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고창/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 21. 22:11

esc

작은 점들의 거대한 용틀임이여

등록 :2016-01-20 20:19수정 :2016-01-21 16:25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해질녘 노을을 배경으로 가창오리 떼가 화려한 군무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해질녘 노을을 배경으로 가창오리 떼가 화려한 군무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 가창오리떼의 화려한 떼춤 보러 떠나는 탐조여행
본격 겨울 추위가 이어져 선뜻 주말여행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때다. 겨울여행을 여행답게 해주는 게 눈경치지만, 이번 겨울은 눈마저 뜸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아직 눈부신 설경을 보기는 어렵다. 세상이 온통 춥고 황량해 보이는 이때, 눈에 확 뜨이는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바로 겨울철새 도래지다. 수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고 기며 저마다 멋진 자태를 뽐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환상적인 건 아마 가창오리들의 군무가 아닐까 싶다. 이맘때 군산·서천 금강호(금강 하구)나 고창 동림저수지를 찾는다면, 수만~수십만마리의 가창오리들이 펼쳐 보이는 떼춤을 거의 매일 저녁 감상할 수 있다. 지난주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가창오리 떼의 화려한 춤을 만나고 왔다.

가창오리 떼의 비상을 기다리는 사진가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가창오리 떼의 비상을 기다리는 사진가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전세계 가창오리 95% 우리나라서 월동

아는 만큼 보이는 건 철새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철새 공부 먼저.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겨울철새 도래지 중 하나다. 해마다 200종 안팎의 겨울철새 100여만마리가 시베리아 등지에서 찾아와 겨울을 나고 돌아간다. 환경부의 ‘2014년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를 보면, 전국 195곳의 습지 등 철새도래지에서 209종 127만마리의 철새가 관찰됐다. 개체가 가장 많은 것이 가창오리로 36만여마리에 이른다. 다음은 청둥오리 15만여마리, 큰기러기 7만여마리, 흰뺨검둥오리 6만여마리, 물닭 1만7천여마리 차례였다.

가창오리는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몸길이 40㎝가량의 무리지어 생활하는 소형 조류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겨울철새다. 2010년까지 70만마리 안팎이 확인됐으나, 지금은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서는 가창오리를 ‘레드 리스트’에 올리고, 멸종위기 단계 중 ‘취약종’으로 분류해 보호하고 있다. 우리 환경부는 가창오리를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다가, 개체수가 많다는 이유로 해제했다고 한다.

가창오리 떼가 뱀처럼 길게 굽이치는 모습.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가창오리 떼가 뱀처럼 길게 굽이치는 모습.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가창오리 등 철새 생태에 밝은, 군산시청 철새생태관리과 한성우 학예연구사는 “전세계 가창오리의 95%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며 “중국·일본에서도 월동하지만 수백·수천마리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겨울철 수만~수십만마리의 가창오리 군무를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인 셈이다.

가창오리의 국내 이동경로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중국을 거쳐 날아와 우리나라 금강 하구, 고창 동림저수지, 해남 영암호·고천암호 등을 무리지어 오가며 겨울을 난 뒤, 3월을 전후해 당진 삽교호를 거쳐 다시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대표하는 겨울철새
수만~수십만마리 환상적 군무
2월까지 매일 저녁 볼 수 있어
군산·서천 금강호에서도 감상 가능

세계적인 가창오리 안식처 동림저수지

고창군 성내면과 흥덕면에 걸쳐 있는 동림저수지(흥덕저수지)는 일제강점기(1914년)에 만들어졌다. 금강호와 함께 대표적인 가창오리 월동지다. 전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고창군 중에서도 핵심지역 중 한곳이다. 가창오리뿐 아니라 고니·쇠기러기·흰뺨검둥오리 등 다양한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이맘때 해질 무렵 동림저수지 제방 주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 사진기·삼각대를 든 사진가와 탐조 인파, 이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다. 길이 900여m의 제방 동쪽 부분과 저수지의 동쪽 논가에 특히 많은 사람이 몰린다. 해가 진 뒤에도 밝은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가창오리 군무를 사진 찍기 위해서다.

해가 지고 서쪽 하늘의 노을과 빛도 사그라들 무렵,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일부 가창오리들이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진가들은 바라보기만 할 뿐 셔터에 손을 대지 않는다. 한두 차례 낮게 떼지어 날아올라 좌우로 이동하며 ‘몸을 푼 뒤’ 본격적인 비상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와, 일어난다.” 새카만 점들의 움직임이 점점 커지며, 뭉쳐진 점들이 짙어지고 옅어지길 반복하자, 셔터 소리와 함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10만마리는 넘겠다.”

새카맣게 날아오른 가창오리 떼는 이리저리 몇차례 방향을 바꿔 몰려다니면서 환상적인 군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던져진 거대한 그물 형상이기도 하고, 허공에서 서로 몸을 부딪치며 다투는 용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10만여마리의 가창오리 떼는 긴 띠를 이루며 하늘 한쪽을 가리는가 싶더니, 다시 거세게 방향을 틀어 둘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며 솟아오르기를 되풀이하다, 제방 서쪽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본격적인 군무가 시작되고 사라지기까지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먼 거리에서나마 군무를 제대로 마주한 사람들의 입에선 연신 탄성이 터져나왔다.

가창오리 군무는 동림저수지와 군산·서천 금강호에서 2월까지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 11월께 우리나라에 날아와 해남 일대에 머물다 1월 중순 무렵부터 동림저수지나 금강호로 올라온다. 한성우 학예연구사는 “올해는 시베리아 기온이 높았기 때문인지 한달 이상 늦은 12월 중순에 날아와 해남에 머물다, 예년보다 보름 일찍 동림저수지·금강호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20여만마리의 가창오리가 당분간 금강호와 동림저수지를 오가며 겨울을 날 것으로 내다봤다.

겨울철 동림저수지를 찾으면 제방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터줏대감이 한분 있다. ‘오리 할아버지’로 통하는, 신성리 관동마을 토박이 이재안(80)씨다. 겨울이면 매일 저수지 제방에 나와 쓰레기도 치우고 가창오리도 체크한다. 사진가들은 물론, 일부 조류학자도 저수지 방문 전 이씨를 통해 가창오리 도래 여부를 확인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창오리를 봐왔다는 이씨는 “옛날엔 한겨울보다 북쪽으로 돌아가는 시기에 많이 보였다”며 “춘분 무렵 이 저수지에 모여 딱 사흘간 머물다 가는데 저수지를 거의 다 덮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고 말했다.

고창읍내에 자리한 고창읍성(모양성)의 북문.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고창읍내에 자리한 고창읍성(모양성)의 북문.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문화유산·선인 발자취 탐방 뒤 온천욕

고창의 대표적 볼거리는 아산면의 선운사와 고창읍내의 고창읍성(모양성), 그리고 세계유산인 고인돌 무리 등이다. 지금은 어디든 다소 썰렁한 분위기지만, 선운사 동백숲도 고창읍성 소나무숲도 그리 멀지 않은 봄을 기다리며 추위를 견디는 모습이다. 굳이 서둘러 봄빛 풍경을 보고 싶다면, 공음면의 학원관광농원을 찾으면 된다. 지난가을 파종한 보리는 찬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올라 이미 초록 융단을 이루고 있다. 현재 보리싹이 3~4㎝ 길이로 자라올랐다. 아무도 찾지 않는 드넓은 초록 들판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재 황윤석 생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조선 후기 실학자 이재 황윤석 생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저물녘 가창오리 군무 만나러 가는 길에 동림저수지 주변에서도 선인들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다. 항일독립운동가 백관수 고택(성내면 덕산리)과 조선 영·정조 때의 실학자 이재 황윤석 생가(성내면 조동리)다. 두 집 모두 초가지만 꽤 규모 있는 고택이다. 이재 생가가 더 옛맛이 살아 있다. 이재 황윤석은 문학·경제·종교·천문·지리·풍수·의학·언어 등 다방면에 능통했던 학자로, <이재난고> <자지록> <산뢰잡고> 등 3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겨울여행의 마무리 일정으로는 역시 온천만한 게 없겠다. 고창읍 석정리 웰파크시티 안에 국내 유일의 게르마늄 온천 석정온천이 있다. 온천수에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돼 면역력 증강, 신진대사 활성화,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한다. 구시포해변엔 해수찜질을 할 수 있는 해수찜월드도 있다. 신경통 등에 좋다고 알려져 중장년 여성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고창/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고창 여행 정보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정읍나들목에서 나가 22번 국도 따라 성내·흥덕 쪽으로 가다 성내중학교 앞 성내삼거리에서 좌회전, 성내면 농협 하나로마트 앞에서 우회전, 굴다리 지나 직진해 잠시 가다 ‘총각선녀보살’ 입간판 보고 좌회전해 시멘트길 따라 동림저수지 제방으로 간다.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나들목에서 나가 흥덕 거쳐 성내로 가도 된다.

먹을곳·묵을곳 고창의 대표적인 음식은 장어구이다. 고창읍내와 선운사 들머리 등에 장어구이를 내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구워서 내오는 식당들(1인분 2만~3만원)과 손님이 직접 구워 먹는 ‘셀프 장어’ 식당들(1인분 1만~2만원)로 나뉜다. 성내면 근촌로 오복식당의 갈비탕·냉면, 고창읍 고창읍성 앞 모양성순두부의 순두부·두부보쌈. 고창읍내에 동방호텔·석정힐호텔과 아리랑모텔·모양성모텔 등이 있다. 선운산도립공원 지구에도 호텔·모텔들이 많다.

여행 문의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063)560-2456, 선운산도립공원 (063)560-8687, 고창읍성 (063)560-8055, 고창시외버스터미널 (063)563-3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