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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이 옳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7. 1. 12:33

사설.칼럼칼럼

[한겨레 프리즘] 유승민이 옳다 / 황준범

등록 :2015-06-30 18:56수정 :2015-06-30 21:02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유승민이 국회 복도에 나서자 수십명의 취재진이 순식간에 에워싼다. 유승민 코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수십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 틈 없이 파바박 꽂힌다. 보는 사람이 어지럽다. 셔터 소리에 사람들 말소리가 묻힐 정도다.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하늘을 시커멓게 채운 화살 전투 장면 같다. 화살촉에 이렇게 쓰여 있다. “그래서, 버틸 건가 관둘 건가.” 잔인하다. 나를 포함해, 기자들은 그래도 유승민에게 오늘도 들이댄다. “버티나, 관두나.” 못할 짓이다.

엄청난 비리에 엮인 것도 아니고, 국민적 지탄을 받을 정치적 뒷거래를 한 것도 아닌 이를 둘러싸고 며칠째 이런 극악스러운 풍경이 이어진다. 전례를 찾기 힘든 방법으로 폭력적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유승민을 콕 찍자, 친박들이 “싫다고 하시는데 아직도 못 알아듣니” 하며 벌떼처럼 일어나 연타를 날린다. 국회법 재의 요구(거부권)를 결정하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여당 원내대표와 정치권에 진노를 쏟아내는 모습도 희한하고, 차분히 논리 따질 것 없이 ‘당·청이 싸우면 공멸한다’며 청와대 편을 드는 모습은 초라하다.

“창피스럽다”, “처음 보는 초식이라 어리둥절하다”,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이제부턴 원내대표를 의원들이 뽑지 말고 청와대에서 임명하면 되겠네”…. 새누리당 의원·당직자들과 국회 앞 택시 기사들의 얘기가 이번 사태처럼 일치하는 경우를 최근에 보지 못했다. “조폭이랑 뭐가 다르냐”는 말을 국회 담장 안과 밖에서 똑같이 듣는다. 오죽하면 야당조차 유승민을 걱정하겠나.

유승민 사태의 결말은 명분과 민심, 세력, 그리고 ‘현실적 권력’의 조합 속에서 도출될 것이다. “막무가내로 ‘나가라’며 고립시키면 버틸 방법이 없다”는 이가 있고, “막무가내엔 막무가내로 버티면 된다”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와 유승민, 누가 옳은 것인지는 자꾸 따져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6·25 ‘유승민 거부’ 선언문을 다시 본다. “정치를 자기의 정치철학에 이용해선 안 된다.” 자신의 철학을 정치에 투영해 ‘자기 정치’를 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나? 유승민은 지난 2월 ‘수평적 당-청 관계’, ‘중부담-중복지’ 등 자기 철학을 담은 노선을 내걸고 의원 다수의 선택으로 원내대표가 됐다. 박 대통령도 비록 지금은 찾기 어려워졌지만 ‘경제민주화’라는 철학을 펴겠다고 약속하고 선택받지 않았나.

“정부의 정책이 잘 될 수 있도록 국회가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프로젝트인 세종시 수정에 정면으로 맞서 좌절시킨 이가 박 대통령 아닌가. “국회법 개정안은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서 위헌 소지가 크다.” 박 대통령은 야당 의원 시절인 1998, 1999년 비슷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발의에 동참했다.

박 대통령이 여야가 서로 다른 법안들을 연계했다며 사례를 일일이 나열한 것을 보고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가슴이 아프다”고 통탄했다. 다수당의 힘으로만 법안 처리를 할 수 없도록 한 국회선진화법을 박 대통령이 앞장서 통과시켜 놓고, 여당 원내대표에게 ‘야당에 끌려만 다닌다’고 탓하는 상황 인식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황준범 정치부 기자
황준범 정치부 기자
유승민의 진퇴 문제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지만, 그 혼자만의 문제는 더욱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여당은 박근혜라는 강력한 구심점과 자율성이 있었기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민들은 현재의 여당을 ‘다시 정권을 맡겨도 될까’ 하는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민들에게 그런 기대감을 줄지, 자조감을 줄지, 유승민 사태에 달렸다.

황준범 정치부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