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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국, 미국, EU/ 로버트 스키델스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9. 12. 14:52

경제경제일반

“세계화에서 지역화로…‘신실크로드’ 한국 대응 중요”

등록 :2015-09-09 21:53수정 :2015-09-10 16:35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명예교수, 상원의원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명예교수, 상원의원
아시아 미래포럼 기조 연설
로버트 스키델스키 교수 인터뷰
세계 경제는 2008년 선진국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위기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이 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금융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 ‘새로운 균형’에 이를 수 있는 혜안과 통찰이 절실한 이유다. 만약 거시경제학의 창시사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살아있다면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케인스 연구로 세계적인 석학 반열에 오른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명예교수를 지난달 21일 영국 남동부 작은 해안마을 시퍼드의 자택에서 만났다. 스키델스키는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다음달 28~29일 열리는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에 기조연사로 참석한다.

-지난 6월부터 ‘중국발’ 위기 징후로 세계 경제가 또다시 크게 위축되는 모양새다.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로 말이 많지만, 어쨌든 중국에 의해 세계가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 위험이 일깨워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계화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에겐 ‘위싱턴 컨센서스’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세계 각국에 대한 일종의 세계화 지침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엔 국제기구들은 있지만 단일정부가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은 시장을 통해 이뤄졌다. 공산권이 몰락하기 전까지 이 모델은 꽤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도 유효한가? 중국은 여기에 어떻게 들어맞는가? 중국은 새로 부상하는 거인이고, 다른 잠재적 거인들도 존재한다. 이제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를 모색중이다.”

기존 방식 세계화에 대한 반성 필요
중국, 노동비용 상승 따라
내륙으로 생산기지 옮겨
이 과정서 엄청난 에너지 수요
석유수출로 경제 유지하는
러시아와 이해관계 맞아떨어져
중국 ‘새 실크로드’ 한국 대응 중요

-세계화가 끝났다는 말인가?

“어쩌면 우리는 기존 방식의 세계화를 버리고 좀더 지역 기반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화를 정의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지역이란 얼마든 중첩될 수 있어서 한 나라가 다양한 지역에 속할 수가 있다. 예컨대 중국은 하나의 지역으로서의 유라시아에 속할 수 있지만,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에도 속한다. 한 나라의 활동이 특정 지역에 한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세계화도 아니다. 지역 통합의 움직임들이 있지만, 그것이 단일한 세계를 향해 선형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향하는 복수의 실크로드다. 그중 하나는 분명 동아시아를 향하고 있는데, 한국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매우 중대한 문제다.”

-중국의 실크로드 정책을 언급했다. 한편으로 이것은 매우 야심찬 기획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중국 경제는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이것은 세계 경제의 회복을 위협할 정도다. 중국의 성장은 멈췄는가? 수출보다는 내수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진단도 많은데?

“이제껏 중국은 값싼 제조업 상품을 선진국에 수출하는 식으로 성장해 왔다. 이러한 성장모델은 이제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상품을 사주는 선진 경제권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에 따라 보호무역주의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수를 더 키워 경제성장을 좀더 안정적으로 끌고가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고, 중국 관리들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국 내에서는 정치적 위험 부담이 따를 수 있다.”

-중국의 지도부로서는 경제구조 자체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도 성장 동력을 회복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인가?

“노동비용의 상승에 따른 중국 내 생산기지 이전(동부연안에서 내륙으로)은 이미 상당히 진척됐다. 앞으로는 이런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신실크로드를 따라 벌어질 것인데,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투자 그 자체가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석유 수출로 사실상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덤으로 개방화 이후 산업화에 실패한 러시아는, 중국 내륙 및 유라시아 개발 과정에서 산업 발전의 좋은 자극을 기대할 수도 있다.”

스키델스키 교수는 지난 6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쓴 한 칼럼에서 이러한 중국과 러시아가 ‘의기투합’한 배후에 서구, 특히 미국의 잘못된 판단이 있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즉 미국은 자국의 커진 경제적 영향력을 반영해 국제통화기금(IMF)을 개혁해야 한다는 중국의 요구를 묵살하고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관계개선을 가로막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두 나라가 공동이익을 추구하도록 독려했다는 것이다.

EU는 단일통화 시도로 약화
유로존, 초국적 상시협의 필요
그리스 같은 나라에 돈 꿔줄
중앙은행·재무당국 없인 위태

-중국과 함께 현재 세계 경제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 유럽이다. 현재 유럽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정치적 기획으로 탄생한 유럽연합이 단일통화까지 만들겠다고 섣부르게 시도를 했다가 낭패를 본 꼴이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포식자인 독일은 경쟁력이 엄청나게 커졌지만 적자국 국민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책임은 방기하고 있다.”

-경제적 통합의 실패가 정치적 통합까지 망치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애초 단일통화는 독일을 포함한 몇몇 나라들끼리 작게 시작하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들은 능력이 될 때 서서히 가입해도 좋았을 것이다. 사실 유럽연합은 유로존 없이도 서서히 진화할 수 있지만, 유로존과 같은 경제적 단위는 초국적 차원의 협의가 상시적으로 필요하다. 요컨대 현재 유로존 위기는 경제통합에 걸맞은 정치적 발전의 시급함을 경고한 셈이다. 적절한 정책파급 메커니즘을 가동시킬 수 있는 재정당국이 없이는, 그리스와 같은 채무국에까지 늘 열려 있는 최종 대부자 노릇을 할 중앙은행 없이는, 유로존의 미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현재 그리스가 겪고 있는 고통이 그리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로존 때문에 야기되었다는 것처럼 들린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리스의 경제 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를 청산(liquidating)함으로써 개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구조조정과 함께 적정한 성장도 있어야 한다.”

-영국 보수당은 유럽연합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최근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번 그리스 사태가 영국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 같다.

“물론이다. 유럽연합의 인기는 떨어지는 반면에 영국 경제는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내 생각에 영국은 전보다 더 반(反)유럽적으로 변하고 있고, 그 결과 영국독립당(UKIP) 같은 극우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세계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70년간 세계를 이끌었던 미국의 힘은 최근 급속도로 약화하고 있다. 지난 200여년간 인류문명의 상징과도 같았던 유럽은 그리스 위기를 통해 경제적으로,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이주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정책으로 말미암아 정치적·문화적으로도 흉한 민낯을 보이고 있다. 반면 새로운 기운이 중국을 중심으로 뻗어나오고 있으나, 거기에 우리 미래를 걸 만큼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케인스도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1930)을 썼을 때 현재의 우리가 보는 것만큼이나 어둡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영국은 높은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러나 제목이 시사하듯 이 짤막한 에세이에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인류는 자신에게 닥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진보하는 나라들에서 백년 뒤 생활수준은 지금의 4~8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케인스의 가장 충실한 후계자로 스키델스키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케인스가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후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음을 상기시키면서도, 그 희망을 현재화함으로써 케인스를 넘어서고자 한다.

기계·로봇이 인간 대체해서
보통사람 임금노동 비중 줄어
한국 청년실업 문제도 마찬가지
줄어든 임금만큼
정부가 생활소득 보장해야

-케인스가 <일반이론>을 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당시 유례없는 수준의 고실업이었다고 한다. 고용은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한국의 경우에도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중인데?

“현재 실업률 증가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바로 기술 진보 때문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기계화와 자동화의 진전으로 향후 20년 사이에 현재의 일자리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소비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중요한 질문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것이다. 케인스는 물질 생활이 풍요로워짐에 따라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 보았으나 이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당신은 기계화를 강조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난 수십년간 일자리가 점차 단순화하고 비정규직화 하는 경향도 진행됐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맞다. 그 둘은 똑같은 과정의 두 측면이다.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기계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함에 따라 보통사람들의 삶에서 임금노동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 자유의 증진일까? 대답은 우리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줄어든 일자리를 많은 이들이 나누게 한 다음 줄어든 임금만큼을 정부가 보조해 모두에게 일정한 ‘생활소득’(living income)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임금, 특히 최저임금을 높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분명 최저임금 인상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낮추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에서 임금의 비중을 더 높인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덜 일하고 덜 소비하면서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게 정부는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스키델스키 교수는 철학자인 자신의 아들과 함께 펴낸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책에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견고한 생각을 벼려내지 못한다면 인류는 또다시 자신의 ‘인간적 가능성’을 탕진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는 10월28~29일 열리는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은 그가 생각하는 ‘인간적 가능성’을 통해 어떻게 세계가 새로운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를 들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시퍼드(영국)/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스키델스키 교수는 거시경제학 창시자 케인스 잇는 영국 경제사학자이자 상원 의원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대 명예교수는 영국을 대표하는 경제사학자이면서 정치경제 전문가다.

1939년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옥스퍼드 지저스 칼리지에서 학업을 마친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거쳐 1978년부터 영국 워릭대에서 국제관계학·정치경제학 담당 교수를 지냈다. 1983년 <배반된 희망>을 시작으로 1992년 <구원자로서의 경제학자>, 2000년 <영국을 위한 투쟁>에 이르기까지 세 권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전기를 내면서 세계적인 케인스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케인스 전기 말고도 <정치인과 불황>, <영국의 진보학파>, <공산주의 이후의 세계>,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등의 유명 저작을 냈다.

현실 정치에도 적극 참여해 1981년 영국 사회민주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1991년에는 종신귀족 상원의원으로 서품됐다. 사민당이 해체(1992년)된 뒤에는 보수당에 들어가 문화위원회와 재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코소보 폭격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 2001년에 보수당에서 제명돼 지금까지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남아 있다. 신경제사고연구소(INET) 등 국제적인 민간 싱크탱크와 단체에서 활동 중이며, 미국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영국 <가디언>과 <인디펜던트> 등 세계적 유력 신문사에 경제 현안과 세계화 문제 등을 다루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