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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결정론

이윤진이카루스 2026. 10. 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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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결정론

 

16. 칸트의 견해와 비교.

앞 절에서 전개된 고찰 대부분은 논리적 특징이나 방법론적 특징을 띤다. 그러나 세계의 독특함에 대한 견해는 형이상학적으로서 기술될 것이다: 그 견해는 본체(本體: noumenα) 즉, 물자체(things in themselves)의 세계라는 칸트의 관념과 밀접하게 대응한다.

칸트는, 그의 동시대인 대부분처럼, ㅡ 천문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을 포함하여 ㅡ 뉴튼 이론의 진실성을 믿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심지어 그 진실성이 선험적으로 유효하다고 믿었다. 뉴튼 이론이 탁월한 근사치일 따름이라는 가능성은 칸트에게 떠오르지 않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칸트에게 떠오를 수 없었다. 이것이 칸트가 물자체의 세계인 본체(本體: noumenα)의 실재 세계로부터 현상의 세계, 즉 ‘자연(Nature)’을 ㅡ 우리의 지성이 자체의 (뉴튼적) 법칙을 선험적으로 부과하는 세계 ㅡ 구분한 이유이다. 시공간 속의 세계인 자연은 인과법칙에 종속된다고 그는 믿었다;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을 ‘필연적으로(with necessity)’ 결정한 법칙에 종속된다고 그는 믿었다. 시공 속의 우리 행동은 완벽하게 사전에 결정되었다; 그 행동은 일식이나 월식처럼 사전에 측정될 수 있었다. 본체(本體: noumenα)로서만, 우리 물 자체로서만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칸트의 본체(本體: noumenα) 세계를, 사물이나 과정의 독특함이라는 면모 아래에서 고찰되는 사물이나 과정의 우리 세계로 우리가 대체하고 칸트의 현상 세계를, 보편성이라는 면모 아래에서 고찰되는 사물의 우리 세계로 우리가 대체하면, 앞 절에서 전개된 견해에 우리가 근접한다; 내가 밝힌 바와 같이, 인과성은 결정론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하고 우리 독특함의 세계는 ㅡ 칸트의 본체적(本體的: noumenal) 세계와 달리 ㅡ 공간 속에 있고, 훨씬 더 중요하게 시간 속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앞 절에서 전개된 견해에 우리가 근접한다; 이유인즉 결정된 과거와 열린 미래를 구분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내가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뉴튼 이론과 같은 이론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ㅡ 그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지성이 자연에 부과한 ㅡ 칸트가 암시할 때 나는 칸트에게 동의한다; 이 방식으로, 우리의 지성이 자연을 합리화한다고 암시할 때 나는 칸트에게 동의한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론적으로서 간주해서는 안 되는 실재가 ㅡ 뉴튼 이론이나 다른 이론에 의하여 서술되는 것보다 더 깊은 ㅡ 있다고 암시할 때 나는 칸트에게 동의한다. 그러나 뉴튼 이론이 틀림없이 참이라는, 그리고 우리가 자연에 부과하는 이론은 틀림없이 저 이유로 선험적으로 유효하거나 외견상 결정론적 특징을 띤다는 그의 견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비결정론적 실재 자체가 알려질 수 없다는 그의 견해에 나는 또한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독특한 세계가 철저히 알려질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과학적 지식은 그 세계를 점점 더 잘 알려는 시도이다 ㅡ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시도이다. 지식에 관한 이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지식은 이 하나뿐인 독특한 우리 세계에만 관련되는 동시에 다른 것에 관련되지 않는다.

칸트의 해결책에 있는 근본적 난제는 ㅡ 우리의 행동이 시공간 속에 있으므로 결정되는 반면,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물 자체로서 우리가 시공간 속에 있지 않다는 것 ㅡ 분명히 나의 해결책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당장 도덕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칸트가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원했다는 데 내가 의심하지 않는다).

칸트는 자신의 결정론을 다음 구절에서 표현한다:

‘그러므로 여하한 사람의 유의미한 외부 상황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깊은 통찰력이 우리에게 있어서 그가 가장 익숙한 행동의 원천 모두를 우리가 안다면, 그 사람의 미래 행동을 우리가 미리 그리고 확실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ㅡ 우리가 월식이나 일식에 대하여 계산하는 것과 같이 ㅡ 견해의 진실성을 우리가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유롭다고 우리가 주장할 것이다.’

이 구절은 결정론에 대한 칸트의 소신에 있는 힘을 증언한다: 이 구절은 과학이 (선험적 과학) 우리에게 결정론을 수용하라고 강요한다는 그의 그릇된 소신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이유인즉 그가 여기서 예측 가능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그 자신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분명히 순수한 결정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공식은, 예측 과제에 필요할 것과 같이 ‘그렇게 깊은 통찰력’을 우리가 결코 지닐 수 없다는 언급에 의하여, 매우 간단하게 구조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그의 공식을 공허하게 만족시킴으로써 그의 공식이 구조될지라도, 그가 말하고자 의도했던 것은 구조되지 않을 터이다; 게다가 그렇게 하면 설명 가능성을, 그리고 설명 가능성과 함께, ‘과학적’ 결정론을 포기하는 것에 해당할 터이다.

ㅡ 칼 포퍼 저, 윌리엄 바틀리 III세 편집, ‘열린 우주, 비결정론을 위한 논증’, 2000년, 47-9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