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으론 사드를 지칭한 것 같지만 실은 여론의 집중 비판을 받는 우병우 수석 등을 강하게 옹호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대통령인 나도 사드 배치로 많은 비판을 받지만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갈 테니, 우 수석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의연하게 버티라’는 얘기일 뿐이다. 대통령이 측근을 감싸려 언론과 국민 비판을 ‘고난’이라 칭하고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행태를 ‘소신’이라 부르다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책임자로서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양식과 소명의식을 갖고 있기나 한 건지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다.
청와대는 “우병우 수석이 진경준 전 검사장을 통해서 넥슨과 땅 거래를 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인데 이와 관련해선 드러난 게 없지 않으냐”고 주장한다. 물론 이 부분은 앞으로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해명 과정에서 우 수석이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이미 드러났다. 이런 거짓말만으로도 우 수석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다. 더구나 아들 병역 특혜를 비롯해 여러 의혹이 고구마 줄기 나오듯 줄줄이 제기되는 게 지금 상황이다. 이런 사람을 인사 검증과 공직 감찰의 최고 책임자로 임명한 잘못을 국민 앞에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감싸다니,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심각하게 뒤틀려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드 문제에 대한 인식과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 외에 북한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제시해 달라”고 반격했다. 그러나 사드가 국민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 방어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치명적 결함엔 입을 다물었다.
박 대통령은 정권 내부의 잇단 추문을 정치 공세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한걸음이라도 밀리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에 싸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진실이고, 국민의 믿음과 평가이다. 박 대통령에겐 국민의 뜻보다 계파와 측근의 안위가 더 중요한가 묻고 싶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그의 측근들을 어떻게 보는지, 또 그런 측근을 감싸는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을 낭떠러지로 미는 건 정치 공세가 아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현실 인식이다.
[사설] ‘고난 벗삼아 소신 지키라’는 대통령의 오기
등록 :2016-07-21 17:27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불거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경환·윤상현 의원 파문에도 아랑곳없이 끝까지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21일 열린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논란을 언급하면서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저항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 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시기 바란다”고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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