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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그리고 예술에서
창조적 자기-비판
(베토벤의 스케치북에서 도용함)
먼저 나는 잘츠부르크 축제(Salzburg Festival)에서 개회 연설해달라는 친절한 초청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것은 커다란 영예이다. 초청받고 나는 완전히 놀랐고 초청은 심지어 다소 당혹스러웠다. 1950년 이래 나와 나의 아내는 칠턴 구릉지대(Chiltern Hills)에 있는 우리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영위했다. 우리에게 텔레비전도 없었고 우리는 신문도 구독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했다. 나의 연구는 주로 추상적 주제와 관련되었다: 인간의 지식 문제와, 특히 과학적 지식의 문제. 저렇다고 해서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내가 개회 연설할 자격이 나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왜 내가 초청받았는지 나는 의아했다. 먼저 나는, 내가 다른 사람과 혼동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70년이 훨씬 넘은 내가 약 5세나 6세 때인 어린 시절 사랑으로부터 유래한 이 도시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인가? 그러나 아무도 이것을 알지 못했다. 반세기 이상 전, 얼음같이 차가운 밤에 내가 여기서 경험한 모험에 관하여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정이었고 나는 스키 타고 나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당시 보름달의 아름다운 달빛 속에서 나는 우연히 잘츠부르크에 있는 유명한 말 연못(horsepond) 두 곳 중 한 곳으로 미끄러졌다... 정말로 나를 여러분의 초청 연사로 선택한 데는 틀림없이 다른 이유들이 있다. 그때 나의 머리에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한 가지 면에서 나는 정말로 완전히 독특하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는 낙관론자이다. 지식층 가운데로 우리가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비관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엄격한 규칙이 된 세상에서 나는 낙관론자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가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것처럼 나쁘지 않다고 나는 정말로 믿는다. 우리 시대는 자체에 대한 평판보다 더 좋고 더 아름답다고 나는 정말로 믿는다. 4반세기 전에 나는 강좌를 열었는데 그 제목이 당시보다 오늘날 훨씬 더 도발적으로 들린다: ‘우리 시대의 역사: 낙관론자의 견해(The History of our Time: An Optimist’s View’. 그러므로 이 연설을 하도록 나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질적 낙관론자라는 명성이다.
잘츠부르크 축제와 연계되는 것들과 관련되기도 하는 나의 이 낙관론에 관하여 몇 마디 말을 하겠다. 여러 해 동안 ㅡ 적어도 아돌프 로스(Adolf Loos)와 칼 크라우스(Karl Krauss)의 시대 이래인데 그 두 사람 모두를 나는 알고 있었다 ㅡ 우리의 지식인은, 우리의 문화라고 지칭되는 것이 상업화된 산업이고 그리하여 저속한 것과 천박한 것일 뿐이라는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했다. 특히 이 산업이 대중에게 문화로서 제공하는 것에서 비관론자는 타락과 무미건조함만을 본다. 그러나 낙관론자는 다른 면도 본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의 ㅡ 모든 음악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 ㅡ 음반과 녹음테이프 수백만 개가 구매되고 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음악가들과 그들의 훌륭한 음악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숫자는 셀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어린이들을 잔인하고 폭력적 영화와 텔레비전에 노출함에 의하여 그 어린이들이 잔인성과 폭력에 익숙해지도록 우리가 거의 의도적으로 교육한다고 비관론자들이 지적할 때 나는 물론 비관론자들과 틀림없이 의견을 같이한다. 불행하게도 현대 문학에도 동일한 것이 유효하다. 그러나 낙관론자로서 나는, 폭력을 전파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여전히 선량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문화적 비관론자들은, 증오로 가득 찬 우리 시대에 ㅡ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전적으로 확실하다 ㅡ 관하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해야 한다.
비관론자들은 도덕적 및 정치적 쇠퇴를 지적하여, 우리가 모두 안전하다고 생각한 인권들에 대한 무시를 지적한다. 그들은 옳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은 과학과 기술에서 과학의 이용 때문이라고 비난할 때 그들은 또한 옳은가? 물론 옳지 않다. 그리고 낙관론자는, 과학과 기술이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에게 매우 제한적 번영을 가져왔다고 그리고 이전 세기의 충격적 빈곤과 고통이 세계의 커다란 지역들에서 거의 추방되었다고 평가한다.
여러분, 나는 진보를 신뢰하는 사람도 아니고 진보의 법칙을 신뢰하는 사람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 우여곡절이 있다. 커다란 부유함은 커다란 타락과 동시에 발생할 수 있고 예술의 만개는 인간성의 쇠퇴 및 선한 의지의 쇠퇴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40여 년 전에 나는, 진보에 대한 신뢰에 반대하여 그리고 예술에 미치는 그리고 과학에 미치는 유행과 현대성 예찬의 영향력에 반대하여 몇 편의 글을 썼다. 겨우 최근에 우리는 현대성이라는 개념과 진보라는 개념을 신뢰하도록 요청받아서 오늘날 우리는 문화적 비관론을 주입받을 수 있다. 내가 비관론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긴 생애에서 나는 퇴행뿐 아니라 매우 명백한 진보의 증거를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와 우리 사회에 관하여 훌륭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문화적 비관론자들은 이것을 보지 못하여 그 비관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지도적이고 칭찬받는 지식인들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실제로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말할 때 해악을 끼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방식으로 그 지식인들은 사람들을 불만 상태로 만들 뿐 ㅡ 저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을 터이다 ㅡ 아니라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삶에서 그들의 즐거움은 그들로부터 탈취된다. 자신의 개인적 삶에서 크게 불행했던 베토벤은 자기 작품을 어떻게 끝냈던가? 쉴러(Schiller)의 환희의 송가(Ode to Joy)로 끝냈다.
베토벤은 자유와 관련하여 절망적 시대에 살았다. 프랑스 혁명은 공포정치로 그리고 나폴레옹의 제국으로 사멸했다. 메테르니히(Metternich)의 왕정복고로 인하여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억압당했고 계층 적대감이 예리해졌다. 대중의 비참함은 지독했다. 베토벤의 기뻐하며 경배하세(Hymn to Joy)는, 인류가 갈라진 계층 적대감에 반대하는 열정적 항의이다; ‘예리하게 갈라졌다’라고 (‘streng geteilt’) 쉴러는 말하는데, 베토벤은 이 단어들을 한 장소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여 합창단에 의한 감정폭발을 위하여 바꾼다: ‘무례하게 갈라졌다’(‘frech geteilt’). 그러나 그는 계층 증오를 알지 못한다; 그는 자기 동료 인간의 사랑만을 안다. 그리고 그의 작품 거의 모두는, 장엄미사곡(Missa Solemnis)이 그러한 것처럼 위안의 정신으로 끝나거나 교향곡들과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가 그러한 것처럼 환호하는 것으로서 끝난다.
우리와, 작품을 많이 창작한 동시대의 많은 예술가는 우리의 문화에 관한 비관적 선전의 희생물이 되었다. 자신들이 충격적 세상으로서 간주하거나 충격적인 역사적 기간을 충격적 방식으로 간주하여 제시하는 것이 자기들의 과제라고 그들은 믿는다. 심지어 과거의 몇몇 위대한 예술가도 바로 이렇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고야(Goya)나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를 생각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그런 비판은 필요하고 그런 비판은 틀림없이 매우 당혹스럽다. 그러나 그런 비판의 중요성이 한탄에 놓여서는 안 된다; 더 정확하게 그런 비판의 중요성은, 자체의 시대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찬 피가로의 결혼(The Marriage of Figaro)에서와 같이, 고통을 극복하려는 외침이 되어야 한다. 그런 비판은 재치, 풍자 그리고 역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더 깊은 중요성을 담고 있다. 이 훌륭한 작품에 진지함이 많고 심지어 슬픔도 많지만, 또한 기쁨과 넘치는 생기가 많다.
여러분, 나는 나의 낙관론에 관하여 너무 많은 것을 말했고 내가 공표한 주제인 ‘과학에서 그리고 예술에서 창조적 자기-비판’으로 올 적당한 때이다.
이 주제는, 나의 서문에서 내가 말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비록 간략하게 일지라도, 위대한 자연과학자들의 창조적 업적과 위대한 예술가들의 창조적 업적들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 중 몇 가지를 나는 말하고 싶은데, 부분적으로 최근에 화제가 된 쟁점인 자연과학에 반대하는 문화적 비관론자들의 선전과 싸우려는 희망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항상 한 가지 핵심적 관심을 지닌다: 그들의 작품; 그들이 몰두하는 작품. 저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이유인즉 이것은 예술 작품을 위한 예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과학자들에게도 동일한 것이 적용된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유인책이 그 과학을 응용하는 것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완전히 틀렸다. 플랑크(Planck)도 뉴튼도, 러더포드(Rutherford)도 보어(Bohr)도 원자이론의 응용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1939년까지 그들은 그런 응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생각을 과학소설의 영역으로 격하시켰다. 이 사람들은 탐구를 위한 탐구를 하고 있었다; 진리 자체를 위한 진리 탐구. 그들은 물리학자이거나, 아마도 더 낫게 괴테의 파우스트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파우스트가 표출한 갈망에 의하여 고무된 우주론자들이었다:
혹시 이 세상을 통일시키는
그 힘(forces)을 안다는 것.
이것은 인류의 옛날 꿈으로 시인과 사상가의 꿈이다. 우주론적 사념은 고대 문명 모두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 사념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Iliad)에서 (8, 13-16) 그리고 헤시오도스(Hesiod)의 신통기(Theogony)에서 (720-5) 발견된다.
자연과학은 사실을 수집할 뿐이라고 ㅡ 아마도 산업에서 그 사실을 이용하기 위하여 ㅡ 믿는 몇몇 과학자와 물론 많은 비전문가가 여전히 있다. 나는 과학을 다르게 본다. 과학의 시초는 시적(詩的) 및 종교적 신화에서, 우리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인간의 환상에서 발견될 수 있다. 과학은, 합리적 비판의 도전을 받아 신화로부터 발전한다: 진리라는 관념에 의하여 고취된 비판의 형태로 발전한다; 진리 탐구에 의하여 그리고 진리에 도달하려는 소망에 의하여 고취된 비판의 형태로 발전한다; 이 비판의 기초를 이루는 기본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것이 참일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은 참인가? 그리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나의 연설의 첫 번째 논지로 온다: 시(詩: poetry)와 과학은 근원이 동일하다. 그것을 신화(myths)에서 시작된다.
나의 두 번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비판을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심미적이고 문학적 관심의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적 관심의 비판이다. 전자(前者)는 신화에서 시(詩)에 이르고, 후자(後者)는 신화에서 과학에 이른다; 혹은 더 정확하게, 자연과학에 이른다. 전자는 언어의 아름다움, 운율의 힘, 심상의 광휘와 생동감, 극적인 긴장 및 그 긴장의 설득력을 평가한다. 이런 종류의 비판적 판단은 시(詩)를 낳는데 특히 서사시와 극시를 낳는다; 시적(詩的: poetic) 노래 및 그 노래와 함께 고전음악을 낳는다.
합리적 비판은, 대조적으로, 신화적 이야기가 참인지를 질문한다; 세상이 실제로 주장되는 방식으로 진화했는지를 묻는다: 헤시오도스(Hesiod)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혹은 창세기(Genesis)에 따라서 세상이 창조될 수 있었을 터인지를 묻는다. 그런 질문의 압박을 받아서 신화는 우리 세계에 대한, 우리의 환경에 대한 과학인 우주론이 된다; 신화는 자연과학으로 변한다,
나의 세 번째 논지는, 한편 시와 음악의 공통적 근원으로부터 남겨진 많은 흔적이 여전히 있고 다른 한편 우주론과 과학의 공통적 근원으로부터 남겨진 많은 흔적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시(詩)가 특징에서 신화적이라고 혹은 모든 과학은 우주론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詩)에서 ㅡ 우리는 호프만스탈(Hofmannsthal)의 예더만(Jedermann)을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ㅡ 그리고 과학에서 신화 창조가 의외로 커다란 역할을 여전히 수행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우리의 상상력에 의하여 고취되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세상을 우리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우활한(迂闊한: naive) 우리의 시도들이다. 시(詩)뿐 아니라 과학의 커다란 부분도, 상상력에 의하고 고취되어 우리의 세상을 우리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우활한(迂闊한: naive) 시도로서 여전히 기술될 수 있다.
시(詩)와 과학은 ㅡ 그리하여 음악 또한 ㅡ 혈연관계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근원과 우리의 운명 그리고 우리 세상의 근원과 운명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유래한다.
이 세 가지 논지는, 그리스 시(詩)와 관련하여 특히 그리스 비극과 관련하여 신화적 근원이 의심될 수 없을지라도, 역사관련 가설로서 기술될 수 있다.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작에 대한 연구와 관련하여, 세 가지 가설은 자체가 유익함을 증명했다. 우리 서양의 자연과학과 우리 서양의 예술 모두는 그리스 것의 부활 ㅡ 르네상스 ㅡ 이다. 그러나 예술과 과학의 출처가 같을지라도, 물론 그들 사이에 본질적 차이점이 있다.
과학에는 진보가 있다. 저것은, 과학에 목표가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과학은 진리 탐구이고 그 목표는 진리에 대한 근사치이다. 예술에도 또한 목표들이 있을 것이고 동일한 목표가 얼마 동안 추구되는 한, 우리는 예술에서 진보에 관하여 정말로 때때로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자연 모방이 회화에서 그리고 조각에서 목표였다; 비록 그것이 결코 회화와 조각의 유일한 목표는 틀림없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리고 정말로 우리는 이 목표와 관련해서 진보를 말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빛과 그림자를 처리함에서 이다. 관점도 또한 여기서 언급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목표는 결코 예술에서 유일한 추동력이 아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흔히, 진보에 종속되는 그런 기교 및 다른 수단을 예술가가 통달하는 것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에 일반적 진보가 없다고 흔히 알려졌고 흔히 강조되었다. 원시주의(原始主義: primitivism)는 아마도 이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그러나 예술가 개인의 창조력에서 틀림없이 진보가 있는 곳에 물론 쇠퇴도 또한 있다.
모든 예술가는, 심지어 모차르트와 같이 믿을 수 없는 천재도 자신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 모든 예술가 혹은 거의 모든 예술가에게 스승이 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예술가는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배운다. 잘츠부르크에서 알려진 위대한 시인인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험은 모든 사람이 자기 실수에 부여하는 명칭이다.’ 그리고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우주론자인 존 아치볼드 휠러(John Archibold Wheel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문제 전체는, 가능한 한 빨리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나의 비평은 이렇다: 그리고 우리의 실수를 발견하여 그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심지어 모차르트도 자기 작품 몇 곡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개선했는데 예를 들어 그의 초기 작곡인 최초의 현악 5중주 B 플랫 장조이다. 모차르트의 가장 위대한 곡들은 자신의 짧은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인 약 1780년부터 그가 사망한 1791년까지로 그의 나의 24살과 35살에 작곡되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가 자기-비판을 통하여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틀림없이 배웠다고 정말로 밝혀진다. 그가 후궁으로부터의 도주(Seraglio)를 25세나 26세 때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Figaro)을 30세에 작곡했다는 것은 여전히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현재 강연의 제목인 ‘과학에서 그리고 예술에서 창조적 자기-비판’은 베토벤의 작품에 의하여 영감을 받았다; 더 정확하게, 비엔나에서 음악 친구들의 협회(Gesellschaft der Musikfreunde)에 (Society of the Friends of Music) 의하여 조직된 베토벤의 스케치북 전시회에 의하여 그 제목이 영감을 받았다; 내가 여러 해 전에 방문한 전시회.
베토벤의 스케치북들은, 그의 창조적 자기-비판에 대한 서류이다; 자신의 관념을 그가 부단히 재고찰한 그리고 흔히 그가 자신의 관념을 가차 없이 수정한 서류이다. 무자비한 자기-비판의 태도인 이 태도로 인하여,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서 영향을 받아 작곡을 시작한 때부터 그의 마지막 작품들까지 베토벤의 놀라운 개인적 발전을 이해하는 것이 아마도 다소 더 쉬워진다.
다른 종류의 예술가와 작가가 있다. 몇몇 사람은 오류 제거의 방법을 사용하여 작업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들은, 사전 시도 없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듯이 보인다; 그들은 완벽함을 즉각적으로 이루어낸다. 철학자 가운데, 버트런드 러셀이 이런 종류의 천재였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영어로 글을 썼다; 그리고 그의 원고에서, 3쪽이나 혹시 4쪽에서 단 하나의 단어만 아마도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쓴다. 그들의 글쓰기 방법은,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교정하는 방법인 시행착오의 방법이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작품 몇 가지를 다시 썼지만, 창조적 예술가의 첫 번째 무리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베토벤은 틀림없이, 그 작품이 많은 수정으로부터 때때로 성장하는 예술가들인 두 번째 무리에 속했다.
두 번째 무리에 속하는 이 예술가들에 의하여 채택된 작업 방식을 바라보면 흥미롭다. 내가 이것에 관하여 말하는 모든 것이 사변적이고 추측성이라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이 예술가들은 문제나 과제로써 시작한다고 나는 추측한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미사곡 혹은 오페라를 작곡하는 과제로써 시작한다고 나는 추측한다. 작품의 규모, 작품의 특징 그리고 작품의 구조에 ㅡ 가령, 작품의 소나타 형식 ㅡ 관하여 그리고 혹시 사용된 주제 중 몇 가지 주제에 관하여서도 어떤 관념을 갖는 것이 그 과제의 일부이다. 또는 계획이 특히 미사곡이나 오페라의 경우 훨씬 더 상세할 것이다.
그러나 실행이자 실제 작업이고 관념을 깨닫고 그 관념을 종이에 옮기는 것에 관한 한, 심지어 예술가의 계획도 자기 작품을 실행하면서 영향을 받아서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 실행에 의하여 예술가의 자기-비판적 수정사항과 오류제거가 구체화 된다. 계획은 더 구체적이 되고, 계획의 개요는 더 확정적이 된다. 각 부분인 각 세부사항은, 자체가 이상적인 전체 그림에 들어맞는지 혹은 아닌지에 관하여 판단된다. 그리고 역순도 성립한다: 이상적인 전체 그림은, 작품이 세부적으로 실현되는 데로 나아감에 따라서 부단히 수정된다. 여기에는 오류수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과정에서 한편 계획인 이상적 그림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확정적이 됨에 따라서 다른 한편 그 그림과 출현하는 구체적 작품 사이에 주고받기인 정보교환(feedback) 효과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초상화 작업을 수행하는 화가의 경우에 가장 명백하게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대상에 대하여 자기 해석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화가의 경우에 가장 명백허게 보일 것이다. 그는 계획하고, 그는 스케치하고, 그는 수정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한 색깔의 점을 찍고 뒤로 물러서서 효과를 시험한다. 찍힌 색깔의 점의 효과는 맥락에, 이미 그곳에 칠해진 모든 것에 크게 의존한다. 그리고 역순도 성립하는데, 새로운 색깔의 점은 반대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그 점에 의하여 바뀌고 모든 것이, 더 좋든 더 나쁘든, 달라진다. 그리고 전체에 대한 그 효과와 동시에 화가가 겨냥하는 그리고 화가의 생각에 완전히 고착된 적이 없는 이상적 그림이 또한 변한다. 그리고 초상화 화가의 특수한 경우, 화가가 도달하려는 유사함과 주제의 특징에 대한 화가의 해석이 또한 변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림 그리는 행위 다시 말해서 실현하려는 시도가 물론 비판적 비교 행위 및 수정 행위에 틀림없이 앞선다는 (‘만들기가 맞추기에 앞선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말한다) 것이다. 다른 한편 이상적 그림에 근접하는 관념이 틀림없이 있는데 그 이상적 그림의 수정과 같은 것은 그런 이상적 대상과의 비교에 의하여 가능해질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에 화가는 그 관념을 이용하여 지금까지 이룩된 작품을 비교할 수 있다. 초상화가라는 특정 경우 대상이 화가에게 재현되면 문제는 다소 덜 시급해질 것이다. 가사가 음악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면 자기-비판과 오류수정이 더 쉬워질 음악에서도 상황은 아마도 유사하다. 아무튼 오류수정은, 이룩된 것 및 이상적 그림 (실제로 이루어진 작업의 영향을 받아서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겨냥되고 있는 것인 작품에 대한) 사이의 비교와 같다. 이룩된 작업은, 창조적 과정에 점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위대한 작품의 경우 이것은,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가 그 작품을 자기 작품으로서 더 이상 인식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 그 작품은 예술가의 구상보다 더 위대해졌다. 이것이 하이든의 천지장조(Creation)에서 일어난 일이고, 슈베르트 자신이 포기했던 교향곡인 미완성 교향곡(Unfinished)과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이제 결론으로 나는 예술을, 문화적 비관론자에 이해된다기보다 험담을 당하는 과학과 비교하는 것으로 선회하고 싶다. 과학에서 작품은 가설인 이론이다; 그리고 활동의 목표는 진리이거나 진리에 대한 근사치 및 설명력이다. 이 목표는 주로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진보가 있다는 이유이다. 그것은, 수 세기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진보이다: 언제나 나은 이론을 향한 진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비판은 예술가의 창조적 자기-비판이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비판이 자기-비판일 뿐 아니라 협동적 비판이기도 하다: 과학자가 오류를 간과하거나 오류를 숨기려고 시도할 ㅡ 다행히도 드물게만 발생하는 일 ㅡ 때 이 오류는 통상적으로 다른 과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다. 이유인즉 과학의 방법은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이기 때문이다. 비판에 의하여, 이론이 진리 탐구에 도달한다고 판단된다. 비판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것은 저것이다.
이론, 다시 말해서, 창조적 과학자의 작품에 그리하여 예술 작품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과학자의 창조적 활동은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을 ㅡ 적어도 베토벤이 속했던 저 예술가들인 대담한 구상으로써 시작하고 창조적 비판을 수단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생각되지 못한 높이까지 올릴 수 있는 저 예술가들의 활동 ㅡ 닮는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합창 환상곡(Choral Fantasia)은 훨씬 더 아름다운 환희의 송가(Ode to Joy)로 성장했다.
과학에서 위대한 이론가는 위대한 예술가에 대응하고, 예술가처럼 그는 자기 상상력과 자기 직관 및 자기 형상 감각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아인슈타인은, 1913년 닐스 보어(Niels Bohr)에 의하여 전개된 원의 모형에 ㅡ 그 후 곧 크게 개선된 혁명적 이론 ㅡ 대하여, 그 모형이 ‘가장 큰 음악성’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 작품과 대조적으로, 위대한 이론은 항상 추가적 개선에 종속된다.
과학자는 이것을 알고 그는 또한, 자기 상상력과 자기 직관 및 심지어 자기 형상 감각도 그를 그의 목표로 이끌어가는 것보다 더 자주 그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진리에 대하여 나은 근사치로 이끌어가는 것보다. 이것이 과학에서, 이론 창시자에 의해서 뿐 아니라 또한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 영원한 비판적 검토가 필수적인 이유이다. 과학에서는 영감과 형상 감각에만 근거하는 위대한 작품이 없다.
여러분,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30년 전쟁의 12번째 해인 1630년에 사망한 위대한 우주론자이자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로부터 인용함으로써 나는 끝맺고 싶다. 이 인용문에서 케플러는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자기 이론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취하고 그는 그 이론을 음악, 특히 천구들(天球들: spheres)에 대한 하느님의 음악에 비교한다. 그러나 거의 비의도적으로 케플러는, 인간에 의하여 창조된 음악이자 당시에 여전히 상당히 최근 발견이었던 다성음악(多聲音樂: polyphonic music)에 대한 찬송가로써 끝맺는다. 케플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리하여 하늘의 움직임들은, 들을 수 있고 음성적이라기보다 일종의
지속적 조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움직임들은, 자체의 결의를 지닌
당김음이나(syncopations) 계류음(suspensions)과 같은 불협화음들의
(그 불협화음들에 의하여 인간은 자연의 상응하는 불협화음들을 모방한다)
긴장을 통하여 움직여 안전하고 미리 결정된 closures에 도달하고
각각은 여섯 성부로 구성된 화음과 같은 6 term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기호들에 의하여 그 움직임들은 시간의 방대함을 구분하고 명시한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조주의 모방자인 인간에
의하여 마침내 발견된 몇 가지 부분에서 조화롭게 함께 가창하기에
대한 규칙들보다 더 크게 고귀하거나 더 많이 고귀한 놀라운 일은
없다; 그리하여, 많은 성부의 능란한 교향곡을 통하여 인간은 실제로
한 시간의 짧은 부분에서 세계의 시간적 전체 영속성에 대한 전망을
떠올린다; 그리고 하느님의 메아리인 음악을 통하여 향유되는 황홀경에
대한 가장 달콤한 느낌에서 인간은 틀림없이 창조자 하느님이 자신의
작품들에서 경험하는 만족에 거의 도달한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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