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에 동참을 / 홍세화/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8. 28. 22:27
 

사설.칼럼칼럼

[특별기고]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에 동참을 / 홍세화

등록 :2015-08-27 18:35수정 :2015-08-27 22:03

 
<친일인명사전>은 수록된 인물 대부분이 이미 죽은 뒤였음에도 반대 세력의 목소리와 방해공작이 만만치 않았는데, <반헌법행위자 열전>의 수록 대상자는 대부분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도 적지 않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역사는 설령 그것이 비극적이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말해져야 한다… 진실을 감추거나 잊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건설할 수 없다.” 3년 전 알제리 독립 50주년을 맞아 알제리 국회에서 행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식민체제는 엄중하게 부당하고 가혹했다”며 알제리 민중이 겪은 고통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알제리 전쟁 당시의 폭력과 불의, 학살과 고문에 관한 진실에의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해방 70돌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을 아쉬움과 함께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그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 비교적 완강한 모습을 보였던 박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것과 관련하여 중국의 부상에 맞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미국의 압력을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오늘 박 정권과 박 정권을 떠받치는 수구세력이 일본의 식민체제 아래 조선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공감할 줄 안다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학살과 고문 행위에 대해서는 왜 그리 둔감할까. 아니, 둔감하다는 말은 그들에게 가당치 않다. 그들이 바로 학살과 고문, 간첩조작 등 국가폭력 행위의 주체들이었거나 그들을 뿌리로 둔 세력이기 때문이다. 실상 아베 신조에게는 가소롭게 비칠지 모른다. 자국민을 학살하고 고문한 자들이 식민지 조선과 조선 사람을 유린했다고 일본을 손가락질할 수 있나? 더구나 일본의 식민체제에 빌붙어 사적 안위와 영달을 추구했던 자들이 누구였나?

역사 청산과 관련하여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나치 독일이 저지른 반인륜 범죄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각인돼 있다. 2차대전까지 오랜 동안 앙숙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의 쌍두마차가 되는 첫 관문은 영국을 미국이 보낸 ‘트로이 목마’로 본 샤를 드골의 “과거를 잊지 않은 채 함께 미래를 바라보기로 했다”는 발언에서 그 단초를 읽을 수 있다. 드골의 이 말은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1차 대전의 격전지 베르됭에서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구체화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독-프 관계의 정상화는 나치에 부역했던 세력을 청산한 프랑스와 나치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끝까지 사죄하는 독일 사이에 아귀가 맞아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의 지배세력이 계속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우리에게 프랑스의 드골이 가졌던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던 점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요인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분단 상황이 있다. 사흘 전 남북간 고위급 접촉이 6개 항의 합의문을 담아 타결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조마조마함을 거둘 수 없는 것은 남과 북의 지배세력은 결여되어 있는 정당성을 분단의 긴장상태가 허용하는 ‘적대적 공생관계’로 메울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남북관계의 개선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대외관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바랄 때, 칸트가 일찍이 <영구평화론>에서 지적했듯이 국내 정치의 정상화를 전제해야 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과제와 만나게 된다.

서설이 길었다. 지난달 제헌절을 앞두고 한홍구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장은 일차 제안자로 참여한 33명의 지식인과 함께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을 주창했다. 이 열전 편찬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한 1948년 이래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각종 인권유린과 조작 사건으로 헌법을 파괴한 자들의 이름과 행적을 기록하는 사업이다. 한홍구 관장은 수구기득권 세력의 “과거의 일을 오늘의 잣대로 판단한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반헌법적 행위 당시의 법률로도 명백한 범죄행위를 구성하는 사례만을 수록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며 “내란이나 고문은 악법 중의 악법인 유신헌법에서조차 범죄로 규정했던 행동이었지만 고문은 자행됐다. 그런 반헌법행위자들을 역사의 법정에 반드시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유약하고 소심한 성정 탓일까, 대학생 신분이었던 70년대 초 고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서울시경 대공분실에서 겪었던 일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깊은 트라우마로 갖고 있다. 프랑스에서 망명도생을 결심하기 전에 귀국을 상정했을 때에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장기간의 징역살이보다 그에 앞서 치러야 할 고문에 대한 공포였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 정권’이라는 말에 섬뜩 놀라고 꿈속인 듯 착각하면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또한 나의 그런 성정 탓이겠다.

<한겨레>를 통해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소식을 처음 만났을 때 설렘에 앞서 찬바람이 가슴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령 <친일인명사전>은 해방된 지 64년이 지난 2009년에야 펴낼 수 있었고, 그래서 수록된 인물 대부분이 이미 죽은 뒤여서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반대 세력의 목소리와 방해공작이 만만치 않았는데, <반헌법행위자 열전>의 수록 대상자는 대부분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도 적지 않다. 실제로, 한홍구 관장은 박근혜 정부의 총리들이 모두 열전에 수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홍원 전 총리는 ‘초원복집 사건’을 유야무야했던 검사 출신이고, 이완구 전 총리는 삼청교육대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내무 분과의 핵심 실무자였으며, 황교안 현 총리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면서 수사 방해를 했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간첩조작, 선거부정 같은 과거의 주업과 함께 불법적인 해킹도 마다하지 않는 국정원은 물론이고, 검찰과 사법부까지 유신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정황 아닌가. 70년대의 박 정권과 오늘의 박 정권 사이에 고문행위를 빼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할 수 있겠는데, 과연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도 나의 의구심은 떠나지 않았다. “맹자의 글에 ‘공자가 춘추를 지으니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열전을 지음으로써 헌법과 국민을 거역한 많은 이들이 두려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정말 그러기를 바라지만, 수치심이 없어서 뻔뻔할 터인데 수치심을 느끼기나 할까? 사람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순수해진다고 하는데, 과문의 탓일까, 전쟁 전후에 방방곡곡에서 저질러진 학살행위를 교사하거나 실행한 사람들, 70~80년대에 고문행위를 교사하거나 실행한 사람들 중에 죽음의 순간에 참회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정의에는 힘이 없어 ‘정의력’이라는 말이 없지만, 권력과 금력에는 그 자체에 힘이 있어 ‘권력’과 ‘금력’이라고 쓴다. 최근 개봉된 영화 <암살>의 대상은 독립투쟁을 하다가 일제의 앞잡이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일제 치하가 아닌 일제가 망한 뒤 해방된 나라에서 법에 의해 단죄되는 대신 암살된다. 영화는 반민특위가 힘이 없이 무위로 돌아간 탓에 암살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사업에 적극적인 참여를 두 손 모아 바란다. 비록 작더라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의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006001-04-198120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