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

[쿠오바디스와 행로난](13) 노닐며 배운다…구속받지 않는 공부, 삶과 통하다 / 김월회 서울대 교수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 08:59

[쿠오바디스와 행로난](13) 노닐며 배운다…구속받지 않는 공부, 삶과 통하다

김월회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ㆍ삶과 앎을 통합해주는 노닒(遊)

공자의 행적을 그림으로 표현한 ‘공자성적도’.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가 제자를 시켜 은자(隱者·숨어지내는 사람. 여기서는 밭을 가는 농부)에게 나루터를 묻는 장면.

공자의 행적을 그림으로 표현한 ‘공자성적도’.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가 제자를 시켜 은자(隱者·숨어지내는 사람. 여기서는 밭을 가는 농부)에게 나루터를 묻는 장면.

퀴즈 하나! “공자는 농을 했을까, 안 했을까?” 아니, “공자는 농을 칠 사람으로 보이는가, 그렇지 않은가?” 답은 “했다, 능히 그럴 사람이었다”이다. 물론 그가 농을 했다는 물증은 극소수다. 그의 평생 언행이 담긴 <논어>에 딱 한 번만 실려 있으니 말이다.

■성인 공자, 농담도 하다!

“얘들아, 자유의 말이 맞다. 좀 전에 한 말은 농담이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근엄의 끝판왕’ 공자가 농을 쳤다며 제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다. 저간의 사정은 이러하다.

공자가 하루는 제자 자유가 현령으로 있는 무성이란 곳을 방문했다. 학문의 성취도 높고 예법에도 밝은 제자였던 까닭에 과연 고을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내심 궁금해하던 차였다. 성문을 지나 자유가 묵고 있는 관사에 이르자 청아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공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어찌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가?”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데에 어찌 예악(禮樂) 같은 큰 도를 사용하느냐는 뜻이었다.

스승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당혹스러운 훈계에 자유는 다소 맘이 상했던 듯하다. 그렇지만 예법의 대가답게 진지한 태도로 스승께 말씀을 올렸다.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기로, 통치자가 도를 배우면 백성을 사랑하게 되고, 백성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쉬워진다고 하셨습니다. 하여 예악으로 다스리는 중이었습니다.” 경쾌하게 던진 한마디에 제자가 정색하고 나오자 공자도 얼른 진지 모드로 돌아섰다. 그러곤 자유의 말이 맞는다면서 자기가 농담한 거라고 고백했다. 공자도 장난칠 줄 아는, 온통 진지하기만 했던 인물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기야 농담과 공자를 연동시킨다는 것은, 지금 우리 감각으로도 낯서니 저 옛날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제자들조차 공자를 꽤나 어려워했던 듯하다.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 등이 바로 그러했다. 하여 공자는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으니 편하게 얘기하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들은 평소엔 세상이 자기를 몰라준다며 투덜대던 이들이었다. 하여 공자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중용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자로가 불쑥 나서서 대답했다. 늘 행동이 사고보다 앞섰던 인물다웠다. 크지도 않고 자연재해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일지라도, 3년 안에 백성을 용감케 하고 바른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노닒을 사모한 공자

공자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곤 염구더러 말해보라 했다. 그는 크지 않은 나라에 중용된다면 3년이면 백성을 풍족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예악으로 교화하는 것까지는 자신 없다고 했다. 공서화는 더욱 겸손하게 답했다. 그저 배운다는 자세로 종묘 제사나 제후 간 회합이 있을 때 예로써 군주를 보필하길 바랄 따름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증석이 아뢨다. “늦은 봄에 새 옷을 지어 입고 청년 대여섯, 아이 예닐곱과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쐰 다음 더불어 노래 부르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저 옛날, 겨울을 난다 함은 모진 추위와 기아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였다. 하여 봄은 살아낸 자들이 맞이하는 생명의 환희였다. 새 옷을 지어입고 여럿이 강가에서 묵은 때를 씻어낸 다음 하늘에 제를 올리는 무우로 가 선물 같은 봄바람을 쐰다. 그런 후 더불어 노래하며 삶터로 복귀한다는 바람. 중용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물음의 답변치곤 자못 뜬금없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공자는 증석과 함께하겠다고 찬동했다. 이어진 대화를 보면, 증석은 이것이 바로 정치라고 믿고 있었다. 염구와 공서화의 바람은 정치로 볼 수 없지 않으냐며 반문했으니 말이다. 물론 공자는 염구와 공서화의 바람도 정치임을, 그것도 큰 정치임을 분명히 하였다. 자로의 바람도 그것에 겸양을 더하면 정치에 해당된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가 더 크게 동의한 것은 증석의 바람이었다. 중용되면 그리 행하겠다는 바람은 결국 자신뿐 아니라 인민 모두가 그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고, 공자는 이런 정치에 찬동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언뜻 봐도 그렇고 따져보면 더 그렇듯이, 증석의 바람은 정치라기보다는 노닒이다. 결국 공자가 정치의 최고봉으로 노닒을 제시했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 공자와 잘 안 어울린다는 점이다. 그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기어코 하려는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치열하게 삶에 임해왔다. 식사할 때나 잠잘 때조차도 엄숙함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니 노닒을 가장 하고픈 정치로 꼽았음이 선뜻 납득되지 않음은 일리 있다(실은 증석의 바람이 지닌 의미는 무척 크다. 그래서 공자가 찬동했음인데, 이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상론하기로 한다).

그런데 공자가 노닒, 그러니까 한자로 ‘遊(유)’ 또는 ‘游(유)’로 표기되는 이것을 중요한 가치로 꼽은 적은 이것이 유일하지 않았다. <논어>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도에 뜻을 둔다. 덕에 근거한다. 인에 의지한다. 예에서 노닌다.” 여기서 예(藝)는 줄곧 육예(六藝)의 뜻으로 풀어왔고, 육예는 다시 ‘예·음악·활쏘기·수레몰이·식자·산술’의 여섯 학예 또는 <시> <서> <예> <악> <역> <춘추>의 여섯 경전으로 풀어왔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학예, 그러니까 배움과 익힘의 대상 전반을 가리킨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곧 학식의 갖춤을 공자는 “예에서 노닌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여기에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둬야 서른에 어엿한 어른으로 설 수 있다는 공자의 말을 결합해보자. 그러면 “예에서 노닒”이란 활동이 도와 덕과 인이란 윤리학적 목표를 달성함에 근간임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한 윤리학적 목표를 실현함에는 학식이 근간이 되는데, 학식을 쌓아가는 방식이 학예에서 노닒이었다는 것이다.

■노닒, 삶이 공부로 이어지는 경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론을 펼쳤다는 곳인 중국 산둥성 대성전(공자 사당) 내부의 ‘행단’.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론을 펼쳤다는 곳인 중국 산둥성 대성전(공자 사당) 내부의 ‘행단’.

공자는 노닒을 이렇듯 공부법의 하나로 제시했다. <논어>에서 예(藝)는 모두 네 차례 쓰였는데, 그 모두 배움이나 익힘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논어>에선 이러한 뜻을 지닌 예가 배우는 활동을 가리켰던 학(學)이나 습(習), 독(讀) 그리고 ‘깨우치다’는 뜻의 문(聞) 등의 동사와 결부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분명 배움의 대상으로 설정됐음에도, 그래서 예컨대 “육예를 학습하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음에도 굳이 노닐다(遊)란 동사와 결합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필자만 지녔던 궁금증이 아니다. 앞서 서술했듯,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고 배움과 끊임없는 익힘을 기쁨의 참된 원천으로 여겼던 공자의 일관된 태도와 노닒 사이에는 거리가 꽤 있어 보인다. 게다가 노닒은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공자와 엄청 다른 세계관을 지닌 장자에게도 깨달음이나 앎을 획득하고 실천하는 중요한 활동으로 꼽혔다. 그러니 역대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노닒은 확실히 배움(學)과 익힘(習) 등과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배움과 익힘에 대한 공자의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구절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정도로 해석되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다. <논어>의 첫 머리인 이 구절의 학(學)과 습(習)에 대해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다음과 같이 풀었다. “학은 본받는다는 말이다. 인성은 다 선하지만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으니 뒤에 깨닫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앞서 깨달은 이가 행한 바를 본받아야 한다. (…) 습은 새가 걸핏하면 날갯짓하는 것이다. 그침 없이 배우는 것은 새가 걸핏하면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주희는 학을 ‘본받다’의 뜻으로 풀었고, 습을 본받은 바를 무시로 반복한다는 뜻으로 풀었다. 그뿐 아니라 <순자>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도 이러한 풀이가 나온다. 단지 주희만의 견해가 아니라 공자의 견해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로, 여기서 학습은 그 대상을 그대로 따라함이 기본임을 알게 된다. “예에서 노닐다”의 앞 구절인 “덕에 근거한다. 인에 의지한다”의 근거한다(據)와 의지한다(依)에 대해, “꼭 잡고서 미동도 않는 것을 거(據)라 한다”, “타인과 접촉해 있기 때문에 의(依)라고 했다” 유의 주석이 그래서 붙어왔다. 따라서 학습대상과의 결부 정도가 높을수록 잘 배운 게 된다.

이에 비해 노닒은 “딛거나 기대지 않는다”는 <논어집해>의 주석처럼, 주로 ‘붙어 있지 아니함’, ‘유유자적함’ 등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이해되었다. 공부 대상과 연동되어 있지만 그것에 구속되지 않음을, 주희의 비유처럼 물고기가 물결에 거슬러 헤엄치지만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비유컨대 학과 습이 대상과 주체의 톱니바퀴 같은 기계식 결합이라면, 노닒은 떨어져 있지만 필요할 땐 한 세트로 움직이는 인체의 관절처럼 연동된다. 이를 두고 절합(節合)이라 칭하는데, 이는 기계식 결합과 달리 기름을 치고 전원을 넣어야 비로소 구동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주희가 “활동하든 휴식하든 간에 늘 길러지는 것이 있게 된다”고 부연했듯이, 꼭 작심하고 공부할 때만이 배우고 익히게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노닒은 그 자체로 공부가 된다는 말이다. 물고기는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쉴 때도 유영을 멈추지 않는다. 곧 물고기에겐 쉬는 것도 헤엄치는 것이다. 아니 이는 인간의 시선으로 포착했을 때의 이해에 불과하다. 물고기는 쉼과 활동의 구분 없이 늘 유유자적 헤엄칠 따름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공부법으로서의 노닒은 ‘쉬는 것이 학습이요, 학습이 곧 쉬는 것’이라는 명제를 던져준다. 노닒이란 활동에 쉼과 학습이라는 대립적으로 보이는 양자가 통합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여 노닒은 지금 여기의 우리 현실에 시급히 소환될 필요가 있다. 유아 교육에서부터 고등 교육, 심지어 평생 교육에 이르기까지 학습이 삶과 현저하게 괴리된 지금, 노닒의 공부법은 쉼과 학습을, 나아가 삶과 앎을 긴밀히 연동시키는 쏠쏠한 대안이기에 그렇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609301906005#csidx935bb72f5b245dfbace5a6628011e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