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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딱한 두 사람, 문재인과 안철수/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9. 18. 07:27

사설.칼럼칼럼

참으로 딱한 두 사람…문재인과 안철수

등록 :2015-09-17 18:45수정 :2015-09-17 20:39

 

[아침 햇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와 문재인 대표.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와 문재인 대표.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15일 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만났다. 혁신안의 중앙위원회 상정을 앞두고 당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다. 1시간20분간 ‘격의 없는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결과는 이랬다. “문 대표는 혁신안의 의미와 중앙위 개최 불가피성을 말씀하셨고, 안 전 대표는 혁신안 표결을 보류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 부분에 관해 더이상 다른 내용은 없다.”(김성수 당 대변인)

이걸 보면서 3년 전인 2012년 11월22일 서울 홍은동 호텔에서의 후보 단일화 회동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때도 두 사람은 1시간30분 만난 뒤 대변인을 통해 이렇게 발표했다. “한 걸음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11월23일 안 전 대표는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형식은 ‘양보’였지만 문재인 후보를 돕겠다는 의지는 찾기 힘들었다. 그해 대선은 사실 여기서 끝이 났다.

2017년 대선의 전초전인 내년 총선을 앞두고 두 사람은 다시 어긋나고 있다. 그게 감정의 앙금 탓인지, 서로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이 너무 다른 탓인지는 알 수 없다. 얼굴을 맞댄다고 깊은 불신의 골을 마법처럼 메울 수는 없다. 다만 만날 때마다 빈손으로 돌아서는 두 사람을 보면서, 뭔가 돌파구를 바라는 기대가 번번이 깨진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렵다. 정치에서 원칙보다 중요한 건 국민과 지지자들의 바람이다. 그 점에서 문재인과 안철수는 과연 국민의 뜻을 자신의 원칙보다 앞세우는 지도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2002년 11월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제안하면서 던진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회창 후보를 걱정하는 많은 국민들이 ‘단일화 안 하고 이기겠냐’ 이렇게 제게 압력을 행사합니다. 정책이 다 다른데 어떻게 단일화를 할 것이냐, 이게 제 고민입니다. 원칙은 존중돼야 합니다. 정책이 같은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원칙이냐를 국민에게 물어보는 것도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0%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자,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그 뒤 정몽준 후보에게 세번을 더 양보해서 결국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다.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은 각자 원칙에 충실한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와중에 ‘국민’은 낄 자리가 없다. 원칙보다 국민을 앞세운다는 건 정치적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홈그라운드가 아닌, 때로는 상대방에게 유리한 운동장에 뛰어들어 싸우겠다는 뜻이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주류든 비주류든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의 샅바싸움만 고집하지 상대방의 운동장에서 한판 붙겠다는 의지는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링 밖의 욕설만 난무할 뿐 치열한 승부도, 결과에 대한 승복도 없다. 중앙위의 혁신안 처리가 그렇고, 대표 재신임 문제가 그렇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와 문재인 대표.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와 문재인 대표.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문 대표는 비주류가 요구한 혁신안의 무기명투표를 수용했어야 했다. 인사에 관한 사항만 비밀투표를 하도록 당헌에 규정돼 있지만, 정당에서 서로 합의하면 바꾸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정치적 위험을 감수했다면 지금 비주류는 반발할 명분을 잃었을 것이다. 안전한 길은 설령 옳더라도 감동이 없다. 안 전 대표의 처지는 더 딱하다. 문 대표와 확실하게 정치적 대립각을 세웠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국민들 눈엔 그렇지 않다. 애초 혁신위원장 자리를 거절한 게 안 전 대표 자신이다. 가만히 있다가 혁신안 표결을 하려는 순간 “끝장토론하자”고 부르짖는 건 뜬금없다. 지금이라도 “내가 ‘제2의 혁신’을 주도할 테니 권한을 달라”고 문 대표에게 당당히 요구하면 어떨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