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23. 08:29

경제경제일반

훌륭한 역할모델의 전형, 파블로 카잘스

등록 :2015-06-22 20:26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나는 글을 쓸 때 파블로 카잘스의 첼로 연주를 자주 듣는다. 특히 카잘스가 자신의 고향 카탈루냐의 민요를 편곡한 ‘새들의 노래(Song of the Birds)’를 좋아한다. 그는 이 음악을 만들면서 고향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가 카잘스의 음악에 감동하는 이유는 그의 연주에 그의 삶과 신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첼로의 대가인 동시에 휴머니스트였다. 그에게 음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이미 십대 시절 음악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음악은 인류를 위한 큰 목표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음악 그 자체보다 더 큰 어떤 것, 즉 인간성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에서 카잘스는 말했다. “나는 먼저 한 인간이고 두 번째로 음악가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동료 인류의 행복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신이 내게 주신 수단인 음악을 통해 이 의무에 봉사하려 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신성하다고 여기는 이념에 바칠 것입니다.”

카잘스는 음악가로 태어났으나 그의 삶은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했다. 그는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투쟁했다. 참혹한 내전과 파시즘으로 무너진 에스파냐의 재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첼로를 켜고 지휘봉을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시절 나치 독일의 연주 요청을 거부했고, 전쟁이 끝나고 연합국들이 프랑코 독재 정권에 보인 온건한 태도에 절망하여 대외적인 모든 연주 요청을 거부하고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은둔했다.

심층심리학자 칼 융은 “자기 존재에 보다 넓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은, 한 인간을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로부터 보다 나은 존재로 도약하게 한다”고 말했다. 카잘스는 자신의 연주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하고 고귀한 어떤 것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유일한 표현 수단인 연주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그의 재능과 명성, 지위와 부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런 손실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지향한 핵심가치가 음악을 초월했기에 가능했다.

지금 내 서재에는 ‘새들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한다. 파블로 카잘스는 뛰어난 첼리스트를 넘어선 존재임을. 나는 카잘스에게서 훌륭한 역할모델의 전형을 본다. 역할모델은 인품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 실력 없는 인품은 친밀감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인격이 떨어지는 전문가는 일은 잘할지 모르지만 존경할 수 없다. 카잘스는 인품과 실력을 겸비했다. 그가 ‘첼로의 성자’로 상찬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승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kmc197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