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박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한 것은 대일 정책에서 공동 보조를 맞추고 있는 데 대한 예우 차원이고 북한이 최근 친중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한 데 대한 대북한 경고의 포석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전승행사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최대 피해국인 한국을 배려하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둔 시점이기에 한국 내 친중국 정서를 확산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시용 외교를 놓고 중국의 대한 정책이 변화한 증거라는 식의 장밋빛 해석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떤 행동에도 반대”하고 “한민족에 의한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6자 회담 재개와 한-중-일 정상회의 서울 개최는 이러한 기본 입장을 구체화하자는 차원에서 이번에 합의된 것이다.
우리가 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진정한 외교 파트너가 되려면, 우리 외교가 그러한 능력을 지녀야 하고 외교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팽창하는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일본 동맹과 슈퍼파워로서의 부상을 평화롭게 진행하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양쪽 모두 절실히 우리 외교자원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일본은 어차피 미국과의 동맹 축에 속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름을 주기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미·일과 중국 간 대립 국면에서 우리가 끊임없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말이다. 그러려면 지금 하듯이 단순히 남의 러브콜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이를 정치적으로 홍보하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국제관계에서 끊임없이 어젠다를 창출해내고 지역안보와 경제협력의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제시하는 일부터 진행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에서 각종 분쟁의 해결 방안은 물론, 미국과 중국 간 충돌 가능성의 헤징(hedging)과 세력균형(balancing)을 유도하기 위한 건설적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은 신뢰 에너지를 끊임없이 분출하는, 지정학적으로는 작지만 글로벌 차원에서는 위대한 사고 네트워크의 허브가 돼야 한다. 작은 도시국가이지만 아세안의 브레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남아시아 세력균형 외교를 주도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 정부조직은 물론 싱크탱크들이 과연 국제 수준에 비추어 이러한 능력과 업무환경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싱크탱크 기관에서 학교로 직장을 옮기는 연구원들은 끊이지 않는데, 반대로 이동하는 인력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관변 연구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이 시행된 뒤로는 특히 그렇다. 정부의 일상 업무들을 보좌하거나 홍보하는 수준에서 싱크탱크들이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싱크탱크 기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구조조정해 그 산출물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국제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후속세대가 연구자원으로 자라는 토양에서 글로벌 중재자가 나온다. 택시운전사와 가게 점원까지 외국인을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어야, 세계 우수인력들이 상주하며 아이디어를 쏟아내게 된다.
구한말 강대국 간 세력균형 유지에 실패하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세력균형 외교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또다시 도래했다. 다른 점은 그때는 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로 세력균형을 유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인간이 보유한 위대한 소프트파워인 창조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도 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외교의 미래는 아시아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지와 그러한 능력을 명실공히 갖추는 일에 달렸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왜냐면] 한국 외교, 아시아의 싱크탱크 구실에 달렸다 / 최원목
등록 :2015-09-10 19:00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러시아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중앙에 자리한 것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한국 외교의 쾌거이고 한-중 밀월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중 협력 채널을 가동하겠다는 정책 구상까지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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