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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두운 중국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2. 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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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등잔 밑이 어두운 중국 / 성연철

등록 :2015-12-03 18:56

 

이쯤 되면 중국-대만, 중국-홍콩 관계는 지난해 홍콩 우산시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도 무리가 없을 것같다. 우산시위는 지난해 9월부터 두 달여 동안 홍콩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 시위다. 시민들은 2017년 치러지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 완전 자유직선제를 요구했다. 시위는 중국 중앙정부의 묵살 끝에 막을 내렸다.

그런데 지난 1년의 홍콩, 대만 정치 지형을 살피면 우산시위는 실패한 운동이 아니었다. 제도적으로 얻은 것은 없었지만 민심 속에 스며들었다. 시위 뒤 홍콩과 대만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친중 정치세력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지난달 22일 치러진 홍콩 구의회 선거(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우산시위에 참가했던 후보자 8명이 당선됐다. ‘우산병(兵)’으로 불린 시위 참가자들은 50명에 이르는 후보를 내 정치세력을 만들었다.

친중 세력인 민건련(민주건항협진연맹)파는 431석 가운데 119석을 얻어 여전히 다수 의석을 점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은 4년 전 선거 때보다 민주파 세력에게 10석가량을 더 내줬다. 투표율도 47%에 이르러 지난번보다 6%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우산시위 이후 중국에 비판적인 젊은층들의 정치 참여와 관심도가 높아지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친중 기득권 중장년층도 ‘맞투표’에 나서면서 구의회 선거 최고 투표율을 경신했다. 우산시위는 정치 무기력증이 팽배했던 홍콩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중국도 적잖은 당혹감을 느낀 게 틀림없다. 선거 이틀 뒤 나온 관영신문 <환구시보> 사설은 이를 방증한다. 사설은 “우산시위 뒤에도 홍콩의 정치적 지형은 변화가 없다”면서도 “젊은이들이 다수 투표에 참여하고 8명의 ‘우산병’들이 당선된 점은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요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축구장에서 벌어진 중국에 대한 야유가 정치권으로 범람해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우산시위 당시 젊은이들을 ‘반중 외부 세력에 조종됐다’고 폄훼했던 것과 견주면 이례적인 논조 변화다.

다수의 홍콩 시민들은 선거 나흘 전 중국팀과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홍콩팀이 전력 차를 극복하고 무승부를 기록하자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양 환호하며 중국을 향한 반감을 드러냈다. 한 서방 언론은 최근 “중국 당국이 우산시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해킹하고 있다. 그만큼 홍콩 민심 이탈에 우려감이 큰 것 같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대만 관계도 다르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7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국민당 출신의 마잉주 총통과 정상회담을 했다. 대중 관계의 중요성을 부각해 내년 1월 예정인 대만 총통 선거와 입법원 선거에서 고전하는 국민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였다. 중국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을 껄끄러워한다. 하지만 정상회담 뒤 나온 대만의 여론조사들은 ‘약발’이 먹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주리룬 국민당 총통 후보는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에 20%포인트 이상 뒤진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더 올랐다. 우산시위 직후인 지난해 11월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도 친중 성향의 국민당은 민진당에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우산시위가 끝난 지 1년여가 지났다. 민심은 중국 공산당의 불통과 권위주의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 정부는 홍콩과 대만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절대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력만으로 민심을 살 수 없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저돌적인 남중국해 정책으로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과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중국이다. 힘과 돈만을 앞세운 중국의 ‘덩치 외교’가 이어진다면 등잔 밑은 점점 어두워질 것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