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통령의 태도가 ‘답정너’면 심각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8월6일 담화가 그랬다. 대통령은 ‘4대 구조개혁’을 역설하며, “국민의 동의와 동참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도 국민의 협조와 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 혼자 말하고 끝이다. ‘메시지의 초점이 흐려진다’는 이유로 질문은 받지 않았다.
새삼스럽진 않다. 집권 3년차인 박 대통령이 기자의 질문에 답한 사례는 두번(2014·2015년 새해기자회견)뿐이다. 앞선 세차례 담화(2013년 3월4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2014년 2월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2014년 5월19일 세월호 참사 계기 국가개조 방안 관련) 때도 질문을 받지 않았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지금껏 ‘0’이다.
대통령은 참모와 친한 거 같지도 않다. 세월호 침몰 당일엔 ‘7시간’ 동안 행적이 묘연했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땐 첫 환자 확진 뒤 열흘도 더 지나서 반응했으며,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장병 둘이 크게 다친 안보 위기에도 닷새가 지나도록 국방장관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나 깨나 나라 걱정뿐’이라니, 그 시간에 놀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 조언을 들었으리라 믿는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절규도 그런 의견 수렴의 소산일 터. 대통령의 답안은 이렇다. 첫째, 임금피크제 도입→청년고용 확대. ‘부모 임금 깎아 자식 일자리 만들자’는 얘기다. 둘째, 노동 유연성 강화→정규직 채용 확대. ‘해고가 쉬워지면 비정규직이 정규직 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대통령은 청년의 눈앞에 장년 노동자를, 비정규직 앞에 정규직을 ‘표적’으로 세운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은 모두 이들 탓이라 속삭인다. 그렇게 정부와 자본은 시야에서 사라지려 한다.
하지만 한국 노동자의 정년퇴직 비율은 8.1%(통계청). 실질실업률 30.9%(2014년 기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첫 일자리의 40%가 계약직·임시직(통계청)인 청년의 절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먹잇감이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하게 된 계기는, 숱한 정규직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부터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청년고용 확대 효과가 확실한 청년고용할당제, 더 많은 일자리와 ‘저녁이 있는 삶’을 동시에 안겨줄 노동시간 단축 등은 결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정치란 갈등의 제도화이자 ‘공공재의 생산·유지·확산’을 통한 시민의 안녕과 공존 추구다. 그런데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우리 대통령한테 중요한 건 공공정책이 아니다. 권력을 지탱할 선거 승리다.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 13만개를 만듭니다”라는 정부 캠페인의 목표는 ‘경제 재도약’이 아니다. ‘비정규직과 청년의 고통 위에 호의호식하는 배부른 장년 정규직 노동자’라는 ‘가상적’의 창출을 통한 2016년 4월 총선 승리가 진짜 목표다. 참으로 더러운 정치다. 세월호 유가족을 ‘순수’와 ‘불순’으로 편가르려 한 것만큼.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
이제훈 사회정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