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9일 수요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하루 종일 뜨거운 뉴스가 쏟아졌다. 9월2일 안철수 전 대표의 “혁신은 실패했다”는 도발적 비판 이후 계속되던 주류와 비주류의 일촉즉발의 긴장이 결국 폭발한 것이다. 터질 게 터진 것이다. 상대를 향해 양측의 포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혁신위가 내놓은 ‘공천 혁신안’은 8일 의원총회와 9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고성이 오갈 정도로 이견이 있었으나 문재인 대표는 오전 10시30분에 열린 당무위원회에서 밀어붙였다. (안심번호 도입을 전제로) ‘국민공천단 100%’안과 ‘국민공천단 70% 대 권리당원 30%’안, 선출직 공직자의 총선 출마 시 감점, 경선 1~2위 후보 간 결선투표, 정치 신인 가산점 등의 안이었다.
그 시간에 연일 문재인 대표를 비판하던 안철수 의원은 천정배 의원과 만나고 있었다. 천 의원은 “혁신위로 당을 살릴 수 없다”며 “새정치민주연합에 미련을 둘 게 아니고… 새판을 짜는 게 불가피하다. 시대적 요청이고 당위다”라며 안 의원의 신당 합류를 요청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호남 민심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 당의 혁신으로는 호남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데 공감한다”며 천 의원에게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천 의원의 역할이 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힘을 합치고 함께해야 한다”고 사실상 ‘복당’을 권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이날 아침 <동아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등 돌린) 호남 민심을 엄중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천 의원과 만나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고 싶다”고 밝힌 뒤 이례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탈당에 대한 질문에 “(단호한 표정으로) 없다. 나는 반드시 당을 바꿔야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일축했다.
기강…기강…기강…기강…기강
안철수·천정배 회동 뉴스로 언론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던 오후에 두개의 긴급 기자회견이 예고되었다. 하나는 문재인 대표가 혁신안 통과와 ‘재신임’을 연계하는 배수진을 친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또다른 기자회견을 예고한 정세균 전 대표는 회견을 취소하고 배포한 성명서에서 “이 시각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모든 구성원은 어떠한 갈등과 분열의 언행도 중지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 문재인 대표 등 지도부가 야권 전체의 단결과 통합, 혁신의 대전환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대결단’을 해줄 것을 호소합니다. 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나 절박하고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는데 언론은 ‘살신성인의 대결단’을 문재인 대표의 ‘2선 후퇴’로 해석했다. 범친노의 수장이자 문 대표의 든든한 우군으로 알려졌던 정세균 전 대표의 문재인 후퇴 요구는 뜻밖이었다. 정세균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함으로써 비주류만 문 대표 퇴진을 거론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문재인 대표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비주류만이 아니라 주류 일부도 동조하는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었다. 승부수가 필요했다. 혁신안이 당 중앙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재신임 투표에서 불신임받는다면 대표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혁신이냐 기득권이냐, 단결이냐 분열이냐. 당내 민주주의는 물론 ‘기강’조차 위협받고 있습니다. … 당이 이처럼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에서 이제 저는 당대표직을 걸고 첫째 혁신, 둘째 단결, 셋째 ‘기강’과 원칙의 당 문화를 바로 세우려 합니다. 혁신안과 함께 저에 대한 재신임을 당원과 국민들께 묻겠습니다. …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이 최상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위로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혁신안은 최종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시작입니다. 나머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모자라는 것은 혁신위에 기대지 말고 우리가 채워야 합니다. 당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혁신을 위한 어떤 분의 어떤 제안도 당에 도움 되는 것이면 모두 수용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기득권 때문에 혁신이 좌절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만약 혁신안이 끝까지 통과되지 못한다면 저는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 최근 당 안에서 공공연히 당을 흔들고 당을 깨려는 시도가 금도를 넘었습니다. … 개인의 정치적 입지나 계산 때문에, 또는 계파의 이해관계 때문에 끊임없이 탈당과 분당, 신당 이야기를 하면서 당을 흔드는 것은 심각한 해당 행위입니다. … 이런 상황을 더 방치하면 당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인내와 포용도 최소한의 ‘기강’이 전제될 때 단결의 원천이 됩니다. 당을 지키고 ‘기강’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이 시점에 저는 대표직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합니다. … 당을 더 혁신하고 ‘기강’을 더욱 분명히 세우겠습니다. … 혁신안이 부결되거나 제가 재신임을 받지 못하는 어떤 경우에도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더 늦기 전에 우리 당이 총선 승리를 위해 다른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신 혁신안이 가결되고 제가 재신임받는다면 혁신위나 제 거취를 둘러싼 논란을 끝냅시다.”
문재인 대표가 ‘기강’이라는 단어를 다섯번이나 쓴 데서 그의 분노가 읽힌다. 4·29 재보선 패배 이후 책임론에 시달리던 5월14일에 발표하려다가 최고위원들의 만류로 막힌 미발표 공개(?) 문건인 ‘당원에게 드리는 글’에서 드러났던 ‘감정’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러나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나온 치명적 실수로 보인다. 안철수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병호 의원은 “혁신안이 부결되면 원래 그만두기로 돼 있던 것 아닌가”라며 “혁신안 통과에 힘을 실어 달라는 정치적 제스처로 보인다”고 평가 절하했고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의 최원식 의원은 “(혁신안에 대해) 최고위, 당무위에서 의견이 분분했는데도 이 부분을 정리하지도 않고 갑자기 ‘이거 안 하면 나가겠다’고 하니 황당하다. 이런 방식은 반대파를 협박하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주승용 최고위원도 “이 문제는 지도부와 협의해 이뤄졌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에 대해 아쉽다”고 했다.
안철수 전 대표와 가까운 송호창 의원도 “문 대표의 오늘 발언은 중앙위원회에서 혁신안에 대해 일체의 이견을 말하면 해당행위라는 것이다. 당원들은 혁신안에 대해 의견을 낼 권리가 있고 문제점을 수정해 더 좋은 혁신안을 만들 책임이 있다. …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라거나 혁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불신임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야말로 바로 우리가 버려야 할 태도다. … 혁신안은 성경 말씀이 아니다. 당에 대한 당원들의 걱정과 우려를 모두 기득권이라고 단정하는 태도가 더 문제”라고 비판했다.
혁신은 실패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문재인 대표도 ‘혁신을 위한 어떤 제안도 당에 도움 되는 것이면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했는데 ‘비판적 의견’은 도움 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혁신안에 대한 비판을 못 견디는 것일까. 문재인 대표와 혁신안을 두고 강하게 대립하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도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재신임 요청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 당 전체 문제를 개인의 거취 문제로 축소해 해석했다. 근본적으로 ‘공천 혁신안’이 본질이 아닌데, 사소한 ‘안’ 통과에 집착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 문 대표가 너무 작은 것을 갖고 사퇴를 거론했다. 문 대표가 혁신안 통과에 집착하는데 과연 혁신안이 중앙위원회에서 의결되면 내년 총선 승리 전망이 나아지는지,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부터 말해야 한다. … 신임만 묻고 이대로 가면 당이 변하는 것도 없고, 총선 전망도 힘들어진다”고 비판했다. 안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표의 문제 인식이 나와 다르다”며 “많은 국민이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100석 이하로 전망한다. 문재인 대표는 이대로 가도 총선과 대선에서 이긴다고 하는데 나는 이대로 가면 총선, 대선에서 진다고 본다”며 문 대표와 선명하게 각을 세웠다.
실제로 문 대표는 “당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분당은 없다”거나 “높은 지지 속에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는 안이한 현실 인식을 수시로 드러냈다. 솔직히 말해 안철수 전 대표가 “혁신은 실패했다”고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다면 국민 대부분이 혁신위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혁신은 실패했다. 적어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의 관심도 끌지 못했고, 당원의 공감도 얻지 못했다. 안철수 의원의 혁신위 비판에 대해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무례하고 무책임하다”고 했는데 그런 태도야말로 ‘예의가 없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은 “당을 책임졌던 사람들이 혁신의 반대편에서 자신의 기득권, 자신의 정치를 위해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며 혁신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기득권’으로 몰아붙였다. 그런 행태야말로 안철수 의원이 지적한 대로 ‘낡은 진보’다. 나만 혁신이고 상대는 기득권이라는 태도로는 혁신을 성공시킬 수 없다.
“그렇게 책임지지 않는 사람, 국민과 당원이 아닌 계파와 기득권을 위했던 사람들이 지도부에 있었기에 우리 당이 지금 혁신의 수술대 위에 있는 것”이라며 김한길·안철수 두 전직 대표를 비판했는데 당의 위기에 전직 대표들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옳은 얘기다. 책임지고 그만두었다고 해서 모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비판은 참으로 무책임하고 나쁜 태도다. 박근혜 정권과 이명박 정권이 걸핏하면 자기들의 실정을 노무현 정권 탓으로 돌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4·29 재보선 패배로 발생한 당의 위기는 문재인 대표의 책임이 가장 크다. 혁신위는 당의 정체성을 해치기 때문에 ‘오픈프라이머리’를 반대한다고 해 놓고는 ‘100% 국민 공천’을 대안으로 제시해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또 전자개표를 믿지 못하겠으니 ‘수개표’로 하자는 혁신안을 내놓더니 ‘해킹’의 위험이 있는 스마트폰을 공천에 적극 활용하자는 것도 도무지 모를 일이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한명숙 의원 옹호에 대해 이동학 혁신위원이 비판을 했다가 사과했는데 그 순간 새정치민주연합도 죽고, 혁신위고 죽고, 자신도 죽은 것이다. 부패와 비리에 대한 불감증과 온정주의가 분명히 당을 망치고 있다.
이제 혁신안은 혁신위의 손을 떠났다. 혁신위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정치인들의 몫이다. ‘권력 투쟁’을 해도 정치인들이 할 일이다. 문재인 대표도 혁신안에 대한 당내의 활발한 토론과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오픈프라이머리’와 ‘선거 제도’ 방안도 전면적으로 테이블에 올려 당론을 정하고 여당과 빨리 협상해야 한다. 공천 혁신안이 길을 잃은 것은 처음부터 누구누구를 ‘잘라내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럴 힘이 없다. 문재인 대표는 재신임을 받으면 당의 ‘기강’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지만 재신임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더 큰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디엠제트(DMZ)에서 포격전이 벌어지고 준전시상태에서 전시상태로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가면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전쟁’이거나 ‘극적 합의’다.
혁신안 통과와 재신임 연계
배수진 친 문재인의 기자회견문
‘기강’이란 말 5번 쓰며 분노 표출
감정 드러내는 것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나온 치명적 실수
극적 합의 이끌어내기 위한
‘고위급’ 회담이 필요한 시간
문재인과 안철수에 천정배까지
손잡고 총선 치르지 않으면
혁신도 없고 총선 승리도 없다
분당인가 극적 합의인가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면 ‘천정배 신당’이나 ‘분당’은 피할 수 없다. 그러면 총선은 참패다. 반대로 문재인 대표가 불신임을 받거나 아니면 재신임을 받은 후 당이 혼란에 빠져 최고위원들이 총사퇴로 문재인 대표 체제를 붕괴시켜도 총선은 참패다. 냉정히 말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싸워보려면 문재인 지지층, 안철수 지지층, 그리고 호남 유권자 중 하나라도 떨어져 나가면 안 된다. 결국 문재인과 안철수, 거기다가 천정배까지 전면적으로 손을 잡고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호남 정치도 혁신할 수 있고 정권교체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아무리 감정적으로는 적대감이 있어도 전쟁(분당)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극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위급’ 지도자들의 대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문재인, 안철수, 천정배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의지에 대해 ‘선출된’ 대표에 대한 예의로 재신임 절차 없이 재신임하는 것으로 빨리 화답하는 것이 좋다. 그런 후에 문재인 대표는 열린 마음으로 안철수 전 대표와 만나 ‘이기는 정당, 이기는 혁신’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