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am Chomsky

당신 머릿속에 ‘촘스키’를 키워라

이윤진이카루스 2010. 12. 4. 14:46

당신 머릿속에 ‘촘스키’를 키워라
한승동기자
»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노르망 바야르종 지음·강주헌 옮김/갈라파고스·1만3500원

올바른 현실인식을 방해하는
정보의 조작과 왜곡 ‘분별법’

광고 속 오류·통계의 맹점 등
미디어 통한 ‘세뇌’ 사례 탐구

붉은색 사과를 본 사람은,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꿀 경우 사과 빛깔이 달라지는데도 여전히 붉다고 생각한다. 신경학자 테런스 하인스의 실험이다. 사과를 상자 안에 넣고 그것이 사과라는 걸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부분만 보이게 조그만 구멍을 뚫어 피실험자에게 보여준다. 그런 뒤 그 사과를 비추는 조명을 바꾸고 다시 그것을 보여주면 피실험자는 그걸 다른 색으로 인식한다. 상자 속의 사과가 사과인 줄 몰랐기 때문에 ‘사과는 붉은색’이라는 배경지식(고정관념)에 좌우되지 않은 것이다. ‘지각의 항상성’이라고 한다. 이는 지각이 구성작용의 결과란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봤다고 믿는 ‘지각의 왜곡’도 일어난다.

연평도에 간 집권당 대표가 보온병 잔해를 북이 쏜 포탄 껍질로 착각하고 장성 출신의 측근이 그 착각을 더욱 희극적으로 만든 그럴듯한 설명까지 덧붙인 것도 이 지각의 구성작용 탓이라고 봐야 할까. 환상과 착시의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인가. 아니면 관찰된 객관적 사실과 자신의 신념이 충돌하는 모순으로 인한 불안과 거북함 때문에 오류를 범하는 ‘인지 부조화’ 탓일까. 그 사건을 특정 방송의 의도된 연출 탓으로 몰아간 신문기사는 전형적인 ‘연막치기’인가 물타기인가.


 
나폴레옹이 말한다. “주세페, 저 병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나? 터무니없는 소리만 해대는데.” “폐하, 저 병사를 장군으로 승진시키십시오. 그럼 그의 말이 흠잡을 데 없이 들리실 겁니다.” 이건 ‘권위에 호소하기’의 역설이다. 동료 피실험자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고압전류인줄 알면서도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전압을 계속 높여가는 ‘밀그램의 실험’도 잘 알려진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 사례다.

‘애시의 실험’이라는 것도 있다. 카드에 그려진 같은 길이의 직선을 맞히는 그 실험에서 다수의 실험 참가자들이 실험 기획자와 사전에 몰래 약속한 대로 전혀 엉뚱한 답을 내놓자 이게 짜고 하는 것인 줄 모르는 피실험자는 눈치를 보다가 뻔한 정답을 버리고 그들 다수를 따라간다.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 인간의 뇌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때부터 ‘모르겠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라는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얘기도 상통한다. 박사학위는 받는 사람의 뇌에만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뇌도 바꿔버린다. 똑같은 말도 박사학위라는 권위의 세례를 받기 전과 받은 뒤에 전혀 다르게 들리게 만드니까.

» 노엄 촘스키(1928~ ). 에드워드 허먼과 미디어의 프로파간다 모델을 만들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군중에 호소하기’도 있다. 예컨대 “×를 마셔보세요. 한국에서 가장많이 팔리는 맥주니까!”, “자동차 Y. 설마 수백만의 운전자가 잘못 판단했겠습니까?” 같은 광고문구들이 대표적이다. 그 맥주나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게 그것들의 품질이 가장 좋다는 걸 보장하진 않는다. 그 둘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왜 ××일보를 가장 많이 볼까요?”라는 광고문구도 다르지 않다. 부분이 옳으면 전체가 옳다고 주장하는 ‘구성의 오류’, 그 반대로 전체가 옳으면 부분도 옳다고 주장하는 ‘분할의 오류’도 있다.

대안적 가치를 추구해온 캐나다 퀘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노르망 바야르종의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은 이런 흥미로운 사례들을 무수히 제시한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신비주의나 초과학, 뉴에이지 등이 횡행하고 학계와 지식계가 성찰과 판단력과 합리성을 잃어버린 채 추락해버린 현실이 야기하는 인식론적 문제,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를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충분하게, 또 다양한 방향에서 제공받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걱정하듯이, 나도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린 언론의 실상이 걱정스럽다. 이처럼 언론이 시장지향의 경향을 띠는 것도 걱정스럽지만, 어떻게든 우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보 폭탄과 말 폭탄을 쏟아부으며 수행하고 있는 프로파간다적 역할도 무척 우려된다.”

그는 “고객중심의 사고방식과 경제지상주의”가 판치는 교육계도 참여민주주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심각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교육’을 ‘세뇌’로 바꿔 읽는 것이 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노엄 촘스키의 얘기에 동의한다. 이 책은 이런 현실에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로 맞설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적인 생각의 무기, 성찰의 수단을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씌었다. 원래 제목 ‘Petit Cours D’Autodefense Intellectuelle’은 ‘지적인 자기방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단기 코스’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 훈련 입문서다. 따라서 어렵지 않다. 언어, 숫자, 경험, 과학, 미디어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요령있게 펼치는 악성 프로파간다 깨부수기 훈련과정은 흡인력이 있다.

통계상의 표준편차를 설명한 뒤 이런 예를 든다. 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53%였는데, 3월의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56%였다. 이를 토대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보도해도 문제가 없을까? 이 조사의 정확도가 95%, 표준오차 범위 ±5%라면 그 보도는 거짓일 수 있다. 이 표준오차 범위라면 1월 지지율은 48~58% 사이고 3월은 51~61% 사이다. 따라서 1월에 58%였던 지지율이 3월엔 51%로 추락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숫자 공포증을 치유하는 10가지 비법’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지난해 ㄱ시와 ㄴ시에서 각각 50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5년 전엔 ㄱ시에 42건, ㄴ시에선 29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5년간 두 도시 살인사건 증가율을 백분율로 표시하면 ㄱ시는 19%, ㄴ시는 72%다. 따라서 ㄱ시 쪽 치안이 더 나을까?

지은이는 신문을 볼 때 이것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ㄱ시는 지난해 인구가 60만이었고 5년 전에는 55만이었다. ㄴ시는 지난해 80만, 5년 전에는 45만이었다. 따라서 인구증가속도까지 고려한 지난해 살인사건 발생률은 ㄱ시가 10만명당 8.33명, ㄴ시가 10만명당 6.25명이었다. 따라서 ㄴ시가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까지만 봐서도 안 된다. 5년 전 두 도시 살인사건 발생률을 마찬가지 인구비례로 계산하면 ㄱ시는 10만명당 7.64명, ㄴ시는 10만명당 6.44명이다. 따라서 5년 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ㄱ시는 증가율이 높아졌고 ㄴ시는 낮아졌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기억하라, 그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준비중이다

촘스키식 미디어 읽기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이 제시한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31가지 전략’엔 ‘악마의 변호사가 돼라’ ‘단어를 바꿔보라’ ‘미디어에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어라’ ‘균형잡힌 속임수를 경계하라’ 등이 들어 있는데, 단어를 바꿔보라에 이런 얘기가 있다. “예컨대 ‘자유무역’을 ‘관리무역’으로 바꿔보라. 이렇게 바꿔놓은 단어가 현실에 더 일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육’을 얘기하고 있다면 그 단어를 ‘세뇌’로 바꿔보라. 생태나 환경보호를 얘기하고 있다면 어떤 단어로 바꿀 수 있겠는가?”

선정주의와 오락지상주의로만 가는 텔레비전이라면 차라리 꺼버리고 신문이라면 덮어버리라는 것도 있고, 정치철학을 공부하라는 것도 있다. 그리고 ‘촘스키를 읽어라’라는 항목도 있다. 이 책 ‘들어가는 글’ 앞에 인용된 촘스키 글은 이렇다. “첫째로 우리 뇌를 세척해야 하고, 둘째로는 모든 세뇌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때서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1면에서 거짓말과 왜곡된 얘기를 읽을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기사 전체를 합리적인 틀에서 다시 읽기 때문에 왜곡된 부분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정부와 미디어가 우리를 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 참된 교육제도가 있다면 학교에서 당연히 지적인 자기방어법을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은이 바야르종은 뉴스를 어떻게 봐야 제대로 보는 것인지를 가장 설득력 있고 깊이있게 다룬 사람으로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을 꼽고, ‘허먼-촘스키 분석 모델’에서 프로파간다 격파를 위해 살펴야 할 5가지 기준을 인용한다. 첫째가 미디어의 규모와 소유권 및 수익원이다. 1980년대 미국에선 50개 기업이 미디어의 과반수를 지배했으나 최근엔 5개 기업이 과반수를 지배한다. 그리고 광고 의존도, 지배세력쪽 정보원 의존도, 힘 가진 쪽이 미디어를 길들이기 위해 공격하는 ‘플랙’, 다섯 번째가 반공주의다.

촘스키의 얘기 중엔 이런 것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제 테러작전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작전은 워싱턴에서 기획되는 테러작전이다. 뉘른베르크의 판결이 공평하게 적용된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재임한 모든 미국 대통령이 교수형을 당해야 한다. 교육은 무지를 강요하는 제도다. 체제에 순응하는 순간부터 당신은 순응에 따른 혜택을 누리기 시작한다. 또 믿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세뇌와 왜곡과 거짓말로 얼룩진 체제에 길들여진다. 따라서 당신은 특권층에 동의하는 일원이 되고, 그들에게 당신의 생각을 지배당하고 교화당한다. 계층을 불문하고 흔하디흔한 현상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권력을 쥔 사람들의 합의를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이다. …미디어는 국가와 기업을 지배하는 엘리트 계급의 일치된 의견을 주로 반영하지만, 정부 정책의 일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전술적인 이유에서 보도한다. …미디어의 편향성은 우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선별, 내면화된 선입견, 소유권과 조직 및 시장과 정치권력에 대한 직원들의 순응으로 어렵지 않게 설명된다. 검열은 일반적으로 자체검열이다. 무지한 대중은 소외시키고 딴 데 정신을 쏟게 하며 통제해야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