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70인과의 동행] (25) 전 세계 생물을 만나고,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다
박성진 안보전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입력 : 2016.10.14 21:19:00 수정 : 2016.10.14 21:23:07
ㆍ최재천 국립생태원장과 충남 서천 생태문화 여행
우산이 굳이 필요 없는 이슬비가 내리던 지난 8일 오전 8시.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 34명과 함께 서울시청 앞을 출발해 충남 서천으로 생태문화여행을 떠났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동물원이 아닙니다. 수목원도, 식물원도 아닙니다. 바로 생태원입니다.” 인솔 가이드 조미희씨(50)의 말이 실감으로 와 닿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시간여를 버스로 달려 국립생태원에 도착하자 비가 멈추고 선선한 가을 날씨로 변해 있었다.
국립생태원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생태도시 충남 서천에 자리 잡고 있는 30만평의 공간이다.
금강과 서해바다가 만나 비옥한 땅과 생명들이 있는 곳이다. 국립생태원은 이곳에서 지구 생태를 연구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열대부터 극지까지 작은 지구 생태계를 재현해 놓고 있다.
참가자들은 선선한 가을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움직이는 자연을 만끽하며 국립생태원의 랜드마크인 에코리움으로 향했다. 살아 있는 생태 전시공간인 에코리움은 열대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지구의 대표 기후대별 생태계를 체험하면서 기후와 생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식물 1900여종, 동물 230여종이 2만1000㎡가 넘는 공간에 함께 전시돼 있다.
에코리움 가는 길에 한 참가자가 “둠벙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최 원장의 ‘둠벙 예찬’이 시작됐다. “둠벙은 논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며 유기 토양을 만들고 논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켜줍니다. 밤에는 너구리나 고라니 등이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둠벙’은 사전적 의미로 웅덩이를 의미하지만, 논밭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하면서 수백종의 생물들이 깃드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라는 것이다. 한상순씨의 동시 ‘할아버지의 둠벙’이 생각난다. ‘뒷골 다랑논에 가면 물 받아 농사짓던 둠벙 하나 있지요. 장구애비, 소금쟁이, 물자라, 참개구리….’
아이가 올라타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생식물인 빅토리아 수련이 있는 연못을 지나 에코리움에 도착했다. “원래는 파도 모양의 지붕 모습을 구현한 건물이었는데 짓고 나서 보니 산 능선처럼 보이면서 오히려 주변과 잘 어울립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연구기관으로 장바닥처럼 뛰어다니기보다는 들여다보고 궁금증이 생기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본 후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는 곳입니다.” 최 원장이 초현대식 건물인 에코리움을 소개했다.
최 원장은 참가자들에게 판에 박힌 특강보다 길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야생동물인 개미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고 보니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이면서 2013년부터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맡고 있는 최 원장은 세계적인 개미 전문가로 대한민국에서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개미제국의 발견>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거품예찬> <통찰> 등 40여권의 책을 집필 및 번역한 저자이기도 하다. 10여년 전 ‘통섭’이라는 개념을 소개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낮추어 우리 사회에 소통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마침 에코리움 기획전시관에는 ‘개미과학기지로 떠나는 개미세계탐험전’이 내년 2월28일까지 열리는 중이다. 한국홍가슴개미, 가시개미, 광택불개미 등 국내에서 서식하는 개미 8종과 흰개미 1종, 벌 2종 등 모두 11종이 전시되고 있다. 동남아, 미국, 코스타리카 등지에서 가져온 잎꾼개미, 꿀단지개미, 기가스왕개미 등 6종의 해외 개미도 선보이고 있거나 추가로 전시할 예정이다.
모두의 찬성으로 최 원장의 개미 강의는 개미굴로 들어가는 느낌인 ‘개미과학기지’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개미에 제일 ‘꽂힌’ 민족이 우리 배달민족입니다. 세계 99개국에 번역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도 저자가 사는 프랑스를 제외하고 제대로 팔린 곳은 우리나라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인간의 품성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근면입니다. 게으른 꼴을 절대 못 보는 거지요. 아마도 그래서 부지런한 개미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호주 북부 열대지역에서 온 베짜기개미가 마치 베를 짜는 것처럼 나뭇잎들을 이어서 집을 만들었다. “베짜기개미는 집 짓는 과정에서 기가 막힌 협동을 합니다. 먼저 개미끼리 허리를 물고 체인 형태로 길게 늘어서 집을 만들 나뭇잎을 잡아당겨 끌고 옵니다.” 최 원장은 베짜기개미에게 ‘한산모시짜기 개미’란 별명을 즉석에 붙여줬다. 최 원장은 이번 전시회 ‘최고의 스타’로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온 잎꾼개미를 꼽았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만년 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개미는 6500만년 전부터 ‘농사’를 지었습니다. 잎꾼개미는 나뭇잎을 잘라 농사를 짓습니다.” 최 원장의 설명을 시연이라도 하듯 잎꾼개미들은 10m 길이의 세계 최대 규모로 재현한 개미 생태공간 안에서 열심히 나뭇잎을 날랐다.
연한 붉은 색깔의 잎꾼개미들은 먹거리인 버섯 균류를 만들기 위해 한쪽에서 손바닥만 한 나뭇잎을 이빨로 조각조각 자르면 다른 한쪽에서 자기 몸보다 두세 배나 큰 나뭇잎 조각을 입에 물어 쪼르르 개미굴로 날랐다. 굴 앞에서는 다른 무리가 톱날 같은 이빨로 잎을 더 잘게 썰어 잎 반죽을 만든 뒤 효소가 들어 있는 배설물과 섞었다. 이것으로 키운 진회색의 스펀지 모양의 버섯은 잎꾼개미들이 알을 낳고 애벌레를 키우는 생활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잎꾼개미들이 키우는 ‘버섯’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곰팡이의 일종이라는 게 최 원장의 설명이었다.
여성사회라는 점에서 비슷한 ‘개미와 벌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돌발 질문이 나왔다. “벌은 여왕벌이 다른 집을 만드는 분봉을 합니다. 그러나 개미사회에서는 여왕개미가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세습’이 없습니다. 자식을 뒷바라지하지도 않습니다. 여왕개미가 죽으면 그 개미집단은 끝납니다. 다만 여왕개미가 낳은 새 여왕개미가 굴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자리 잡는 데 성공하면 종족 번식에 성공한 것입니다.”
최 원장의 추가적인 해설이 이어졌다. “여왕개미와 일개미의 유전자 차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미 수명은 몇달에서 몇개월에 불과합니다. 여왕개미는 길면 수십년을 삽니다. 아마도 애벌레 때 잘 먹은 덕분인 듯싶습니다. 초기 영양이 중요한 것이죠.”
최 원장의 해설은 다시 잎꾼개미로 돌아왔다. “잎꾼개미는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계급이 4단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4계급 개미는 각각 몸 크기와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분업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개미는 1만종가량 됩니다. 이 가운데 95%는 성장하면서 맡은 역할이 바뀌는 개미입니다. 여왕개미의 시녀개미에서 청소개미로, 다시 보모개미로 역할이 변경되는 식입니다. 성장하면서 점차 더 어려운 일을 하게 됩니다. 재밌는 것은 개미는 ‘늙은 할머니’를 전쟁터로 보냅니다. 이는 개미사회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미는 외골격을 갖고 있고, 노화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개미를 개미굴 바깥으로 내보내 씨우게 하는 게 효율적인 것입니다.”
참가자 이혜린씨(54)는 “개미 전문가인 최 원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직접 개미사회를 관찰해보니 경이롭다”고 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전시장 벽면의 글귀가 새로웠다.
개미과학기지를 나와 최 원장과 헤어진 참가자들은 이하영 생태해설사(30)를 만났다. 그의 안내로 참가자 일행은 열대 생태환경을 재현한 열대관을 시작으로 사막관, 지중해관, 극지관, 온대관 등을 둘러보면서 기후와 생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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