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만 3800명, 보지도 않고 사간다는 인천 구둣가게
기사입력 2021.09.11. 오전 11:08 기사원문 스크랩
43년째 구두 만들어온 '베로나 수제화' 도현동 사장... 고객 한 사람에 집중하는 장인정신
장인은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과 혼을 담은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오직 일 자체를 위해 몰입하는 인간의 모습.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장인의 이미지다.
인천 주안역(1호선) 3번 출구로 나와 도화역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도현동 사장이 운영하는 '베로나 수제화'가 있다.
베로나 수제화는 요즘 보기 드문 오래된 수제화 전문점이다. 매장 안에는 남자 구두를 비롯해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여자 구두가 빼곡하다. 도 사장은 43년째 수제구두만을 고집하며 외길 인생을 살아온 구두 장인이다.
IMF로 곤두박질, 인천에서 다시 일어서다
1978년 당시 20대 초였던 그는 대학 진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업으로 구두를 만들고 있던 아버지와 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구두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구두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기도 했었거든요.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해 줬어요. 제가 만든 신발이 제법 인기가 많아서 잘 팔리더라구요. 그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저 스스로 제법 솜씨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구두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서 형에게 정말 많이 혼났어요.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구두를 43년째 만들고 있네요."
도 사장은 당시 수제구두의 성지였던 명동의 한 구두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수습생으로 기술을 연마한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한 제의를 받아 1986년 2월 백화점으로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동부 이촌동 신동아 쇼핑센터에 첫 매장을 열었고, 이어서 압구정동 한양 백화점(현 갤러리아 백화점)에도 입점했지만,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문제점을 신발의 퀄리티에서 찾은 도 사장은 제품 개발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 그 후 잠원동 뉴코아 백화점에 입점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루에 이백 켤레 이상이 팔렸다.
그즈음 도 사장은 지인의 부탁으로 인천 희망백화점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인천에서도 베로나 수제화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 23개의 매장에서 도 사장이 만든 베로나 수제화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눈앞에 성공의 고지가 손에 잡힐 듯하던 그때 1997년 IMF 위기를 맞게 된다.
"완전 바닥을 쳤어요.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압류를 당했거든요. 정말 힘들었어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던 도사장은 부도난 어음 일부를 보상받아 지금 이 자리(미추홀구 석정로 368)에서 다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구두를 만들었고 정성을 다해 고객을 맞이했다.
그가 절대 잊지 않는 2500여명의 이름
▲ 도현동 사장이 수선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고객에게 설명하고 있다. |
ⓒ 최시연 |
▲ 베로나 수제화의 도현동 사장이 작은 다리미로 신발의 겉가죽의 미세한 주름을 펴는 작업(오른쪽)과 구두를 완성화기 전 최종적으로 한번 더 망치를 두드리며 점검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망치질을 천 번은 해야 구두가 완성된다. |
ⓒ 최시연 |
그렇게 다시 첫걸음을 뗀 지 23년 만에 그는 단골만 3800명이 넘는 베로나 수제화로 다시 우뚝 서게 된다.
"제가 말하는 단골은 신발을 최소한 두 번 이상은 맞추신 분들이에요. 이분들 중 2500여 명은 지금도 이름을 외우고 있어요. '고객 한 분 한 분은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을 매 순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희 고객 중에는 제가 그분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신발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또 그냥 지나가면서 들르기도 하시고요."
이처럼 베로나 수제화는 고객들이 사랑방처럼 편안하게 들렀다 갈 수 있는 곳이다.
"새로운 신발을 디자인해서 만들 때 가끔은 어떤 대상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그분이 그 신발을 사가는 경우가 많아요. 정말 신기하죠?" 이 말을 하던 당일도 그날 출시된 새 제품을 보지 않고 구매하는 고객이 있었다. 그 신발은 그 고객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사고객과의 믿음으로 형성된 특별한 거래 방법일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걱정할 건 없어요. 제가 바로 바꿔드리거든요"라며 호탕하게 웃는 도현동 사장. 고객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신뢰가 형성된 그만의 판매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베로나 수제화에서는 삼삼오오 짝을 이뤄 들른 고객들이 편안하게 이 신발, 저 신발을 마음껏 신어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신어보던 고객들은 신고 온 신발은 벗어 수선해 달라며 맡기고 새 신발을 신고 나간다.
정돈되지 않은 듯 보이는 베로나 수제화의 풍경엔 이처럼 편안하게 들른 고객에 대한 도 사장의 배려가 숨어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해 놓으면 사람들이 편안하게 신어보지 못해요. '이 신발 신어봐도 돼요?'라고 자꾸 물어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둬요."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는 한 고객은 다른 곳에서 구매한 샌들을 도 사장 앞에 내놓으면서 "이 장식이 너무 예뻐서 샀는데 발이 아파요. 이 장식을 넣어서 편안하게 신을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 주세요"라는 주문을 했다. 이에 도 사장은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라고 답을 한다. 이들 사이에는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필요 없어 보인다.
베로나의 번영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 도현동 사장이 디자인해서 만들어 낸 여자 신발(여자 신발은 백화점에 납품하기 시작한 1986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
ⓒ 최시연 |
그는 처음 10여 년 동안은 남자 구두만을 만들어 왔지만,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여자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백화점엔 남자 손님보다 여자 손님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여자 구두는,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정교함에서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매 순간 감각을 잃지 않도록 다방면으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했다. 많이 보고, 때로는 젊은 감각을 가진 미대생들을 채용해 도움을 받으면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매 순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작은 남자 구두였지만 지금은 여자 구두 만들기에 더 매진하고 있다는 도현동 사장.
"보석을 매개로 한 화려하고 화사한 여자 신발은 우리 베로나의 주력상품이에요. 보석을 다루는 데는 아마도 저를 따라 올 사람이 없을걸요." 그는 미처 생각지 못한 아주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써서 신발을 만들고 있었다.
▲ 도현동 사장이 자신 있게 만드는 화사한 여자 구두 |
ⓒ 최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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