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윤석구|입력2015.03.12 10:00|수정2015.03.12 10:39

 

동일본 대지진 4년을 맞아 취재진은 사흘간 후쿠시마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피해지역을 방문해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무엇보다 피해지역 현황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요. 직접 눈으로 본 피해지역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재난의 상처가 크고 깊었던 것이지요.

취재진이 찾아간 곳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북쪽으로 불과 7킬로미터 떨어진 '나미에마치'란 마을이었습니다. 4년전 대지진과 거대 쓰나미, 그리고 방사능 오염까지 3중으로 큰 피해를 당한 곳인데요. 지금도 일부 지역에만 낮시간 출입을 허용할 뿐, 아직 대부분 지역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현지 주민의 안내를 받아 우선 쓰나미로 주택 580여채가 휩쓸려 사라지면서 주민 182명이 목숨을 잃은 우케도 해안을 찾아갔는데요.

폐허가 된 집터, 버려진 자동차, 그리고 육지로 한참 밀려 올라온 어선 등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피해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마을 초등학교 입구 시계가, 쓰나미가 밀어닥친 오후 3시 38분에 그대로 멈춰서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 83명은 선생님들과 졸업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데요. 다행이 교장선생님의 신속한 결단으로 긴급 피난해 모두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이어서 나미에마치의 상점들이 모여 있는 한복판 상가를 찾아가 봤는데요. 원래 인파로 붐비던 곳이지만 지금은 인적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원전사고로 2만명 넘던 주민이 긴급피난한 뒤 마치 유령마을처럼 텅 빈 모습이었습니다.

한참을 돌아본 끝에야 가게 물건을 정리하러 온 주민 나카하시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피난 주민들의 깊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선친에게서 낚시용품 가게를 물려받아 33년간 운영해왔다는 그 역시 4년전 모든 것을 잃고 가설주택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설마 피난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며 앞길이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 생활이 너무나 힘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나미에마치 곳곳에선 방사능 오염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오염지역의 토지 표면을 5센티미터 정도 긁어내고 건물지붕도 걷어내는 방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워낙 오염지역이 넓다보니 4년이 지난 지금도 작업진행률은 겨우 10% 남짓한 수준입니다. 이처럼 오염제거 작업이 부진하니 피난주민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답한 사람은 열명에 한명도 안됩니다.

취재진은 나미에마치 주민들이 많이 피난해 있는 이웃 미나미소마시를 방문해 가설주택에서 4년째 피난생활중인 분들도 만나봤는데요. 노년층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비좁고 추운 가설주택에서 기약 없이 장기화되고 있는 피난생활에 무척 지치고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이 이사할 수 있는 공영주택 건설이 여러 이유로 계속 늦어지는데다, 매달 90만원씩 지급되던 생활보조금마저 머지 않아 끊긴다는 소식에 더욱 걱정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피난주민 중에 19살부터 고기잡이를 해왔다는 66세 어부 시가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는데요. 그는 쓰나미가 닥치기 얼마전에 지은 새 집을 포함해 평생 일궈온 모든 걸 한순간에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재난후 자식 세명도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살던 마을이 통째로 없어지자 인간관계도 모두 끊어져 살기가 힘들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는 1970년대초 후쿠시마에 처음 원전이 들어설 때 끝까지 반대했었다는데요. 재난이 있고나서야 모두들 뒤늦게 후회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마을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직접 와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며 후쿠시마의 엄중한 현실을 바깥에 제대로 알려달라고 취재진에게 부탁했습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대재난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그리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채 4년이 넘도록 피난중인 주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절감하게 됐습니다. 그분들의 뜻대로 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언론의 책임감도 더욱 무겁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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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구기자 (sukkoo@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