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이 아름다운 숲, 다신 볼 수 없을지 몰라요”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0. 23:14

“이 아름다운 숲, 다신 볼 수 없을지 몰라요”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ㆍ광릉숲 통과 터널 건설 논란
ㆍ국토부, 제2외곽순환도로 계획…환경단체·산림청 강력 반발에 보전지역 내 외곽으로 추진

지난 7월26일 경기 포천 광릉숲의 숲길을 탐방객들이 걷고 있다. 세조의 능인 광릉의 능림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이 국토교통부와 포스코건설의 포천~남양주 구간의 터널 건설계획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사)생명의숲 제공

지난 7월26일 경기 포천 광릉숲의 숲길을 탐방객들이 걷고 있다. 세조의 능인 광릉의 능림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이 국토교통부와 포스코건설의 포천~남양주 구간의 터널 건설계획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사)생명의숲 제공

‘생명이 가득하고, 아름다운 숲.’

지난 7일 찾은 경기 포천의 죽엽산은 멀리서 봐도 ‘수도권의 허파’라 불리는 광릉숲의 일부로서 건강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도 숲속을 들여다보기 어렵고, 숲속에 들어가면 숲 밖이 내다보이지 않는 원시림에는 수령이 1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숲이나 식물을 잘 모르는 문외한도 국내에 5곳밖에 없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아름답고, 국제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은 숲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포스코건설·경남기업 등이 참가한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주식회사가 들고나온 터널 계획 때문이다. 국토부로부터 수도권 제2외곽순환도로의 포천시 소흘읍~남양주시 화도읍 구간 건설사업을 수주한 포스코건설 등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완충지대’와 ‘전이지대’ 지역을 관통하는 터널을 포함한 건설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유네스코 규정에 따르면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에선 어떤 인위적 활동도 금지돼 있으며 완충지역은 보전을 중심으로 교육·연구활동만 가능하다. 전이지대에선 일부 경제활동이 가능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생물권보전지역에 터널을 설치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광릉은 조선 세조의 능으로, 광릉숲은 1468년 능림으로 지정됐으며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뛰어난 생태계를 지닌 지역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해 생태계의 생물다양성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고, 그 이익을 다시 생물다양성 보전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광릉숲의 전체 넓이는 2만4465㏊이며 소리봉과 죽엽산을 중심으로 한 숲이 핵심지역(755㏊)이다. 완충지역은 1657㏊, 주거와 경제활동이 가능한 전이지역은 2만2053㏊이다. 이날 함께 죽엽산을 둘러본 유영민 생명의숲 사무처장은 “현재 광릉숲 죽엽산의 숲은 소나무를 중심으로 대부분 안정적인 극상림을 이루고 있다”며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나무를 베어내고 조림을 했던 일부 지역에서만 서어나무 등 수종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상림(極相林)이란 숲에서 식물종 간의 경쟁에 따라 변화하던 종 구성이 안정을 이루면서 숲이 최적의 상태로 장기간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광릉숲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인위적인 간섭 없이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국립수목원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기술생산연구소가 주로 관리하고 있는 이 숲은 생태탐방, 연구 목적 등 외에는 개발행위가 철저히 금지돼 있다. 하늘다람쥐, 원앙 등 멸종위기 동물과 초록하늘소, 장수하늘소 등 역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곤충과 특산식물을 포함해 6112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중요한 가치를 지닌 숲이다보니 지난해 터널 건설계획이 알려진 뒤 주민, 환경단체뿐 아니라 광릉숲의 관리를 맡고 있는 산림청 및 연구기관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광릉숲보전협의회와 국립수목원 등은 국토부와 건설사 측에 터널 계획을 강하게 반대하는 의견을 제출했다. 국립수목원은 의견서에서 “고속도로가 지나는 노선 일부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과 연접한 완충지역이어서 터널을 개설할 경우 등재 취소가 우려된다”며 “도로 개설 시 소음, 진동 등으로 각종 생물 서식지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 다양한 생물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주민, 환경단체, 학계 등으로 구성된 광릉숲보전협의회는 “산림생태계의 보고인 광릉숲을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된다면 소음, 진동 등으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명백하고, 인공조명으로 서식지가 파괴될 수도 있다”며 “고속도로 사업계획을 전면 폐지하거나 광릉숲을 넓게 우회해 개설할 것”을 요구했다.

반발이 잇따르자 포스코건설 등은 지난달 20일 환경부에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에서 완충구역을 살짝 피해 전이구역에 터널을 설치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터널 위치가 전이구역으로 바뀌긴 했어도 애초에 완충구역 자체가 좁게 설정된 탓에 죽엽산 식생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릉숲에 터널이 생길 경우 터널 시점부와 종점부의 지형, 식생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지하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쳐 죽엽산 전체에 피해를 줄 우려도 있다. 아무리 첨단공법을 동원해도 예기치 못한 피해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터널을 놓기 위해서는 죽엽산 인근 마을인 내촌면 진목3리 위를 교량이 통과해야 하는데 포스코건설의 현 계획이 실현된다면 주민들로서도 고속도로 소음과 미세먼지, 교량으로 인한 경관 훼손과 일조권 침해 등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포스코건설 등의 광릉숲 훼손 시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대한 허술한 관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습지는 람사르협약에 따른 람사르습지로 등재될 경우 국내법에 의해서도 철저한 보전, 관리가 이뤄지지만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은 연계된 국내법이 없기 때문이다. 유영민 사무처장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될 경우 산림유전자원보전지역, 국립공원 내 절대보전지역, 생태경관보전지역 등 자연보호지역에 준해 관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법률적 보호장치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생물권보전지역을 터널이 관통하는 위기가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릉숲 터널 관통 허용은 현재 사회적 논란을 빚고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와 함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서의 개발 허용’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길 위험도 크다. 비슷한 시기에 이뤄지고 있는 생물권보전지역 개발 추진이 허용될 경우 극히 엄정한 보전이 필요한 지역조차도 개발, 훼손이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사무처장은 “국토부와 포스코건설 등은 주민, 환경단체, 산림청과 논의했던 대로 생물권보전지역을 우회하는 안으로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며 “환경부는 생물권보전지역의 훼손을 일으킬 수 있는 건설계획이 담긴 환경영향평가를 그대로 통과시켜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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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610103&artid=201610092129005#csidx63c12b1c070d2d9a85e214ad1786d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