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별빛, 푸를수록 뜨겁고 붉을수록 차갑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9. 13:59

과학과학일반

별빛, 푸를수록 뜨겁고 붉을수록 차갑다

등록 :2015-06-05 19:25수정 :2015-06-06 09:58

 

청백색 별은 붉은 별보다 더 뜨거운 별이다. 밤하늘에서 청백색을 띠며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는 언뜻 하나의 별처럼 보이지만,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백색왜성(오른쪽)을 거느린 쌍성계다. 허블망원경 관측을 토대로 만든 이미지.
미국 항공우주국, 유럽 항공우주국 제공
청백색 별은 붉은 별보다 더 뜨거운 별이다. 밤하늘에서 청백색을 띠며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는 언뜻 하나의 별처럼 보이지만,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백색왜성(오른쪽)을 거느린 쌍성계다. 허블망원경 관측을 토대로 만든 이미지. 미국 항공우주국, 유럽 항공우주국 제공
[토요판]
별빛
▶ 광활한 우주에서는 빛조차 느림보 거북이처럼 움직입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빛은 사실 수년 수십년 동안 여행해 이곳에 닿았죠.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켄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도 빛으로 4년이 걸립니다. 이렇듯 당신이 보는 별은 지금의 별이 아닙니다. 그 빛깔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밤하늘은 검다. 불빛이 많은 도시의 밤은 푸르스름하거나 불그레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밤은 검은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검은 장막을 배경으로 은백색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이 있어 칠흑 같은 암흑의 비정함을 덜어준다. 그래서 밤하늘은 온갖 화려한 색으로 치장된 낮과 달리 흑과 백의 세상이다.

글쎄, 정말 그럴까? 밤하늘의 별들을 조금이라도 열심히 들여다본 이들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얼핏 흰색으로만 보이는 별들이 실은 각기 다른 여러가지 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형형색색의 별빛은 일견 무미건조해 보이는 밤하늘을 무채색의 흑백이 아닌 섬세한 컬러의 세상으로 수놓아 준다. 그리고 색을 통해 그들 자신의 정체와 특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별 1호는 별이 아니네

별의 색은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 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별과 행성을 한번 더 구분지어보자.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늘에 떠 있는 모든 빛나는 것을 별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래서 윤동주의 ‘서시’에 등장하는 바람에 스치우는 별빛이 시리우스인지 금성인지 따지고 드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실은 별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지은 이름이라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하나 천문학적 의미에서 별은 스스로 타들어가며 빛을 내는 천체이고, 행성은 다른 별-우리 경우는 태양-의 빛이 반사돼서 눈에 보이는 천체이기 때문에 서로 완전히 다르다.

그런 관점에서 행성부터 이야기하자면 지표나 대기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느냐에 따라 그 색이 좌우된다. 즉 화성이 붉게 보이는 것은 산화철 성분 때문에 지표의 흙이 붉기 때문이고, 해왕성이 푸른 것은 수소와 헬륨이 주종인 대기에 메탄가스가 소량 섞여 있기 때문이며, 지구가 푸른 것은 물로 된 넓은 바다와 엽록소를 가진 삼림이 퍼져 있어서다.

하지만 타오르는 별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대부분의 별은 우주에서 가장 단순한 원소인 수소와 그 핵융합 반응의 산물인 헬륨, 이 두 물질이 구성 성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행성들처럼 성분에 의해 색이 확연히 달라질 일은 없다. 스펙트럼 분석을 하면 소량 포함된 규소, 탄소, 질소, 산소와 각종 금속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여하튼 그 색이 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별의 색은 물질이 아니라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럼 어떤 온도가 어떤 색을 만드는 걸까? 우리 일상생활에서라면 대개 붉은 것은 뜨겁고 푸른 것은 차다. 예컨대 뜨거움 그 자체라고 할 불길은 붉게 타오르고, 그 반대편에 있는 얼음은 투명한 푸른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감정적으로도 붉은색은 열정을 상징하고 푸른색은 ‘쿨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별도 마찬가지일까. 베텔게우스, 알데바란, 안타레스 같은 붉은 별들은 지옥같이 뜨겁고 시리우스, 리겔 같은 청백색 별들은 그 색깔처럼 차라리 시원한 가을 저녁 같은 상태일까?

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별은 푸를수록 뜨겁고 붉을수록 차갑다. 열과 색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 충돌하기 때문에 의아하지만, 다른 빛이 반사되어 보이는 색과 열에 의해 만들어지는 색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차가운 지구의 바다가 푸르게 보이는 것은 태양빛 중 파장이 긴 붉은색이 물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반면 파장이 짧은 푸른색은 물분자에 산란, 반사되어 우리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다는 자체적으로는 거의 빛을 내지 않고, 따라서 푸른색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하지만 별은 핵융합을 통해 스스로 고열과 함께 빛을 생산한다. 이때 에너지가 클수록, 즉 뜨거울수록 파장이 짧은 빛이 생겨나기 때문에 푸른색을 띠게 되고, 약할수록 파장이 길어지기 때문에 붉은색을 띠게 되는 거다. 이 순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갯빛을 반대로 늘어놓은 것과 원칙적으로 같다.

그런데 잠깐, 그렇다면 푸른 별과 붉은 별 사이 중간 온도에서는 에메랄드처럼 녹색으로 빛나는 별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 기억 속에서의 ‘초록별’이란 오직 지구와 그 비슷한 (가상의) 행성들에만 붙는 이름일 뿐이다. 밤하늘에서는 물론 우주를 찍은 수많은 화려한 사진에서도 초록색으로 빛나는 별을 본 경험은 없다. 당연한 것이, 초록빛을 내뿜는 별은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별의 색과 표면온도
별의 색과 표면온도
별은 표면 온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단일한 파장의 빛만 만들어낼 수는 없고, 여러 색이 뒤엉켜 있다. 그래도 뜨거운 쪽으로 치우친 별은 푸르게 보이고 차가운 쪽으로 치우친 별은 붉게 보이지만, 그 중간 온도의 별에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가운데인 녹색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가운데와 양쪽의 색깔이 모두 겹쳐서 보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다름 아닌 흰색이다. 컴퓨터 모니터의 RGB는 레드, 그린, 블루를 뜻하는데 이를 흔히 ‘빛의 3원색’이라고 부르고, 이 세가지 색을 합쳐 흰색을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별빛을 보라, 각기 다르다
항성은 스스로 타오르는 별
푸른색일수록 뜨거운 별이다
행성은 빛을 반사하는 별
지표나 대기가 빛깔을 만든다

당신은 어떤 별이 좋나요
맹렬히 불타다 짧게 산화하는 별
뜨뜻미지근하지만 오래가는 별
우리가 붙어사는 ‘태양’은
작지만 100억년을 사는 별이다

별이 하얗게 빛나는 이유

이제 이런 관점에서 온도에 따른 별의 색을 정리해 보자. 별의 표면 온도가 2만~3만5000도에 달하면 푸른색이 되고, 1만5000도 정도면 청백색을 띤다. 9000도면 RGB가 뒤섞여 녹색 아닌 흰색이고 7000도면 노란 기가 강해져 황백색이 된다. 태양과 비슷한 5500도에서는 노란색, 그보다 낮은 4000도에서는 주황색, 그리고 3000도에서는 붉은색으로 빛나게 된다. 이 온도의 기준은 절대온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익숙한 섭씨로 알려면 273도를 빼면 되는데, 물론 큰 차이는 없다.

이 온도에 따른 색깔은 별의 크기나 수명과도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인 별들-주계열성이라고 부른다-을 기준으로 보면 뜨거운 푸른 별일수록 핵융합의 연료인 수소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크고, 한편으로 맹렬히 불타다 보니 수명도 짧아서 겨우 수백만년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비교적 온도가 낮은 노란 별인 태양은 수소 연료가 덜 쓰이기 때문에 크기는 작고 수명도 훨씬 길어 100억년이나 된다. 더 차가워서 붉고 작은 별들은 지금까지 우주의 나이인 137억년보다 훨씬 길게 살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도 있다. 보통 크기의 별이 늙으면 원래 모습을 잃고 정상적인 삶의 궤적을 벗어나게 된다. 핵 속의 수소가 동이 나서 이제 껍질 부분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건데,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팽창해 버린다. 이런 별을 적색거성이라고 하고 태양도 수십억년 후에는 이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적색거성은 이름처럼 붉은색이기 때문에 온도가 낮지만 크기는 그야말로 거대하다. 원체 크게 팽창해 있기 때문에 그리 밝지 않아도 먼 곳에서도 잘 보이는 눈에 띄는 별이 된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붉은 별들은 대개 이런 부류다.

한편으로 청색거성이라는 것도 있다. 푸른색 별은 원래 뜨겁고 큰 것 아니더냐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들은 푸른색의 일반 별들이다. 여기서의 청색거성은 별이 늙어 적색거성이 되었다가 연료인 수소를 다 써버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헬륨을 핵융합해 탄소를 만들고 있는 상태의 별이다. 맨눈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청색거성은 하늘에서 일곱번째로 밝은 오리온자리 오른쪽 아래의 리겔인데, 지금은 지름 기준으로 태양의 62배나 되지만 질량은 17배 정도라 팽창한 상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청색거성이 되기 전에는 태양의 몇 배 정도 크기였을 뿐이다.

이렇게 온도와 나이에 따라 크기도 색도 변해가는 별들, 하지만 이런 별들의 변화를 우리 삶 속에서 감지하기란 무척 어렵다. 별의 일생은 아무리 짧아도 수백만년에 달하기 때문에, 지상에 첫 인류의 조상이 등장한 이후로부터 따져도 별로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중에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갑작스레 일어나는 변화도 있다. 바로 초신성 폭발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거성들은 조만간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며 은하 전체와 맞먹는 빛을 내뿜으며 몇 달간 밤하늘의 큰 지역을 차지하게 될 텐데, 그런 일은 역사 속에서도 일어났고 내일이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생전에 그런 장관을 보게 된다면 대단한 행운일 것이다.

‘반짝반짝 작은 별’의 비밀

이렇게 다양한 별의 색깔 외에도 밤하늘을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주는 또 다른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별의 깜빡임이다. ‘반짝반짝(twinkle·깜빡깜빡) 작은 별’이라는 노래에서처럼 별을 잘 보고 있으면 별빛이 일렁거린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건 어찌된 일일까? 물론 별은 실제로 깜빡이지는 않는다. 변광성이라는, 광도가 실제로 변하는 별도 있지만 깜빡이게 느껴질 만큼 빠르게 변할 리는 없다.

이것은 별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 내에서 일어나는 조화다. 지표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의 밀도 차이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데, 그래서 바람이 불어 밀도가 빨리 변하면 더 많이 깜빡이기도 한다. 바람에 스치우는 별빛이라는 시구가 괜한 표현이 아닌 것이다. 이렇듯 공기의 힘으로 별빛은 더 신비하고 아름다워지지만, 막상 별의 실제 모습을 보려는 천문학자들에게는 관측에 큰 방해 요소라는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허블 같은 우주망원경을 만들어 대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 띄우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예 렌즈 자체에 미세한 굴곡을 줘서 이 일렁임을 상쇄하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그 덕분에 구경이 수십m씩 되는,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Giant Magellan Telescope) 같은 커다란 망원경을 지상에 만들어 쓰는 일이 가능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은 아는 만큼 느낄 수도 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별들은 원시시대부터 신비함의 원천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 끝에 걸린 장막 위에 찍힌 빛나는 점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이제 우리는 저 별들이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천체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모든 것을 낳은 우주의 광대함 속으로 빠져든다. 밤하늘의 별빛은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지만, 소박한 이야기에서 시작한 별에 대한 꿈은 이제 꿈보다도 더 놀라운 ‘실제’에 대한 진정한 경이감으로 승화됐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 과학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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