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호 불교인재원 이사장.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불교인재원 이사장 엄상호씨
‘111개’ 염주알 돌리며 매일 333배
외환위기 때 사업 잃었지만 ‘건강’ 지켜 82년 신도회 간부로 성철 스님 ‘친견’
2009년 선친 불사자금 되찾아 ‘시주’
“꿈에 본 성철 스님 말씀 따라 통일운동” 그에겐 특별한 체험이 있다. 40대 중반 대기업을 운영하던 그는 마음 깊숙이 고민이 있었다. 죽음이 두려웠다. 어릴 때부터 절에 다니며 불심을 키웠지만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항상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피땀 흘려 키워온 기업도 사라지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환생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언젠가 지구도 멸망하면 그나마 나의 존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허무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새벽, 그런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이 왔어요.” 그날 새벽도 명상에 빠져 있었다. 멀리 깜깜한 동쪽 하늘에서 태양 같은 불덩어리가 기운차게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 불덩어리는 그의 가슴을 세차게 치고 사라졌다. “그 순간 깨달았어요.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우주 안에 영원히 존재한다고. 그래서 내 존재도 영원할 수 있다고….” 그는 성철 큰스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불교 전국신도회 부회장이었던 1982년, 신년 하례를 위해 해인사를 찾아 큰스님을 처음 친견했다. 큰스님을 뵈려면 누구나 3천배를 해야 했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인연’이 주어졌다. “신도회 간부라고 절을 하지 않고 큰스님을 뵈니 불경스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에 3천배를 올리고 다시 큰스님을 찾았죠. 그때 사업한다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저에게 큰스님의 법문은 큰 위안이 됐어요.” 그날 이후로 그는 틈나는 대로 절 수행을 했다. “절을 해보니까 108배는 좀 짧고, 1080배는 좀 길고, 333배가 제일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지금의 건강이 절 수행의 계기를 만들어준 성철 큰스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2013년부터 2년간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수행도량 순례단’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불덩어리 체험’을 한 뒤 더욱 절 수행에 몰두했다. 회사에서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회장님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그가 회사일을 멀리할수록 사업은 잘됐다. 위기감을 느낀 직원들이 더욱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그는 믿는다. 2009년 불교인재원 이사장을 맡게 된 사연이 있다. 중앙신도회 고문이던 그에게 한 중년 신사가 찾아와 무릎을 꿇더니 봉투를 내밀었다. 선친 엄희섭 건영그룹 명예회장 생전에 불사 자금을 맡아 관리했다는 그 신사는 명예회장의 치매를 틈타 적지 않은 돈을 가로챘다고 고백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던 그는 해남 대흥사에 가서 참회기도를 하다가 ‘돈을 주인에게 돌려줘라’는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그 돈을 중앙신도회에 시주해, 불교인재원 설립에 큰 종잣돈이 됐던 것이다. 그는 최근엔 통일운동에 힘쓰고 있다. 역시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어느 날 성철 스님이 꿈에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특유의 빠르고 부정확한 발음으로 ‘통일을 위해 기도해. 통일 기도를 해’라고 일갈하시고 사라지셨어요. 그래서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죠.” 엄 이사장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불구부정’(不垢不淨)이란 말을 깊이 새기고 있다. “모든 것의 근원을 살피면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어요. 그 뜻을 알고 세상 만물을 보면 덤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생겨요.” 불교인재원은 일반인들의 불교 이해를 돕기 위해 서울 견지동 조계종 전법회관 선운당에서 1차로 인도불교, 2차로 중국불교를 강의했고, 26일부터는 한국불교 강좌를 연다. 5월13일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열리는 이 강좌에서는 한국불교의 5대 적멸보궁 창건주 자장율사부터 무애행의 원효대사, 화엄사상의 중심 의상대사, 태고 보우스님 등을 소개한다. (02)1661-1108.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