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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나라, 한국과 일본/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8. 17. 14:02

사설.칼럼칼럼

[편집국에서] 친일파의 나라, 한국과 일본 / 권태호

등록 :2015-08-16 18:30수정 :2015-08-16 21:57

 

초등학교 때 만화영화 <서부소년 차돌이>(MBC)를 즐겨 봤다.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한국인 소년이 아버지를 찾는 모험담을 그린 것인데, 자기 아들인 줄도 모른 채 차돌이를 만난 아버지가 차돌이에게 말로는 “태권도를 가르쳐줄게” 하며 대련을 하는데, 업어치기 등 유도였다. ‘저게 뭐지’ 하는 궁금증은 한참 뒤에 ‘차돌이’의 본명이 ‘이사무’, 국적은 일본이라는 걸 뒤늦게 알면서 풀렸다.

내 또래들은 마징가 제트, 철인 28호, 바벨 2세 등 지금의 ‘어벤저스’ 같았던 유년의 영웅들이 모두 ‘일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황망함이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일본 만화를 보여주고선 ‘일본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로뎀, 로프로스, 포세이돈의 만화 <바벨 2세> 표지에는 ‘글·그림 김동명’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가공인물이었다. 교과서에선 ‘극일’(克日)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일본 것을 일본 것이라 할 수 없었을 터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패전 70년을 맞아 ‘아베 담화’를 발표했지만, 아베는 ‘사과하지 않았다’. 우린 일제 침략의 결과로 분단됐지만, 일본은 언제나 늘 우리 앞에 있다. 일본이 과거 우리에게 상처를 입혔던 몽골·청나라처럼 망했다면 우리의 상처도 절로 좀 아물었으려나.

아베가 위안부 문제에 사과랍시고 한 말이 “전쟁 속에서 명예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다. ‘유체이탈’ 화법은 일본에서도 유행인가 보다. 아베는 왜 사과를 못할까? ‘이전 총리가 사과했다’는 말은, ‘사과했으니 이제 더 사과 안 해도 된다’는 뜻인지, ‘이전 총리는 했지만, 나는 못하겠다’인 건지.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2차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 내각의 상공부 장관으로, 태평양전쟁 개전에 서명을 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2차대전 이후 A급 전범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하고 1948년 석방된다. 정계에 복귀해 보수 단일정당, 오늘의 자민당(자유민주당)을 만들었고, 1957년 총리에 취임한다. 아베의 아버지는 1980년대에 외무상을 지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과거가 청산되지 않았기에 ‘사과’가 힘든 것이다.

2차대전 추축국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다. 패전 이후 독일 국가원수 히틀러 총통은 연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 자살했고, 이탈리아의 국가원수 무솔리니 총리는 유격대에 붙잡혀 처형당해 시신이 밀라노의 로레토 광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일본의 국가원수 왕 히로히토는 만수를 누리고 1989년 여든여덟에 숨졌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독일 정부가 나치 잔당들을 수십년이 지나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 법정에 세우는 것은 독일인들이 일본인들에 비해 유달리 양심이 고와서가 아니라 과거 세력과 단절됐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채 세워진 일본은 지금도 과거의 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이승만의 ‘국부 어쩌고’ 하는 움직임에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적 김구를 억누르기 위해 친일파와 손을 잡고, 이 땅에 ‘친일파의 나라’를 세웠다. 그리하여 이 땅은 독립군을 육성했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아닌, 독립군 쫓는 일본군인을 배출했던 만주군관학교 출신이 대통령이 됐다. 70년 전, 히로히토에게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해 사쿠라처럼 죽겠다”고 충성을 맹세하던 이의 딸이 지금 한국 대통령이고, 같은 시각 히로히토를 받들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지금 일본 총리이다.

권태호 정치부장
권태호 정치부장
<암살>에서 주인공 안옥윤은 “16년 전 (김구 선생이 내린) 임무 지금 실행합니다”라며 친일파 염석진을 처단한다. 영화다. ‘70년 전 임무’, 우린 언제나 실행할 것인가?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