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분단 70년 - 다시 쓰는 징비] ‘주변 4강과 남북관계’ 전문가 제언
광복·분단 70돌을 맞은 한국 외교에 낯선 길이 펼쳐지고 있다. 성장한 국력과 위상에 맞춤한 강중국 ‘돌고래’ 외교의 길이다. 한-미 동맹 일변도의 미국 따라하기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던 기존 한국 외교의 틀을 넘어서는 대담함과 면밀함을 동시에 요구한다. 한국 외교 최대의 도전으로 평가되는 미-중 관계, 남북관계를 연구해온 두 전문가에게 한국 외교의 지향점으로서 강중국 외교의 작동방식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이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가 동북아 판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이 동북아 지정학의 ‘캐스팅 보트’ 를 쥔 중견국으로 떠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 교수는 중국을 기반으로 미-중 관계와 한-중 관계에 천착해온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동북아에서 한국의 국력은 미·중·러·일 등 주변 4강에 이어서 5등이고, 더욱이 분단 상태라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건 맞다”면서도 “신장된 국력으로 볼 때 더 이상 구한말 때와 같은 의미없는 플레이어는 아니다”라고 했다. 또 “국제정치의 성격도 19세기 국가행위자와 군사력 중심에서 경제나 시민사회 등의 비중이 커지면서, 전체 질서를 형성하는 데 있어 한국이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국제정치서 시민사회 비중 커져
구한말 같은 플레이어 아냐
강대국 군사게임 말려들지 않고
선제적 이슈 선점 외교 펼쳐야”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 질서가 과거 국제정치의 영역인 군사 안보에 발목이 잡히도록 놔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선 “강대국 간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게임’의 성격을 협력적인 방향으로 한국이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게임이 군사력 대결로 가면 구한말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키텍처’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이슈를 찾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성격의 대표적 이슈로는 ‘북핵’을 꼽았다. “북핵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미·중·러·일 등 주변국을 다 모아놓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건, 핵문제의 해결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동북아 강대국 사이의 다자협력 증진, 불신 및 긴장 완화 등의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가 등과 같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닥칠 땐 어떻게 할 것인가? 전 교수는 “미-중은 스스로는 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변국에는 선택을 강요하는 면이 있다. 그걸 거부하는 것도 우리에게 중요하다”며 “강대국 간 게임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립적인 상황에서 전략적 선택을 내리기보다는, 중간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선제적으로 이슈 선점도 하고, 말도 더 많이 하고, 요란하게 얘기하고 다니는 외교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상을 결정한다. 북한에 대한 발언권이 지금처럼 없다면 미국도 중국도 한국을 협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는 동북아에서 한국 외교가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관리 능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자기 주변 영역에서 제대로 하는 역할이 없으면, 그 영역 밖에서도 목소리를 내기가 힘든 것처럼, 미-중 사이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유엔 무대건 별도 협의체건 중견국 외교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치”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역내 위기를 관리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반도가 해양과 대륙을 잇는 교량이 되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만, 대립의 공간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천안함 사건 당시 미국 항공모함의 출동과 중국의 반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둘러싼 미-중의 공방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럴 때 한국은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말했다.
“천안함·사드 배치 문제에서 보듯
대립의 공간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국력 바탕한 협상력 커졌는데
인식은 1950년대 이승만 틀에 갇혀” 반면, “남북관계 개선을 한국이 주도할 때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여지도 사라진다”며 “남북이 평화정착 프로세스로 들어가면 사드는 더 이상 추진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미-중 간 갈등도 있지만 협력도 있을 것이고, 그 협력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서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주도력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이미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는데도, 스스로 과거 일방적으로 지원받던 1950년대의 인식에 갇혀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승만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미 협상력 수준은 비교할 수 없다. 지금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같은 다양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안보에서도 1년에 38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머리는 그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그러니 자기 위상과 역할이 커졌다는 걸 잊고 충분히 할 역할이 있는데도, 이승만 정부 때처럼 알아서 움츠린다”며,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주도적 외교에 두려움 없이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전재성 서울대 교수
구한말 같은 플레이어 아냐
강대국 군사게임 말려들지 않고
선제적 이슈 선점 외교 펼쳐야”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 질서가 과거 국제정치의 영역인 군사 안보에 발목이 잡히도록 놔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선 “강대국 간 불신이 생기지 않도록 ‘게임’의 성격을 협력적인 방향으로 한국이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게임이 군사력 대결로 가면 구한말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키텍처’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이슈를 찾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성격의 대표적 이슈로는 ‘북핵’을 꼽았다. “북핵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미·중·러·일 등 주변국을 다 모아놓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는 건, 핵문제의 해결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동북아 강대국 사이의 다자협력 증진, 불신 및 긴장 완화 등의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가 등과 같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닥칠 땐 어떻게 할 것인가? 전 교수는 “미-중은 스스로는 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변국에는 선택을 강요하는 면이 있다. 그걸 거부하는 것도 우리에게 중요하다”며 “강대국 간 게임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립적인 상황에서 전략적 선택을 내리기보다는, 중간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선제적으로 이슈 선점도 하고, 말도 더 많이 하고, 요란하게 얘기하고 다니는 외교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
대립의 공간 되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국력 바탕한 협상력 커졌는데
인식은 1950년대 이승만 틀에 갇혀” 반면, “남북관계 개선을 한국이 주도할 때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여지도 사라진다”며 “남북이 평화정착 프로세스로 들어가면 사드는 더 이상 추진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미-중 간 갈등도 있지만 협력도 있을 것이고, 그 협력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서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주도력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이미 남북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는데도, 스스로 과거 일방적으로 지원받던 1950년대의 인식에 갇혀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승만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미 협상력 수준은 비교할 수 없다. 지금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같은 다양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안보에서도 1년에 38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머리는 그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그러니 자기 위상과 역할이 커졌다는 걸 잊고 충분히 할 역할이 있는데도, 이승만 정부 때처럼 알아서 움츠린다”며,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주도적 외교에 두려움 없이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