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5) 문재인과 새정치민주연합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문재인 대표는 거꾸로 하고 있다
당대표 되더니 ‘강한 야당’ 아닌
중도화 전략으로 대권 행보 나서
지금은 지지층 결집해 싸울 때 남북 긴장 국면서 온건한 주문
강경한 박 대통령과 대조 보여
20~30대 대북 반감 느는 게 현실
안보 이슈 새로운 구상 없다면
야당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 불리한 의제라면 사람을 데려와라 2006년 9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야당이 비전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한나라당이 야당, 오포지션 파티(Opposition Party, 반대하는 당)이니 결국 이슈는 여당이 만든다. 우리가 이슈를 못 만들더라도 야당의 속성을 조금 더 이해해달라. … 그런데 지금 우리는 126석이고 과반수에 가까운 열린우리당은 멋대로 해왔다. … 우리가 발목을 잡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있다. 야당은 발목이 아니라 웃통을 확 잡아야 할 경우도 있다” 바로 그거다. 야당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일 때도 야당은 원래 반대하는 거라고 태연히 말했다. 2004년 6월에 국회 개원 축하 연설을 한 후 정당 대표 및 5부 요인과 만난 자리에서다. “여야라는 개념이 지금 현재로서는 여당에 불리한 것 같다. 유럽에서는 룰링 파티(Ruling Party)나 오포지션 파티라는 개념을 쓰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어쨌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다른 당들은 ‘반대당’인지 모르는데 모두 야당으로 불려서 불안한 측면이 있다. … 이것이 우리 사회 구성 원리이기 때문에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해야 한다.” 야당은 싸우는 것이고, 지도자는 싸움을 이끄는 사람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강하게 반대하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그 싸움을 앞에서 이끌어야 한다. 이끌지 못하면 지도자가 아니다. 2006년 1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학법’ 투쟁으로 촉발된 여야 대치 국면에 대한 질문에 “국정운영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여당이 다수고, 강자다. 사학법 투쟁도 여당이 빌미를 제공했다. 정부·여당이 노력해야지, 우리가 어쩌겠나. … 야당은 영어로 ‘오포지션 파티’다. 나라를 위해 확실히 반대하는 게 야당의 역할이다. 우리가 반대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그렇다면 야당은 반대하고 싸우면 되는가? 그렇다. 그럼 국민들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당’이라고 등을 돌릴 것 아닌가? ‘대안을 내놓는 정당’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시기가 중요하다. 평소에는 야당은 반대하고 싸우는 것이다. ‘강한 야당’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총선이나 대선이 오면 그때 ‘우리의 대안은 이것입니다’라고 내놓는 것이다. ‘대안 정당’이 되는 것이다. 1994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보수혁명의 풍운아’라고 불린 뉴트 깅그리치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초 대표적 의제인 ‘헬스 케어’를 좌절시켰지만 선거를 앞두고는 그 유명한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공약을 내세워 상하원 모두 압승을 이끌었다. 문재인 대표는 거꾸로 하고 있다. 당대표가 되더니 싸우는 ‘강한 야당’이 아닌 ‘대권 행보’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능한 경제 정당’ ‘안보 중시 정당’ ‘노인 우대 정당’의 이른바 ‘중도화 전략’은 두가지 오류에 빠져 있다. 먼저 시기다. 지금은 대안을 놓고 경쟁할 때가 아니라 ‘국민이 분노하는 이슈’에 집중해서 싸울 때다. 노동, 재벌, 국정원, 청년 일자리 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싸움을 할 시기다. 지지층이 분노하는 이슈를 갖고 싸워야 지지층이 결집한다. 두번째 오류는 ‘경제와 안보’는 ‘방어 의제’일 뿐 ‘공격 의제’가 될 수 없다. 문재인 대표가 이것을 전면에 내걸었다고 새누리당보다 더 잘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보다 내가 더 잘할 것 같지 않은 것을 내세우면 안 된다. 하고 싶다면 문재인 대표가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와서 그 일을 맡겨야 한다. 선거에서는 대중이 관심을 갖고 있고, 정당이나 후보 간에 차이가 큰 이슈만이 영향을 미친다.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복지 확대’ 등은 모두 중요한 이슈였다. 그중에서 복지는 박근혜 후보도 경쟁력이 있었지만 경제민주화와 정치혁신은 불리한 이슈였다. 그런데 대중의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이슈를 캠페인으로 지워버릴 수는 없다. 다만 불리한 의제라면 차이를 없앨 수는 있다. 그럴 때 가장 빠른 방법이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김종인, 안대희, 한광옥을 데려와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국민통합’을 맡기면 불리한 이슈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문재인 대표가 아무리 유능한 경제 정당과 안보 정당을 외쳐도 사람들이 믿겠는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데려와 일을 맡기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이 의제는 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이슈는 아니다. 야당에 대한 반대를 약화시키는 ‘방어 의제’일 뿐이다. ‘보수·진보·중도’ 용어를 완전히 지워버려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중요한 이유는 전선이 ‘보수’ 대 ‘진보’의 진영 싸움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념적 구도는 집권당에 무조건 유리하다. 야당은 보수·진보·중도라는 용어를 선거 지형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 최근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도·진보’ 논쟁도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수·진보의 구도는 쌍방 ‘역사적’ 책임을 묻게 만들어, ‘현 정권’의 실정을 은폐하고, ‘정권심판론’을 약화시키면서 계속 새누리당 정권을 지지할 명분을 준다. 대선은 70년 역사의 총체적 심판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현 집권당의 실정으로 선거를 치러야 유리한 야당에는 치명적이다. 이념적 구도로 전환되면 엉뚱하게도 집권당이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수도 있음을 2012년 총선에서 경험했다. “‘국민 성공 시대’를 약속한 이명박 정권과 ‘국민 행복 시대’를 약속한 박근혜 정권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새누리당에 다시 한번 정권을 맡겨도 좋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만 성공’하고 ‘부자만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고 분노한다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좋다. 대선은 새누리당 집권 5년에 대한 심판이 되어야 야당에 유리하다. 이념 구도, 역사 논쟁은 집권당 실정에 면죄부를 준다. 새누리당은 지지기반·정체성·조직력·리더십에서 야당을 압도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새누리당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과 싸울지를 알고 있고 투쟁을 이끄는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지지자들을 위해 싸운다. 그리고 선거 때가 되면 외연 확대를 위해 정체성에 맞지 않더라도 과감한 혁신을 한다. 야당은 지지층을 위해 싸우지도 않고 선거 때 과감한 혁신을 하지도 않는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