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대학에 가서 돈가스를 처음 먹어봤다. 1988년 봄에 한 미팅 때 서울 신촌의 한 여대 앞 돈가스집에서였다. 미팅 상대의 이름과 생김새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먹음직스럽던 돈가스의 모습은 또렷이 기억한다. 생일 때나 먹을 수 있는 짜장면과 탕수육이 외식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끔찍한 식중독에 시달렸다. 나는 음식의 재료나 조리 과정을 의심하기보다 1925년 서양의 돼지고기 요리인 포크커틀릿을 일본식으로 바꾼 돈가스 하나 처리 못하는 내 소화기관의 무력함을 탓했다. ‘돈가스의 저주’ 탓인지 미팅의 결과도 좋지 않았다.
졸업 후 취직을 해서 돈가스보다 고급스러운 소고기 요리를 접하게 됐다. 나는 독특한 맛의 소혀와 대창구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30대 후반에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용종이 발견됐다. 40대 후반에 이미 암으로 대장을 모두 절제한 선배의 거듭된 충고를 따른 덕분이었다. 심지어 떼어낸 용종은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악성이었다. 병원에서는 용종의 원인을 육식과 유전이라고 말했지만 친가나 외가 쪽에 대장암을 앓은 사람은 없었다.
그제야 대학 시절 돈가스를 못 먹은 게 단순히 촌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재료인 고기와 이를 튀긴 기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어쩌면 그때 돈가스가 생고기가 아니라 가공육에 화학첨가제를 뿌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커피맛 음료가 진짜 커피보다 향기롭듯이 가공육은 첨가제 덕분에 고기보다도 먹음직스럽다. 그 뒤 나는 서서히 고기를 멀리하게 됐고 결국 고기 가운데 생선 정도를 먹는 페스코 채식을 하게 됐다.
물론 고기가 건강에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질 좋은 단백질 섭취원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도 다람쥐 같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의 고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집착은 생명을 무슨 농축원료 공급원쯤으로 여기는 착시로 이어진다.
현대식 도축 시스템의 비윤리성을 폭로한 제러미 리프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육식의 종말>을 보면, 미국 소의 95%에 몸집을 키우기 위해 각종 성장호르몬을 투약한다. 미국 사용 제초제의 80%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는 옥수수와 콩에 뿌려진다. 사육단가를 낮추기 위해 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키우다 보니 병을 막기 위해 항생제와 살충제도 뿌려진다. 전미과학아카데미 연구위원회(NRC)의 자료를 보면, 쇠고기는 전체 식품 가운데 항생제와 살충제 오염으로 소비자들의 암을 유발하는 원인의 11%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도 ‘육식의 습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조사 결과, 2012년 우리나라 사람의 대장암 발생률은 185개국 가운데 3위였고 아시아 나라 가운데 가장 높았다. 고기 중심의 식단이 주요 원인이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육류 공급량은 1980년 13.9㎏에서 2013년 49.2㎏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유방암 환자도 15년 동안 4배나 늘어났으며 이런 증가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고기=힘’이라는 통념이 아직도 강하다. 잦은 회식의 메뉴도 주로 삼겹살이다. 하지만 잘 구워진 고기는 이두박근을 키우기는커녕 혈관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 1977년 미국 상원의 국가영양문제특별위원회는 미국인의 높은 심장병과 암 사망률의 원인으로 고기 중심 식생활을 지적했다. 이 위원회는 그 대안으로 통곡물, 야채, 어패류를 주식으로 하는 일본 에도시대의 식단을 제시했다. 바로 피시 베지테리언으로 불리는 페스코 채식이다.
권은중 라이프에디터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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