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에리크 사티/김선우/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2. 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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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빨강] 섬 사이에 누군가 있다

등록 : 2015.02.04 18:42 수정 : 2015.02.04 18:42

김선우 시인·소설가

에리크 사티를 찾는다. 그의 ‘3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edies)를 반복해 듣는다. 짐노페디는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소년’이라는 뜻, 축제에서 소년들이 추는 춤을 뜻하기도 한다. 시인 장 콕토가 “벌거벗은 음악”이라고 평하기도 한 사티의 짐노페디는 방전을 막아주는 음악이 아니라 어서 방전되라고, 까무룩 잠의 숲으로 빠져들라고, 선천적 ‘저질 체력’ 보유자인 나에게 일종의 장막을 쳐준다. 휴식의 장막이 필요할 때 응급약처럼, 숨구멍처럼 사티가 있다. 그의 음악은 ‘쉬어도 돼’라고 말해준다. 당대 많은 예술가들에게 미학적 영향을 끼쳤으나 사티 자신은 거의 완벽한 ‘사회부적응자’, 곧 하나의 섬이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예술가들의 아지트 술집인 ‘검은 고양이’에서 생계를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던 사티. 단순 반복의 배경음악 같은 ‘가구음악’을 통해 예술을 평범한 일상의 자리로 끌어내리려 한 그의 의도는 훗날 존 케이지 같은 이를 만나면서 빛을 보기도 했지만 당대 대중에게는 거의 이해받지 못했다. 유기견을 돌보며 산 그가 “난 개들을 위한 음악을 할 거야”라고 장 콕토에게 한 말은 그가 추구한 예술의 일상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부적응자라 불리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고독은 깊고 섬처럼 떠 있으나, 섬과 섬 사이에 누군가 있을 것이다. 모스 부호를 보내듯 피아노를 치는 사티처럼, 그의 타전을 받고 휴식을 취하는 또 누군가처럼.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