지 나아가 ‘오이코노미카’(가정경영학)를 기반으로 한 재화의 획득과 경제적 문제도 언급했다. 오늘날 경제학의 시초인 셈이다. 그는 자급자족 교환경제로 족하다고 보며, 이윤의 획득이나 돈의 축적을 ‘나쁜 것’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르크스는 둘 다 ‘분배 정의’를 중시했고,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고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 일컫기도 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 기반했고 무척 상식적인 철학자였다”지만, 번역은 또 다른 문제다.

“고전 번역은 ‘면벽 10년’ 수행한다고 할 만큼 힘이 드는 작업입니다. 그래도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번역의 엄밀성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책들을 두루 참조합니다.”

김 박사에게 희랍어, 그리스어 원전 독해는 하나의 구도같은 것이었나보다. ‘어떻게 하면 세속적인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궁구한 그는 산사에 처박히기보다 ‘철학’을 택했다. 내적 성찰을 거듭하며 동료들과 함께 국내 서양고전 연구의 산실로 유명한 학문공동체 ‘정암학당’(2000년 설립)에서 연구했다. 단체 설립 이전인 1997년부터 강독모임에 참여해왔고 지금도 이사를 맡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카데미아’다. 그는 1978년 대학에 입학한 뒤 학교를 떠난 적이 없다. 1989년부터 단국대, 숭실대, 충북대, 한양대, 연세대, 중앙대 등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벌 중심의 왜곡된 대학 구조의 문제를 느꼈고 김상봉 전남대 교수, 홍훈 연세대 교수 등과 함께 교육단체 ‘학벌 없는 사회’의 운영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학은 인생에서 마지막 공부를 하는 곳입니다. 인류의 교사인 소크라테스가 남긴 가장 중요한 말은 ‘검토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젊었을 때 성찰을 잘못 배우니까 대학 이사장이 ‘목쳐주겠다’는 발언이나 하는 것 아닌가요.”

김 박사는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노예출신 철학자로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에픽테토스, 철저한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들어가려는 그들 삶의 자세에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구도자처럼 삶과 사회의 철학에 철저히 몰두하고 싶은 심정을 에둘러 표현한 것처럼 들렸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형이상학>에서 ‘인간인 한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철학함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아닐까. 이 말을 후배들에게 해주고싶어요.”

광주/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김재홍 박사는 30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 매진

195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교육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사춘기 시절에는 소설과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응모하던 섬세한 ‘문학청년’이었다. “자기 의식에 물음을 던지는 태도”를 존중하며 노예 출신으로 뛰어난 철학자가 된 에픽테토스와 비트겐슈타인을 비교하는 책을 쓰고 싶어한다.

학부 2학년 때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태수 당시 서울대 교수(현 인제대 인간환경미래연구원장)의 강의를 듣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희랍어와 라틴어를 뛰어나게 구사하며 서구 사유와 철학의 뿌리를 안내하던 이 교수의 모습을 보고 서양고대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1987년 ‘아리스토텔레스의 양상개념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1994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론에서의 변증술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고중세철학 합동 프로그램’에서 철학연구를 한 바 있으며 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실력을 무기로 김 박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들을 차례로 번역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피스테스적 논박>(2007), <변증론>(2008), <니코마코스 윤리학>(공역, 2011), <관상학>(2014)을 옮겼고 이번에 <정치학> 번역을 마친 뒤에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최고봉이라는 <분석론 전서> <분석론 후서>를 번역할 계획이다. 그밖의 번역서로 <정신의 발견>(브루노 스넬, 2002), <엥케이리디온>(에픽테토스, 2003),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역, 2005), <그리스 사유의 기원>(장-피에르 베르낭, 2006>,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대화록 연구>(에픽테토스, 2013) 등이 있다. 주요 저서는 <그리스 사유의 기원>(2003),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공저, 2004), <에픽테토스 ‘담화록’>(2006),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공저, 2010) 등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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