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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잇속 외교/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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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 잇속 외교의 유턴 / 성연철

등록 :2015-05-07 18:31

 

“잘 살펴보십시오. 외교 무대에서 국익, 이익이란 단어를 내놓고 쓰는 나라가 중국 말고 또 어디 있는지를.”

중국에서 꽤 오래 근무했던 한 외교 소식통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의 말마따나 유독 중국은 외교 사안을 다룰 때 ‘이익’이란 말을 자주 쓴다. 동·남중국해 관련 분쟁을 비롯해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 사이버 해킹 논란에서도 ‘핵심 이익’이란 용어는 빠지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외교 행보를 보면 이익 또는 실리, 혹은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났다. 살짝 미소 띤 얼굴에 안부 인사까지 건넸다. 불과 다섯달 전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담 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당시 시 주석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마지못해 만나는 듯했다. 외교적 결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카르타에서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환영을 받고 있다”고 일본에 가입을 권유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시진핑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중국 중심의 경제벨트) 구상의 ‘돈줄’이다. 세계 3위의 경제력을 지닌 일본의 참여는 이 은행이 명실상부한 국제금융기구 위상을 갖추는 데 절실하다. 중국의 국익과도 직결된다.

지난해 7월 시 주석의 한국 방문도 돌이켜보자. 중국이 관례를 깨고 ‘혈맹’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실익을 고려한 때문이다. 중국은 고립된 북한보다 상호 주요 교역·투자 국가인 한국을 선택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하며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린 측면도 있다.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출범에 혹 차질을 빚을까 봐 가입에 관심을 보인 북한을 “국제적 투명성이 부족하다”며 배척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이 얼마나 국익을 챙기려 노심초사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익을 좇는 거대 중국의 급격한 ‘유턴’은 1970년대 초 미국과의 극적인 관계 개선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의 국경 분쟁은 중국을 심각한 안보 위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특히, 소련이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면서, ‘소련의 침략’은 현실적인 공포가 되었다. 중국은 역선택 카드를 택한다. ‘제국주의 원흉’으로 힐난했던 미국을 택한 것이다.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안보의 안전판을 마련한다. 제국주의 타도,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 노선 추구 세력) 척결, 수정주의 박멸이란 구호가 절정으로 치닫던 ‘문화혁명’ 시기였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유턴은 ‘경악’에 가까운 전환이었다. 극단적 이념의 시대에도 이익을 찾았던 셈이다.

그래서다. 아시아 주변국 외교에서 중국과만 비교적 우호적인 끈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처지가 불안정해 보이는 건. 게다가 중국과는 ‘뜨거운 감자’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문제가 걸려 있다. 중국은 이미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자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한다고 공표해 둔 상태다.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낯빛을 바꿀지 알 수 없다. 북한과도 핵무기 개발이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단박에 거리를 둔 중국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되새겨보면 중국이란 ‘항공모함’의 외교적 키는 종종 생각보다 빨리 돌곤 했다. 특히나 이익이 걸리거나 이를 위협받는 상황이 닥치면 예상을 깨고 민첩하게 방향타를 틀었다. 대미, 대일, 대러 외교가 모두 겉돌고 있는 지금, 등잔 밑 대중 외교를 거듭 신중하게 살펴야 할 까닭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