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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스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7. 1. 12:41
 

사설.칼럼칼럼

[아침 햇발] 우리가 그리스다 / 최우성

등록 :2015-06-30 18:54

 

선택과 결정은 엄연히 다르다. 결정은 애초부터 그들의 몫이 아니다. 1100만 그리스 국민의 운명이 그렇다.

5일 치러질 국민투표를 앞둔 그리스는 혼돈 그 자체다. 은행 영업 중단과 주식시장 휴장 긴급명령이 내려진 이후, 일상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하루 현금 인출한도는 60유로로 제한됐고, 아테네 시내 대중교통 이용은 공짜다. 유럽 지도자들은 “국민투표 부결은 유로존 탈퇴를 뜻한다”는 경고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찬성표를 던진다면 재협상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유혹의 언어도 빼놓지 않는다. 이번 국민투표를 ‘유로존 신임투표’로 몰아가려는 공포 마케팅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 국민의 ‘선택’은 과연 그리스의 운명을 얼마만큼 바꿀 수 있을까? 2010년 시작된 구제금융 5년의 현주소부터 짚어보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밀어붙인 긴축 프로그램의 성적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 기간 국내총생산(GDP)은 25%나 줄어들었고 청년실업률은 60%까지 치솟았다. 긴축 프로그램의 상처가 유독 깊었던 건, 변변한 수출 산업 기반이 없었고, 아시아 외환위기 극복 과정 때처럼 세계경제 특수(닷컴 호황)를 누리지 못한 점도 한몫했을 수 있다.

어쨌거나 구조조정과 재정지출 축소를 뼈대로 하는 긴축 프로그램이 실패한 카드였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제금융기관의 구제금융 자금은 대부분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나라 민간 금융기관 부채를 갚는 데 도로 쓰였을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리스 정부를 향해 2018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기초재정흑자 비율을 3.5%까지 끌어올리도록 여전히 강요하는 유럽 지도자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가장 먼저 시중에 돈을 풀어 출구를 찾던 제 모습은 꽁꽁 감춘 ‘위선자들’.

특히 독일의 냉혹함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두 차례 패전 이후 자신에 덧씌워진 엄청난 전쟁배상금 부담을 국제사회의 온정과 이성으로 벗어났던 과거를 잊었느냐고. 하지만 절반의 과거일 뿐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1920년대 독일 사회가 경험한 인플레이션은 끔찍한 사례다. 당시 독일 정부는 통화수요에 맞춰 돈을 찍어내느라 민간의 구닥다리 인쇄기를 죄다 강제징발했을 정도다. 베를린 시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동안 커피값이 갑절로 뛰던 시절이다. 통화가치(유로화) 수호에 대한 독일의 비이성적 집착은 가히 신앙에 가깝다.

며칠 뒤 그리스 국민은 최소한 ‘완만한 죽음’이냐 ‘바닥에서의 새 출발’이냐, 혹은 ‘모욕적인 굴종’이냐 ‘독자적 운명 개척’이냐의 갈림길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설령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이 과감하게 노(No)를 외치더라도, 그들의 운명이 그들 손에 온전히 쥐어지리라 장담하긴 어렵다. 현실적으로 유로존 탈퇴와 ‘드라크마’(그리스 화폐) 부활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고 높다. 한동안 차용증서(IOU)가 화폐 역할을 대신 맡으리란 전망도 있다. 금융질서가 붕괴된 그리스에서, ‘나는 네게 빚졌다’(I Owe You)라는 종이 쪼가리가 제구실을 해줄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최우성 논설위원
최우성 논설위원
아마도 현재의 구제금융 방식으로는 그리스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음을 트로이카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게다. 그럼에도 그들의 논리가 날것 그대로 작동하는 게 현실이다. 민주주의라는 대항 원리가 국제질서의 모든 영역에서 탄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한, 도처에 널린 ‘약한 고리’는 언제든 구제금융이라는 고성능 족쇄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저승사자 격인 글로벌 신용평가사들 입에선 벌써부터 ‘포스트 그리스’ 후보군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원지 그리스가 민주주의 부재의 희생양이 된 건, 정말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