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조폭문화’의 정수 보여주는 친박계 / 한겨레신문 사설

이윤진이카루스 2015. 7. 1. 12:38

사설.칼럼사설

[사설] ‘조폭문화’의 정수 보여주는 친박계

등록 :2015-06-30 18:48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벌떼같이 들고일어난 친박계 의원들의 행태는 이미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었다. 보스가 한 사람을 지목해 “죽이라”고 지시하자 일제히 손에 몽둥이를 들고 돌진하고 있는 모습은 거의 조폭에 가깝다. 정치인의 자존심, 국회의원의 체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보스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뒷골목 충성심’만이 넘쳐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배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부터가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리니 배신이니 하는 말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뒷골목 세계의 언어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배신은 국민에 대한 배신도, 유권자에 대한 배신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조직의 이해를 해쳤다는 뜻의 배신이다. 배신자를 처단하는 것은 조폭 세계의 불문율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지목해 공개적으로 ‘처단 지시’를 내렸다.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스의 심기’다. 의원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원내대표를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질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에 대한 생각은 친박계 의원들의 머릿속에는 없다. 의원총회를 열어 유 원내대표를 경질하겠다며 서명까지 받더니 표 대결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커지자 갑자기 의총 결사반대로 돌아서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다. 배신자를 처단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고 머뭇거렸다가는 또 다른 배신자로 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도 어른거린다. 지금 박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은 조폭문화의 정수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폭이 움직일 때는 언제나 돈과 이권 등 뭔가 ‘먹을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 친박계 의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그 이면에는 당내 헤게모니 탈환, 총선 공천권 확보, 차기 대선주자 선출 등의 ‘이권’이 걸려 있다. 잃어버린 당내 권력을 되찾고, 앞으로의 정치일정에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계산속이 철저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폭 싸움의 와중에 멍들고 깨지는 것은 민생과 민주주의라는 점이다. 입만 열면 경제 살리기니, 민생 해결을 위한 정치인의 역할이니 하는 말을 외치던 사람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면서 경제는 박살나고, 국회 기능은 마비되고, 국정은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은커녕 일개 계파 조직의 수장으로 전락한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