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봉에 해 비치니 붉은 안개 피어오르고 아득히 폭포수 바라보니 긴 강이 하늘에 걸려 있네 날아오르다 곧게 떨어지는 물줄기 삼천 척에 달하는데 혹여 이것은 은하수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아닐까 |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
천길 단애의 절벽으로 쏟아지는 폭포의 풍광은 정말 아름답다. 중국 당나라의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여산폭포의 비경에 취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후대 송나라의 소동파는 이 시를 두고 “예로부터 상제가 드리운 은하 한 줄기를 제대로 전한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오로지 이백의 이 시 한 수가 있을 뿐이다.”라고 칭송했다. 여산폭포의 선경을 절창으로 읊은 이백의 시는 너무나도 유명해 이 시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생겨났다. 여산폭포는 중국 화가들이 그린 그림의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특히 조선의 실경산수화로 유명한 화가 겸재 정선의 산수화 「여산폭(廬山瀑)」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폭포는 계류나 강물이 수직의 절벽이나 급한 경사의 지형을 만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말한다. 이처럼 낙차가 있는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하얀 순백의 색채를 이루며 청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높고 깊은 산간계곡에 위치한 폭포일수록 물줄기는 더욱 흰색을 띤다. 맑고 청량한 계곡의 폭포수는 마치 하얀 명주실을 뭉쳐 늘어뜨린 실타래처럼 순결한 자태를 가지고 있다. 낭떠러지 절벽을 날아 내리는 하얀 물줄기가 거대한 암벽, 울창한 숲 그리고 파란 하늘과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는 비경을 만드는 것이 심산계곡에 자리한 폭포들이다.
설악은 험준하기로 이름난 바위산이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바탕이 되어 우뚝우뚝 암산이 솟아오르고 골골이 깊이 파여 낙차가 큰 심산유곡의 지형을 이루고 있어 다른 어느 산보다도 특별히 폭포가 많은 산이라 할 수 있다. 내설악, 외설악, 남설악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폭포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폭포가 많은 설악에서도 외설악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토왕골 계곡은 폭포의 비경이 설악의 으뜸이라 할 만한 계곡이다.
토왕골 계곡은 신흥사 아래에 자리한 집단시설지구 남측을 흘러가는 쌍천에 놓인 비룡교를 건너 개울을 따라 1㎞쯤 아래로 내려간 곳으로부터 시작된다. 완만한 경사로 시작하는 토왕골의 계곡은 높은 절벽을 만나며 곧바로 급한 지형으로 바뀌어 곳곳에 소와 담을 이룬다. 가파른 계곡에 놓인 돌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토왕골 계곡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폭포가 육담폭포다. 여섯 개의 담을 가지고 있는 폭포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육담폭포의 못이 여섯 개인지는 알 수 없다. 육담폭포에 이르면 이 계곡을 오르는 길은 한 쪽 바위의 단애방향으로 철제로 만든 다리가 놓여있는데 이곳의 조망지점에서 바라보는 육담폭포는 주변의 경치와 어울려 매우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준다.
육담폭포를 지나면 경사가 급한 계곡 길은 여러 차례 꺾이고 돌아 돌계단으로 혹은 철제 데크와 다리로 이어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에 땀이 흥건해 질만큼 오르고 나면 저만큼 앞을 가로 막은 절벽에 옆으로 비낀 듯이 바위를 깎아 물길을 만들고 하얀 물줄기를 쏟아 내는 비룡폭포가 나타난다. 육담폭포로부터 약 1㎞정도 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이 비룡폭포는 20여 m의 높이의 암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로 그다지 높지도 우람하지도 않은 폭포다. 그러나 거대한 바위로 둥그렇게 감싸인 비룡폭포의 모습은 산속 깊이 감추어진 청량하고 신선한 물줄기로, 신비로운 경지를 느끼게 하는 자태를 지니고 있다. 특히 폭포 맞은편의 바위에 걸터앉아 조용히 바라보면 힘찬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히며 깊은 담 속으로 내리 꽂히는 물소리가 위요된 골짜기를 울리는데, 청정한 이 소리는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 준다.
비룡폭포의 깊은 담 속에는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았다고 한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아래 마을에서는 이 물속에 처녀를 바쳐야 비를 불러 올 수 있다고 해 이 담 속에 젊은 처녀를 바치고 제를 올렸다고 한다. 담 속에 사는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을 하고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가뭄을 벗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곳곳의 담과 소에 전하는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비룡폭포의 설화는 오랫동안 흘러내린 물줄기가 바위표면을 깎아 길게 선형의 홈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며 파놓은 자국과 같아 이러한 바위의 형상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생각된다.
설악산을 찾는 일반인들의 접근은 이 비룡폭포에서 끝난다. 하지만 정녕 토왕골이 감추어 놓은 비경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비룡폭포 바로 아래에는 좌측 산비탈로 좁은 길이 나있다. 겨울철 빙벽등산이 허용되는 시기를 제외하고 다른 계절에는 계곡의 자연을 보호할 목적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해 휴식년제를 시행하는 곳이다. 산길을 따라 비룡폭포의 머리 부분을 돌아 오르면 먼 곳까지 시야가 길게 열리는 지형이 펼쳐진다. 그 끝에 높이 솟은 봉우리 사이로 천 길 낭떠러지가 형성되어 있고 높은 절벽에 한 줄기 긴 실타래를 풀어 늘어뜨린 모습의 폭포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바로 토왕성폭포다.
토왕성폭포는 내설악 장수대의 대승폭포, 한계령 넘어 오색방향의 독주폭포와 함께 설악산 3대폭포로 불리고 있다.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에서 북동방향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의 끝에 화채봉이 우뚝 솟아있다. 토왕성폭포는 화채봉의 북쪽에 자리한 토왕골 계곡에서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폭포다. 토왕성폭포는 삼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단이 150m, 중단이 80m, 하단이 90m로 총 높이가 320m에 이르는 연폭(連爆)이다. 폭포수가 워낙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물줄기가 하늘에서 비류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폭포다. 힘겨운 산행으로 비룡폭포를 거슬러 오른 후 만나게 되는 토왕성폭포의 비경은 그야말로 천상의 풍경으로 하늘나라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에 널어놓은 듯한 선경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폭포가 하얗게 얼어붙어 거대한 백색의 얼음 기둥을 만드는데 온 산을 뒤덮은 흰 눈과 함께 토왕성폭포 주변은 하얀 설국을 형성한다. 한 겨울 토왕성폭포가 얼어 빙벽을 이루면 이곳은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빙벽훈련장이 된다.
토왕성폭포는 다른 이름으로 신광폭포(神光瀑布)라고도 한다. 토왕성폭포의 이름은 토기(土氣)가 왕성하지 않으면 기암괴봉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폭포의 이름인 토왕성은 『여지도서』 「양양도호부」고적 조에는 “토왕성(土王城)은 부(府) 북쪽 50리 설악산 동쪽에 있으며, 돌로 쌓은 성인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토성왕이 성을 쌓았다고 하며, 이곳에는 폭포가 있는데 석벽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양부읍지』에도 같은 기사가 실려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도 토왕성(土旺城)이 도문면 토왕성리에 있는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토왕성이라는 이름은 인위적으로 축조된 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비경을 지닌 토왕성폭포는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를 지은 성해응(1760~1830)은 「기관동산수(記關東山水)」에서 토왕성폭포의 모습을 기이하고 웅장하다고 묘사하였고, 김창흡(1653~1722)은 그의 유산기(遊山記)인 「설악일기(雪岳日記)」에서 토왕성폭포를 중국의 ‘여산폭포’보다도 낫다고 표현하였다. 토왕성폭포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이 폭포의 비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절찬을 아끼지 않은 아름다운 폭포다.
외설악의 초입부에서 시작되는 토왕골 계곡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폭포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육담폭포,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토왕골 계곡은 가히 폭포의 비경으로 가득 찬 폭포계곡이라 할 만하다. 폭포의 비경이 줄달아 이어져 연계경관을 이루는 계곡이다. 토왕골 계곡의 진가는 토왕성폭포를 보아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토왕골 계곡의 진수를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안과 함께 조망위치를 확보해서 토왕성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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