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하하, 우습다. 아니, 더럽다! / 강명관 부산대 교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8. 19. 22:46

문화학술

종이 200장

등록 :2016-08-18 19:24수정 :2016-08-18 20:04

 

강명관의 고금유사

1425년(세종 7) 윤7월 20일 사헌부 헌납(獻納) 김반(金泮)은 표지(表紙) 2권을 자신이 근무하는 관청, 곧 사헌부에 갖다 바치고, 아내를 시켜 이간(李侃)이란 사람을 조사해서 처벌할 것을 요청했다. ‘이간이 법령을 따르지 않고 공공연히 뇌물을 바쳤으니 마땅히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뇌물은 다름 아닌 김반이 사헌부에 바친 그 표지 2권이었다. 뇌물을 받자 즉시 자신의 소속 관청에 바치고 뇌물 증여자를 처벌할 것을 요청했으니, 정말 청렴결백한 관리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간을 잡아다 조사해 보니 사정이 전혀 달랐다. 원래 김반이 이간에게 편지를 보내어 “은혜를 좀 끼쳐다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즉 노골적으로 뇌물을 좀 보내달라고 말했기 때문에 표지 2권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간은 남원부사로 있을 때 여러 사람에게 뇌물을 보내고 그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두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힘 있는 사람에게 보낸 것이 많았을 터인데, 목록을 조사해 보니 권세가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 그 목록에 손을 대어 지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단 한 사람 당시 대사헌으로 근무하고 있던 황희(黃喜)만 자신이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안롱(鞍籠)을 받았다고 자수했다. 그 뒤 조사가 진행되어 대사성 황현(黃鉉) 등 모두 8명이 발각되었는데, 그중에는 장영실(蔣英實)도 있다. 공신의 후손 두 사람을 빼고는 나머지 6인은 모두 태(笞) 20대를 맞았다. 나라의 물건을 제멋대로 뇌물로 바친 이간의 죄는 자자형(刺字刑)을 베풀고 곤장 100대를 친 뒤 2500리 밖으로 유배 보내는 데 해당하였다. 세종은 자자는 하지 말고 충주의 창고지기로 박으라고 명했다.

김반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뇌물을 준 이간과 받은 사람들이 처벌을 받자 겁이 나서 표지 2권을 받았노라 자백한 것인데, 당연히 처벌을 받았다. 벼슬에서 떨려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받은 뇌물이란 것이 대단할 것도 없다. 표지는 중국에 보내는 표문을 쓰는 고급 종이다. 보통 종이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그래 봤자 종이다. 대단한 것도 없는 것이다. 황희가 받았다는 뇌물은 기름을 먹인 종이로 만든 안롱이다. 안롱은 수레나 가마를 덮는 보자기 같은 것이다. 역시 대단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수를 하고 처벌을 받았다.

사헌부는 굉장히 힘 있는 곳이다. 백관, 곧 온갖 벼슬아치의 비위를 조사해서 탄핵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영의정부터 말단까지 누구나 조사해서 탄핵할 수 있다. 왕이 듣기 싫어하는 거슬리는 소리를 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다. 사간원과 함께 사헌부는 조선시대 정치권력의 핵심에 해당하는 관청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 관원들은 청렴해야만 하였다.

사헌부는 요즘으로 치자면 검찰이다. 그런데 요즘 검찰은 검찰 같지가 않구나. 진경준씨, 홍만표씨를 보니 종이 200장, 등롱 하나를 뇌물로 받고 자수하던 세월은 정말 꿈같은 세월이로구나. 하하, 우습다. 아니, 더럽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