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혜성 탐사 로봇인 유럽우주국의 ‘필레’가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안착한 모습의 상상도. 유럽우주국 제공/AP 연합뉴스
“안녕 지구! 내 말 들려요?”
주말이었던 지난 13일 밤, 독일 쾰른에 있는 독일우주국의 통제센터는 예상치 못한 외계신호에 깜짝 놀랐다. 곧이어 가슴 벅찬 환호가 터졌다. 현재 지구에서 3억㎞나 떨어진 혜성 탐사로봇 필레가 보내온 신호였다. 지난해 11월 ‘동면’에 들어간 지 7개월 만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혜성에 올라탄 탐사로봇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지구 생명의 기원을 캐려는 과학계의 꿈도 다시 부풀기 시작했다. 유럽우주국(ESA)은 중앙유럽표준시로 13일 밤 10시28분(한국시각 14일 새벽6시28분)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C-G)’의 탐사로봇 필레로부터 신호를 받았다고 14일 밝혔다. 필레는 혜성 주변을 돌고 있는 모선인 로제타를 통해 독일의 지상관제센터와 85초간 교신하면서 300여개의 데이터를 보내왔다.
필레는 지난해 11월 초속 30㎞로 태양 궤도를 공전하는 혜성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몇차례 튕겨져 나가 그늘에 착지하는 바람에 태양전지 동력을 잃고 교신이 끊겼었다. 이후 혜성이 태양 쪽으로 더 접근하면서, 필레가 잠자던 그늘에 햇빛이 쏟아지며 전지가 충전된 것이다.
유럽 19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유럽우주국은 독일우주국의 수신 보고 직후 ‘로제타’ 이름의 트위터 계정에 “믿기지 않는 소식! 내 착륙선 필레가 깨어났다”라는 인삿말로 세계 전역에 낭보를 전했다. 이어 로제타와 필레가 주고 받은 트위터 교신 형식으로 속보도 올렸다.
“안녕 로제타, 나 깨어났어. 내가 얼마 동안이나 잠들었던 거지?”
“안녕 필레, 오랫동안 잠잤어. 약 7개월.”
“와우, 긴 시간이네.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군.”
“상태 점검부터 해야 돼. 건강과 따뜻한 온도가 먼저야. 좀 진정해.”
“그래 그래. 지금은 좀 피곤하긴 해. 나중에 얘기하자구.”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트위터 메시지로 희소식에 화답했고, 평소 점잖은 편인 영국 왕립천문관측소도 “예스!!!”라고 외쳤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독일우주국의 로제타 프로젝트 책임자인 슈테판 울라멕 박사는 “필레가 매우 잘 해내고 있다. 현재 필레의 동체 온도는 영하 35℃이며 24와트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다”며 “이제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일리가 작동하려면 동체온도가 -45℃ 이상, 19와트(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
유럽우주국은 모선인 로제타의 혜성 공전궤도를 수정해 필레와의 교신시간을 늘리고, 필레의 정확한 착지 지점을 파악해 효율적인 탐사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공전 주기가 약 6.5년인 혜성 ‘67P/C-G’는 오는 8월13일께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뒤 다시 멀어지기 시작한다. 울라멕 박사는 “필레가 오는 10월까지는 충분한 태양빛을 받아 활동한 뒤 다시 긴 잠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학계는 필레가 지구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데 결정적 자료들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로제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영국의 모니카 그래디 박사는 <비비시>(BBC) 방송에 “혜성의 물과 탄소화합물 분자들을 분석해, 지구 생명체의 재료들이 실제로 (지구로 충돌한) 혜성들로부터 전달됐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