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는 왜 역설적이고자 했나 | |
루소-인간불평등의 발견자 리오 담로시 지음·이용철 옮김/교양인·3만5000원 | |
최원형 기자 | |
장자크 루소(1712~1778·사진)는 18세기 최고의 독창적인 사상가로 꼽히며, 그의 모든 저작은 한결같이 문제작이 됐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인간 문명과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냈고, ‘인민주권’을 주창한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의 밑받침이 됐다. <에밀>은 새로운 교육 이념을 제시했고, 자기성찰적 자서전인 <고백록>은 최초의 정신분석 시도로 평가받는다.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공인 이자크 루소와 쉬잔 베르나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을 낳은 뒤 곧 세상을 뜬 어머니와 가족을 보살피지 않은 아버지의 존재는 루소에게 ‘자아에 대한 불안’을 심어줬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친척집에 기탁된 신세나 견습공 생활, 하인, 가정교사, 악보 필경사, 통역사 등 온갖 자리를 떠돌았던 그의 어린 시절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후원자가 되어 줬던 바랑 부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하여 독서에 몰두하게 된 것은 독창적인 학문의 기초를 쌓게 해 주었다. 오랫동안 자기 속에 숨어 있던 루소의 재능은 프랑스 파리에서 디드로, 달랑베르 등 젊은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학문과 예술, 문화, 과학 등 문명의 발전이 인간성의 타락을 가져왔다는 논지의 <학문 예술론> 논문이 디종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으며 유명 작가로 떠오른 것. 그 뒤 역시 디종 아카데미의 공모에 제출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 논문으로 루소는 저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 논문에서 그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선하고 자유로운 존재였으나, 사회가 인간을 이기적이고 사악하게 만든다”는 독창적인 사유를 내보였다. ‘불평등의 기원이 인간 문명과 사회에 있으며, 용납하기 힘든 동시에 불가피하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 인간과 사회의 진보를 말하던 계몽주의 철학에 강력한 비판을 던졌다. 1756년 에르미타주에 정착한 루소는 낭만적인 연애소설 <신 엘로이즈>, 문제작인 <에밀>과 <사회계약론>을 잇달아 펴냈다. 에밀이라는 아이가 요람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에밀>은 근대 교육론의 기틀이 된 작품으로 꼽힌다. 자녀들을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보냈던 루소는, 아버지로서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사회계약론>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주창한 것처럼, ‘어떤 종류의 인간 사회든 불평등과 착취는 항상 있기 마련’이라는 삶의 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루소는 ‘인민 주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쇠사슬을 외부에서 부과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받아들인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루소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암묵적 협약으로서 사회계약의 이상을 제시했고, 개인의 의지를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공통의 의지로 확장하는 ‘일반의지’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그러나 여기엔 인민이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사회계약은 고대 그리스처럼 작은 규모의 도시 국가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인식도 담겨 있었다. 이런 급진적 사상 때문에 절대왕정과 기독교를 위협하는 인물로 낙인찍힌 루소는 프랑스와 스위스 등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어 영국에 자리를 잡는다. 망명 기간 동안 심각한 박해망상에 시달렸던 루소는 자기성찰적인 자서전인 <고백록>을 남겼다. 자신의 체험과 사유, 망상 등을 낱낱이 기록하여 자기 삶의 모든 갈피를 자세히 들여다본 정신분석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그 뒤 루소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석하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집필하지만 이를 끝내지 못하고 1778년 건강이 악화돼 숨졌다. 지은이는 루소를 “역설로 가득 찬 독창적인 천재”로 평가한다. 혁명 이념의 창시자이면서도 ‘일반의지’ 주장 때문에 파시즘의 원류로 오해받듯, 그의 사상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또 자신의 자녀들은 고아원에 맡겼으면서도 이상적인 교육을 꿈꾸고, 철저한 평등론자였지만 귀족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등 그의 삶도 모순적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의 모든 작품을 지탱하는 추진력은 우리 삶의 경험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들을 직시하려는 결단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루소는 <에밀>에서 스스로 “나는 편견을 지닌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역설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은이는 그가 말한 편견을 “어려움 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과 잘 지내고 세상살이를 편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루소는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것들 속에 머물지 않고,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 뒷면을 끌어내 보려 했던 ‘문제적 인간’이었다는 평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