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세’ 박문호 대표 |
[짬] 제1회 유미과학문화상 받은 ‘박자세’ 박문호 대표
뉴턴·슈뢰딩거 방정식 등
전공자 뺨칠 어려운 수식 빽빽 “학습은 이해 아닌 익숙해짐
문·사·철은 별과 별 사이 설명 못해
자연과학으로 꿰려는 시도” 박 대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트리)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주 일요일 4시간씩 대학 강의실을 빌려 100여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과학 강의를 한다. 하지만 여느 대중 과학 강연과는 달리 프레젠테이션 한 장 없고 화이트보드에는 색깔펜으로 적은 수식만 빽빽하다. ‘137억년 우주의 진화’라는 강좌에서는 뉴턴 방정식에서부터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 슈뢰딩거 방정식 등 전공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강의한다. “일반인이 전문가의 수준으로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를 실현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공자도 아닌 일반인이 과연 어려운 과학 강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리처드 파인먼은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는 말은 양자역학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우리가 이해를 하려 들면 스트레스만 받는다. 학습은 이해가 아니라 익숙해짐의 대상이다. 이해되는 강의를 듣느니 주말연속극을 보는 게 낫다”고 답했다. 익숙해지려면 반복해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암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왔다 자연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자연을 배우기 위한 알파벳, 곧 유니버설 랭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의 강의 내용에는 입자물리학, 일반상대성이론, 분자세포생물학, 천문학, 뇌과학, 지질학, 진화학, 비교생물학 등 자연과학의 20여개 분야가 망라돼 있다. “자연은 원자로 돼 있으니 원자를 알아야 하고, 생명 현상으로 표현될 때는 세포가 중심이니 세포를 알아야 합니다. 원자와 세포의 무대장치가 일반상대성이론, 입자물리학, 분자세포생물학입니다.” 과연 이런 ‘무모한 시도’가 대중에게 통할까? 대표 강좌인 ‘137억년 우주의 진화’만 해도 올해 7년째로 300여시간 동안 연인원 5000명이 수강했다. 매주 진행되는 강의에 유럽과 베트남에서까지 빠지지 않고 수강하러 오는 이들도 생겼다. 조장희 가천의대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등 내로라하는 정상급 박사들도 수강생 자리에 앉아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과는 상관없는 일반인이 대부분이다. 수강생 출신 강사도 배출돼 다달이 한두차례 직접 진행하는 ‘천문우주+뇌과학 모임’도 88회에 이른다. 박자세는 2012년 미래창조과학부의 공익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현재 박자세 누리집(mhpark.or.kr)의 회원은 4500여명으로, 하루 600~700명이 방문할 정도로 충성도가 높은 사이트다. 왜 자연과학이어야 하나? 박 대표는 “박자세는 문·사·철을 아우르는 종합지식인, 공자가 ‘집대성한다’ 할 때의 학자를 지향한다. 전문가가 아닌 ‘하나로 꿰고 싶은 욕구를 가진 학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문·사·철은 별과 별 사이의 침묵하는 공간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박자세의 자연과학 학습과의 ‘애정 행각’은 2002년 1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자고 시작한 ‘백북스 학습 독서공동체’부터 시작됐다. 질 들뢰즈 철학을 공부하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들렀다가 연구원들이 과학 이야기를 궁금해해서 시작한 것이 ‘박문호표 과학 강좌’의 출발이었다. “그때 강의가 공부하는 방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3배 효과적입니다.” 그는 5년 전부터는 교과서로만 강의를 한다. 최근 2년에는 과학 논문을 교재로 쓴다. “일반 과학대중서는 아무리 좋아도 80점이지만 교과서는 아무리 나빠도 80점부터 출발한다. 대중서는 교과서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교과서를 보는 사람이 학자”라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박자세는 오는 29일부터 7월5일까지 진행하는 ‘137억년 우주의 진화’ 7차 강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사진 박문호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