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2 21:30 수정 : 2015.03.0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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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타이 레스토랑 ‘밀휘오리’ 셰프. |
‘채소 소믈리에’ 기노시타 타이
부천에 레스토랑 ‘밀휘오리’ 운영
국내 산지서 유기농 직접 가져와
싱싱한 재료로 손님입맛 사로잡아
“돈보다 더 중요한건 가치잖아요”
그의 메뉴는 여느 레스토랑과 다르다. ‘강원도 정선 문종옥 할아버지네 산골 곤드레나물과 닭가슴살에 경동시장 서울상회 참기름을 넣은 알리오 올리오’, ‘이종국 할아버지가 정직하게 만드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국산콩 생두부에 전라북도 장수 의성이네 유기농 사과로 만든 상큼한 드레싱을 올린 두부 파르페 샐러드’.
메뉴판에는 식재료의 산지가 어디인지, 생산자가 누구인지를 적은 긴 이름의 요리가 올라 있다. “식재료를 손님들이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어요. 생산자의 정성과 얼굴을 상상하며 그 감정까지 음미할 수 있도록 한 거죠.”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밀휘오리’의 셰프 기노시타 다이(33)는 여러모로 특별한 사람이다. 일본인인 그는 2001년 성균관대에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가 이듬해 이 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방학을 이용해 요리를 배웠고, 2006년 졸업 뒤 일본으로 돌아가 2년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도 했다. 2008년 쌍둥이 형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밀휘오리를 열었다.
메인 식재료는 고기도 생선도 아닌 채소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레스토랑 들머리에는 스스로를 ‘채소 오타쿠(마니아)’라고 소개하며 “외국에서 온 기진맥진한 채소 말고 싱싱한 국산 채소로 미와 건강을 모두 챙기세요”라고 써붙이고 있었다.
기노시타는 일본에서 우리에겐 생소한 ‘채소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와인 소믈리에처럼 채소의 품종과 산지, 영양, 요리법에 정통한 이에게 주어진다. 그가 만드는 모든 음식은 유기농 채소를 사용한다. 중간 유통업체를 통하지 않고 강원도 정선, 전남 담양 등에서 직접 그가 가져온다. 경기도 가평에 손수 밭을 일궈 식재료를 생산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정통 이탈리안 파스타에 들어가는 채소를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차라리 곤드레나물처럼 한국 특유의 싱싱한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기로 했죠.”
그의 가게는 돈벌이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66㎡ 남짓한 식당의 절반이 주방이다. 테이블 5개에 의자 14개가 전부다. 평일에는 저녁 손님만 받는데, 월요일엔 아예 문을 닫는다. 싱싱한 채소를 구하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좁은 가게를 손님들이 가득 채워도 가게를 넓히거나 영업시간을 늘릴 생각은 없다.
“일본에서 버블(거품)이 터지고 디플레이션이 찾아와 10년 넘게 경기가 침체됐어요.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강조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전반의 질적 하락이 일어났죠. 일본 특유의 혼이나 가치, 정신 등이 사라졌어요. 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치인데 말이죠.”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경제학 교과서와는 먼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웃었다.
‘밀휘오리’는 어느 단면에서도 같은 꽃무늬가 나온다는 이탈리아 유리공예에서 나온 말로, 수백만 송이의 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손님에게 한곁같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사진 기노시타 다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