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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항 폭발 사고로 분 중국의 전근대성/ 힌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8. 22. 13:12

국제중국

부패와 성장률 집착, 시안화나트륨과 함께 폭발하다

등록 :2015-08-21 20:25

 

160㎞ 떨어진 베이징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큰 폭발사고였다. 지난 20일 중국 톈진항 폭발 참사 현장에서 폭발로 불타 파손된 차량들을 구조대가 정리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안전불감증, 부정부패, 관료주의, 언론통제, 과도한 선전 등 중국 사회의 치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톈진/신화 뉴시스
160㎞ 떨어진 베이징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큰 폭발사고였다. 지난 20일 중국 톈진항 폭발 참사 현장에서 폭발로 불타 파손된 차량들을 구조대가 정리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안전불감증, 부정부패, 관료주의, 언론통제, 과도한 선전 등 중국 사회의 치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톈진/신화 뉴시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톈진항 폭발
▶ 9월3일은 중국에 중요한 날입니다.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세계 정상들을 초청해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를 엽니다. 고질적인 스모그를 막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공장 가동 중단 계획까지 세웠는데, 지난 12일 밤 톈진항에서 폭발사고가 터지면서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이때 방출된 독성물질 때문인지, 비가 내리자 도로에 하얀 거품이 일었습니다. 안전불감증, 부정부패, 언론통제 등 중국 정치체제의 모순과 한계가 다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6월1일 밤.

중국 양쯔강을 거슬러 오르던 대형 여객선 둥팡즈싱(東方之星·동방의 별)호가 뒤집혔다. 대부분 50대 이상 장년층이던 승객 440여명이 숨졌다. 리커창 총리는 사고 이튿날 즉시 전용기를 타고 현장에 갔다. 사고 뒤 무리한 불법 선박 개조, 자동경보장치 미장착 등 안전 불감증과 관리 부실이 도마에 올랐다.

중국 건국 이래 최대의 선박사고에서 중국 지도부의 책임을 어느 정도 덜어준 것은 ‘천재지변’이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쳤고 배는 단지 2~3분 만에 뒤집혔다.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지탄을 받은 선장의 아내도 함께 실종됐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고, 잠수·구조대원들의 구조작업이 관영매체를 통해 집중 부각되면서 여론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중국 정부는 일주일 만에 선체 인양까지 끝내며 사고를 서둘러 마무리지었다.

그로부터 두달여가 지난 8월12일 밤. 중국 톈진시 빈하이신구 탕구항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폭발은 인공위성에서 관측될 정도로 컸다. 희생자 110여명을 포함해 사상자는 200명을 넘겼다. 금속 도금과 살충제, 광석 제련 등에 사용되는 맹독성 물질인 시안화나트륨 700여t이 현장에 쌓여 있다가 일부가 폭발한 것이다.

으레 현장에 바로 달려가곤 했던 리커창 총리는 이튿날 톈진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흘째도 그는 안 보였다. 톈진은 베이징 남역에서 고속철을 타면 불과 30여분 만에 닿을 수 있는 수도권 직할시다. 독성물질에 피폭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을까. 사고 나흘째. 그가 비로소 모습을 나타냈다. ‘지척’의 거리에 그가 ‘뒤늦게’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명백한 인재라는, 둥팡즈싱 침몰사고 때와 달리 ‘면피’가 되지 않는다는 당혹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톈진항 폭발사고는 안전불감증, 부정부패, 관료주의, 언론통제, 과도한 선전의 한계 등 중국 사회의 치부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총리가 뒤늦게 나타난 이유

사고가 일어난 톈진항은 중국 동북지역 최대 항구 가운데 하나다. 규정은 미비하지 않았다. 중국은 550㎡가 넘는 유독화학물질 창고는 주거지역이나 도로, 철로 등 주요 간선도로에서 최소 1㎞ 이상 떨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폭발이 일어난 지역의 항공사진을 보면 규정은 그저 규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사고 지역 주변으로는 인가가 밀집해 있고, 양쪽으로 고속도로와 경전철역이 위치한다. 창고 규모는 24t가량의 시안화나트륨을 보관할 수 있는 규모였지만 실제로는 700t이 적재돼 있었다. 사고가 난 루이하이 물류회사는 사고 발생 두달 전인 6월말에야 유독화학물질 취급 허가를 받았으나 중국 언론들은 “이전에도 이 회사가 유독화학물질을 취급했다”고 전했다. 더구나 이 회사의 대주주인 둥아무개씨는 전직 톈진항 공안국장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는 안전 검사도 갑(甲)급 평가기관의 평가를 받아야 했으나 을(乙)급 기관의 검사로 무사히 넘어갔다. 일부에선 이 지역이 시정부의 행정권이 미치지 않는 ‘독립왕국’이었다고 했다. 둥씨 일가는 톈진시 전 공안국장과의 인맥을 활용해 각종 편의와 특혜를 받고 사업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한 이래 2년 반 이상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반부패 척결 구호가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등 ‘거물 호랑이’들을 속속 사법처리했지만 넓은 중국 사회의 이면엔 무수한 ‘준척급 호랑이’들이 암약하는 셈이다. 시 주석이 사고 직후 인명 구조와 함께 “피의 교훈을 깊이 새기고 (안전) 직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반드시 추궁하겠다”고 격노한 것이나, 중앙인민검찰원까지 나서 “직무유기와 직권 남용, 법규 위반 등을 철저히 조사해 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한 것도 당혹감의 표현이다.

더구나 중국은 9월3일 세계 정상들을 베이징 천안문광장으로 초청해 자국의 굴기를 과시하는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를 야심차게 준비하는 중이었다. 천안문광장 재단장, 행사 당일 서우두(수도)공항 일시 폐쇄 등 여러 분주한 작업 가운데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공기질 향상이었다. 중국은 이달 28일부터 9월4일까지 베이징, 톈진, 허베이, 산시, 네이멍구, 산둥, 허난 등 7개성의 1만여개 환경오염 배출 공장의 가동을 중지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11월 아펙블루(APEC BLUE)에 이어 ‘열병식 블루’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안화나트륨을 비롯한 질산암모늄, 질산칼륨 등 독성화학물질로 인한 이번 폭발사고는 단숨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고 낸 회사 대주주 둥씨 일가
톈진시 전 공안국장 인맥 활용해
각종 편의와 특혜 받고 사업 키워
‘준척급 호랑이’들이 곳곳에 암약
시진핑의 반부패 척결 구호 무색

중국 지도부 ‘신창타이’ 선언하며
경제성장률로 지방관리 평가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해왔지만
톈진시는 과거 성장동력이던
석유화학 등에 기형적으로 의존

리커창 중국 총리는 폭발사고 나흘 만인 16일 사고 현장을 찾았다. 톈진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부상자를 보는 리 총리. 톈진/신화 뉴시스
리커창 중국 총리는 폭발사고 나흘 만인 16일 사고 현장을 찾았다. 톈진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부상자를 보는 리 총리. 톈진/신화 뉴시스

영웅 만드는 ‘선전 공작’도 실패

중국 공산당의 전가의 보도였던 ‘선전 공작’도 이번엔 먹히지 않았다. 중국에서 지진이나 대형사고가 터지면 <신화통신>이나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 관영매체들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것은 첫번째가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의 지시나 현장 지휘 모습이고, 둘째가 인민해방군과 소방대원들이 벌이는 극한의 구조작업이다. 2008년 원촨 대지진, 2011년 정저우 고속철 사고, 올해 6월 양쯔강 여객선 전복사고 때까지만 해도 선전은 먹혔다.

그러나 이번 톈진항 사고 때는 선전의 약발이 듣지 않았다. 폭발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했다가 사망한 소방대원 25명은 톈진항 공안국 소방지대 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정식 중국 소방체계에 포함되지 않고 국유기업인 톈진항이 고용한 이른바 비정규직 소방관들이었다. 정규 소방관들보다 급여도 적고, 시안화나트륨 등 독성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정식 소방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다수가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농촌에서 올라온 농민공 출신들이었다. 한 비정규직 소방대원은 “나와 동료들은 독성화학물질로 발생한 화재를 어떻게 진압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지 못했다”며 “일부에서 소방관들이 초기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수분에 반응하는 탄화칼슘과 질산칼륨 등에 물을 뿌려서 폭발을 키웠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부당하다. 우리 팀은 모두 비통함에 잠겨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들은 사고 초기 사상자 집계에서도 빠졌다. 분노한 유가족들은 “희생당한 사람들에게도 차별이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급기야 리커창 총리가 나서 “희생된 소방관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 없이 모두 영웅들이다. 추후 보상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당국의 상투적인 영웅담은 차별과 억울한 희생에 묻혀 버렸다. 어이없는 인재에 관영매체들까지 ‘진실 보도’에 충실했다. 데이비드 밴더스키 홍콩대 교수는 “이번 사고 때는 관영매체들이 사실 보도를 밀고 나갔고, 정부의 통제와 선전이 난관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톈진항 폭발사고는 중국의 해묵은 불통 관료주의와 경제성장률 지상주의라는 적폐도 드러냈다. 톈진시 당국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갑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초대형 사고가 터졌음에도 황싱궈 톈진시 서기는 단 한번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12일 사고 이후 진행된 6차례의 기자회견에 나타난 시 당국자들은 선전부 부부장, 사고 지역구인 빈하이구 구청장 등이 전부였다. “모르겠다”, “내 담당이 아니다”라는 게 이들의 답변이었다. 관영언론들마저 “톈진시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가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책임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사이 인터넷에서는 “사고 현장에 있던 주민은 모두 숨졌다”, “시가 폭발지점 반경 3㎞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전원 철수령을 내렸다”는 소문들이 퍼져나갔다. 당국은 360여개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단속했지만 불신은 가시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미국과 서방 사회의 가치관을 비판해온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마저 극히 이례적으로 평론을 통해 “서구사회는 대형재난이 발생했을 때 좀더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로 대중에게 상황을 알려 신뢰를 얻는다. 중국은 이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전국적인 추모 열기 속에 한 은퇴 소방관이 희생자 추모행사에 참석해 위로의 글을 적고 있다. 톈진/신화 뉴시스
전국적인 추모 열기 속에 한 은퇴 소방관이 희생자 추모행사에 참석해 위로의 글을 적고 있다. 톈진/신화 뉴시스
관료들은 여러 차례 “위험물질인 시안화나트륨은 안전지대로 이송 보관했다”, “사고 지역 주변의 식수와 공기 오염은 없다”, “비가 와도 위험물질이 유출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중국 여론은 내내 못미더워하는 눈치다. 한 톈진 시민은 “정부 당국의 말은 단 한마디도 신뢰할 수 없다. 정부와 사고를 낸 루이하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려 한다”고 말했다. 관원들의 불통은 폭발사고 뒤 첫 비가 내린 18일 톈진 시내 도로에 유독화학물질이 용해되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흰색 거품들로 뒤덮였음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언론들은 “비를 맞으니 따갑고 타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고 전했지만, 담당 관리는 “거품은 평상시 비가 내릴 때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톈진시, 석유화학공업 비중이 1/3이나

톈진항 폭발사고는 중국 지도부가 ‘신창타이’(新常態·경제 구조조정 속에 지속가능한 중고속 성장)를 선언했음에도 성장률 만능주의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중국 지도부는 신창타이를 외치며 “이제 경제성장률로 지방관리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영웅시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해왔다. 환경 보호, 창업 장려, 첨단 정보통신산업 육성 등을 새로운 경제성장의 모델로 제시했다.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인 톈진은 구태의연했다. 올해 상반기 9.4%의 경제성장률로 전국 3위를 기록한 톈진시는 과거 성장동력이던 석유화학 등 중공업에 매달렸다. 톈진시의 전체 산업에서 석유화학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톈진시가 성장률에 집착해 기형적으로 석유화학산업에 의존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경제·군사 측면에서는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양대 강국이 됐다. 아편전쟁 이후 100년에 이르는 부강의 숙원이 달성되려는 찰나다. 하지만 톈진항 폭발사고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부러움을 받고 더 강한 소프트파워를 지니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거듭 일깨워줬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