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낙관론자인가
여러 해 동안 ㅡ 적어도 아돌프 로스(Adolf Loos)와 칼 크라우스(Karl Krauss)의 시대 이래인데 그 두 사람 모두를 나는 알고 있었다 ㅡ 우리의 지식인은, 우리의 문화라고 지칭되는 것이 상업화된 산업이고 그리하여 저속한 것과 천박한 것일 뿐이라는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했다. 특히 이 산업이 대중에게 문화로서 제공하는 것에서 비관론자는 타락과 무미건조함만을 본다. 그러나 낙관론자는 다른 면도 본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의 ㅡ 모든 음악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 ㅡ 음반과 녹음테이프 수백만 개가 구매되고 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음악가들과 그들의 훌륭한 음악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숫자는 셀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어린이들을 잔인하고 폭력적 영화와 텔레비전에 노출함에 의하여 그 어린이들이 잔인성과 폭력에 익숙해지도록 우리가 거의 의도적으로 교육한다고 비관론자들이 지적할 때 나는 물론 비관론자들과 틀림없이 의견을 같이한다. 불행하게도 현대 문학에도 동일한 것이 유효하다. 그러나 낙관론자로서 나는, 폭력을 전파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여전히 선량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문화적 비관론자들은, 증오로 가득 찬 우리 시대에 ㅡ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전적으로 확실하다 ㅡ 관하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해야 한다.
비관론자들은 도덕적 및 정치적 쇠퇴를 지적하여, 우리가 모두 안전하다고 생각한 인권들에 대한 무시를 지적한다. 그들은 옳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은 과학과 기술에서 과학의 이용 때문이라고 비난할 때 그들은 또한 옳은가? 물론 옳지 않다. 그리고 낙관론자는, 과학과 기술이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에게 매우 제한적 번영을 가져왔다고 그리고 이전 세기의 충격적 빈곤과 고통이 세계의 커다란 지역들에서 거의 추방되었다고 평가한다.
여러분, 나는 진보를 신뢰하는 사람도 아니고 진보의 법칙을 신뢰하는 사람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 우여곡절이 있다. 커다란 부유함은 커다란 타락과 동시에 발생할 수 있고 예술의 만개는 인간성의 쇠퇴 및 선한 의지의 쇠퇴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40여 년 전에 나는, 진보에 대한 신뢰에 반대하여 그리고 예술에 미치는 그리고 과학에 미치는 유행과 현대성 예찬의 영향력에 반대하여 몇 편의 글을 썼다. 겨우 최근에 우리는 현대성이라는 개념과 진보라는 개념을 신뢰하도록 요청받아서 오늘날 우리는 문화적 비관론을 주입받을 수 있다. 내가 비관론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긴 생애에서 나는 퇴행뿐 아니라 매우 명백한 진보의 증거를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와 우리 사회에 관하여 훌륭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문화적 비관론자들은 이것을 보지 못하여 그 비관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지도적이고 칭찬받는 지식인들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실제로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말할 때 해악을 끼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방식으로 그 지식인들은 사람들을 불만 상태로 만들 뿐 ㅡ 저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터이다 ㅡ 아니라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삶에서 그들의 즐거움은 그들로부터 탈취된다. 자신의 개인적 삶에서 크게 불행했던 베토벤은 자기 작품을 어떻게 끝냈던가? 쉴러(Schiller)의 환희의 송가(Ode to Joy)로 끝냈다.
베토벤은 자유와 관련하여 절망적 시대에 살았다. 프랑스 혁명은 공포정치로 그리고 나폴레옹의 제국으로 사멸했다. 메테르니히(Metternich)의 왕정복고로 인하여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억압당했고 계층 적대감이 예리해졌다. 대중의 비참함은 지독했다. 베토벤의 기뻐하며 경배하세(Hymn to Joy)는, 인류가 갈라진 계층 적대감에 반대하는 열정적 항의이다; ‘예리하게 갈라졌다’라고 (‘streng geteilt’) 쉴러는 말하는데, 베토벤은 이 단어들을 한 장소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여 합창단에 의한 감정폭발을 위하여 바꾼다: ‘무례하게 갈라졌다’(‘frech geteilt’). 그러나 그는 계층 증오를 알지 못한다; 그는 자기 동료 인간의 사랑만을 안다. 그리고 그의 작품 거의 모두는, 장엄미사곡(Missa Solemnis)이 그러한 것처럼 위안의 정신으로 끝나거나 교향곡들과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가 그러한 것처럼 환호하는 것으로서 끝난다.
우리와, 작품을 많이 창작한 동시대의 많은 예술가는 우리의 문화에 관한 비관적 선전의 희생물이 되었다. 자신들이 충격적 세상으로서 간주하거나 충격적인 역사적 기간을 충격적 방식으로 간주하여 제시하는 것이 자기들의 과제라고 그들은 믿는다. 심지어 과거의 몇몇 위대한 예술가도 바로 이렇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고야(Goya)나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를 생각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그런 비판은 필요하고 그런 비판은 틀림없이 매우 당혹스럽다. 그러나 그런 비판의 중요성이 한탄에 놓여서는 안 된다; 더 정확하게 그런 비판의 중요성은, 자체의 시대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찬 피가로의 결혼(The Marriage of Figaro)에서와 같이, 고통을 극복하려는 외침이 되어야 한다. 그런 비판은 재치, 풍자 그리고 역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더 깊은 중요성을 담고 있다. 이 훌륭한 작품에 진지함이 많고 심지어 슬픔도 많지만, 또한 기쁨과 넘치는 생기가 많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224-5쪽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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