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들판엔 무수한 호수들과 전나무·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림이 빼곡히 깔려 있다. 눈 덮인 침엽수림 사이로 2인승 스노모빌이 질주하고 있다. 25㎞ 스노모빌 운전체험 코스 중 한 구간이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한해 관광객 40만명이 찾는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지역 소도시 키틸레 여행
한해 관광객 40만명이 찾는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지역 소도시 키틸레 여행
온몸 깊숙이 파고드는 뼈 시린 냉기.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추위다.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북극권의 한파가 몸을 감싼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북위 67.8도,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지역의 소도시 키틸레(키틸래)에 속한 시르카 마을 ‘레비 스키리조트’ 주변에서 오로라를 기다리며, 정말 추웠다. 요즘 여행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으로 관심을 끄는 아이슬란드(북위 63~65도)보다 훨씬 북쪽이다. 여러 겹의 옷을 싸서 뭉친 ‘옷 보따리’ 안에 몸을 집어넣은 형상으로 숙소를 나선 게 30분 전이다. 레비 거리 일식당에서 순록 불고기로 저녁을 먹다가 “오로라 떴다!”는 외침에 허겁지겁 숙소로 돌아가 장비를 챙겨서 잽싸게 뛰어, 아니 뒤뚱거리며 걸어나왔던 터다. 살벌한 추위 속에 2~3시간을 견디려면 겹겹의 ‘옷 보따리’ 속에 들어가 있어야 안전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건, 어젯밤 영하 35도의 스키장 정상 눈벌판에서 오로라를 찾아 헤매면서였다. 껴입어야 산다.
윗옷 6벌에 바지만 4벌을 껴입은 뒤 상하의 일체형 두꺼운 방한복 안에 몸을 간신히 집어넣고, 양말 3켤레, 장갑 3켤레, 모자 3개로 발과 손과 머리를 감싼 다음, 2개의 워머로 목과 얼굴을 둘렀다. 하지만 불빛이 적어 오로라가 잘 보인다는 얼어붙은 호숫가에 어기적거리며 도착했을 때 이미 공포스러운 냉기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보따리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영하 40도. 오늘 아침 10시 반, 해돋이 무렵에 허스키 썰매를 타려던 계획이 취소됐던 것도 “영하 35도 이하 땐 허스키 썰매 금지” 규칙 때문이었다.
시르카의 관광 가이드는 “영하 25도 이하 때 말타기가 취소되고, 35도 이하 땐 허스키·순록 썰매도 취소된다”고 했다. 그는 “20년 전엔 영하 51도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보통 겨울 기온은 영하 20도 안팎”이라며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영하 40도 추위 속 ‘맛보기’ 오로라로 감동
자체 발열 핫팩도 여기선 별 소용이 없었다. 눈보라치는 함백산 정상에서도, 이른 새벽 주문진항에서도, 주머니·등산화 속에 따뜻한 열기를 전해주던 핫팩 아니던가. 주머니에 넣어둔 건 그래도 미지근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양말과 장갑에 붙인 핫팩은 한동안 반짝하더니 이내 싸늘히 식어갔다. 안경은 벗어야 했다. 콧김·입김이 닿는 순간 얼어붙어, 볼 수도 닦을 수도 없게 됐다. 머리가 핑 돌 정도로 매운 추위는 끊임없이 눈물을 짜냈고, 흘러나온 눈물은 콧김과 뒤섞여 모자와 머리카락과 눈썹에 상고대처럼 하얗게 엉겨붙었다. 캄캄한 밤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서 오로라를 기다리는 동안, 몸을 녹여 온기를 돌게 하는 방법은 오직 자가발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일찍이 군대에서 배운 쪼그려뛰기와 ‘일어나·앉아’를 반복하며 견뎠다.
간혹 초록빛 무리가 일렁이는 모습에 흥분해 셔터를 눌러댔지만, 카메라 작동이 점차 느려지더니, 이내 멈췄다. 추위로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배터리 2개를 번갈아 주머니에 넣어 녹여가며 갈아끼워야 했다. 일행 중엔 장갑 낀 손을 빼기 싫어 입으로 배터리를 물고 있다 혀를 다칠 뻔한 이도 있었고, 얼어붙은 셔터 릴리스 선을 펴다 부러뜨린 이도 있었다.
밥 먹다 뛰쳐나왔을 때, 잠시 초록 빛줄기를 하늘에 드리우며 탄성을 자아냈던 오로라는 추위에 얼어붙었는지, 옅은 초록 안개가 되어 북두칠성의 배경으로 깔려 있을 뿐,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2시간여 동안 대여섯 차례, 하늘 한편에서 작은 초록색 띠가 피어올라 하늘을 가로지르며 뿌옇게 번져 흩어져버린 게 전부였다. 아쉬웠지만, 사흘 밤을 허탕치다 이나마 확실한 초록빛 오로라를 본 건 다행이었다. 10단계 오로라 등급 중 3~4단계에 속하는 수준이었다.
오로라(극광·노던라이트)는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 입자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공기 입자와 부딪치며 발생하는 현상이다. 태양 흑점 활동이 활발할 때 특히 오로라 발생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라플란드 지역 원주민 사미족은 오로라를 ‘여우의 꼬리’라 부른다.
윗옷 6벌에 바지만 4벌
그 위에 두꺼운 방한복 입고도
머리 핑 돌 정도로 매서운 추위
한국 오니 영하 14도, 시원하다 해뜰 무렵 스노모빌로 눈벌판·숲길 질주 탄성 키틸레는 북극권 지역 라플란드의 관문 구실을 하는, 인구 6000여명의 소도시다. 핀란드의 대표적 스키장인 레비 스키리조트 등이 자리한 겨울 레저 도시이자, <기발한 자살여행> 등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핀란드의 대표적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라플란드 지역의 계절은 8단계(이른봄·봄·여름·늦여름·가을·이른겨울·겨울·늦겨울)로 구분되는데, 1년의 절반(11월~5월)이 겨울에 속한다. 가이드는 “사미족 말에는 녹은눈·젖은눈·마른눈 등 눈을 뜻하는 단어가 40개나 된다”고 했다. 겨울엔 짧은 낮시간을 이용해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얼음낚시·스노모빌·허스키썰매·순록썰매 등을 즐기려는 이들이, 백야가 이어지는 여름철엔 골프·래프팅·트레킹을 즐기려는 이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한해 관광객이 40만명으로, 도시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는 2500여명이 관광업종에서 일한다.
오로라 감상은 다소 실망스웠고 허스키 썰매도 취소돼 아쉬웠으나, 눈 덮인 북극권 마을의 산과 들판에서 체험한 순록썰매·스노모빌·스노슈잉 등 겨울놀이는 흥미로웠다. 순록이 끄는 썰매 타기나 설피 신고 눈길 걷기(스노슈잉)는 짧은 거리를 오가는 체험 수준이었지만, 해돋이를 감상하며 25㎞ 거리의 들판과 숲길을 누빈 스노모빌(엔진썰매) 투어는 압권이었다. 뜨는 해로 붉게 물든 설원의 지평선도, 온통 눈으로 덮인 채 굽이치는 숲길도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각국 대표 탐험대 ‘200㎞ 허스키썰매’도 도전
순록 썰매를 타기 위해 찾아갔던 키틸레 북쪽 헤타 지역에서, 라플란드의 겨울 액티비티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한국인을 만났다. 핀란드 관광청과 핀에어가 공동으로, 한국·중국·일본·독일·영국에서 1명씩 5명을 선발해, 3개월(2015년 12월5일~2016년 3월3일) 동안 라플란드 북극권의 다양한 겨울탐험을 하도록 한 ‘100일간의 폴라 나이트 매직’ 캠페인에 참가한 사진가 케이 채(37)씨다.
영하 25도의 추위도 아랑곳없이 그는 “날씨가 꽤 누그러졌다”고 말하며 곁으로 다가온 썰매견 허스키를 맨손으로 쓰다듬었다. 채씨는 “오로라 탐험, 북극 카우보이 체험, 전통 대장장이 체험, 빙벽등반, 얼음 밑 다이빙 체험 등 18개 미션 중 절반을 소화했다”며 “핀란드 전통 사우나 체험 뒤 얼음물에 뛰어들었던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유명 탐험가 파시 이코넨 대장이 이끄는 5명의 탐험대는 곧 10번째 탐험으로 ‘3박4일간 200㎞ 허스키 썰매’ 도전에 나선다고 했다. 멋진 오로라도 보았느냐고 묻자 채씨는 “뭐, 오며 가며 제대로 나타난 것만 네댓 차례”라며 대수롭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채씨는 보려고 작정하면 늘 볼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번 여행 기간 우리 일행에겐 오로라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흘 키틸레에 머물며 밤마다 추위에 떨며 하늘을 지켰건만, 마지막날 맛보기처럼 보여준 초록색 띠들이 거의 전부였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첫발을 디딘 오전, 영하 14도의 날씨는 일단 시원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 영하 40도를 견딘 몸 아닌가? 이 정도 추위쯤이야 봄날씨지, 했지만 이틀 지나자 몸이 이내 얄팍한 ‘적응 본색’을 드러냈다. 낮 기온 영하 10도에 몸은 덜덜 떨렸고, 손발은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으며, 눈물·콧물은 쉼없이 흘러나왔다. 아, 서울에서 며칠간 체험한 영하 10도는 북극권 영하 40도 버금가게 맵고도 혹독했다.
키틸레(핀란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장노출로 찍은 빛기둥(라이트 폴) 현상.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그 위에 두꺼운 방한복 입고도
머리 핑 돌 정도로 매서운 추위
한국 오니 영하 14도, 시원하다 해뜰 무렵 스노모빌로 눈벌판·숲길 질주 탄성 키틸레는 북극권 지역 라플란드의 관문 구실을 하는, 인구 6000여명의 소도시다. 핀란드의 대표적 스키장인 레비 스키리조트 등이 자리한 겨울 레저 도시이자, <기발한 자살여행> 등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핀란드의 대표적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라플란드 지역의 계절은 8단계(이른봄·봄·여름·늦여름·가을·이른겨울·겨울·늦겨울)로 구분되는데, 1년의 절반(11월~5월)이 겨울에 속한다. 가이드는 “사미족 말에는 녹은눈·젖은눈·마른눈 등 눈을 뜻하는 단어가 40개나 된다”고 했다. 겨울엔 짧은 낮시간을 이용해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얼음낚시·스노모빌·허스키썰매·순록썰매 등을 즐기려는 이들이, 백야가 이어지는 여름철엔 골프·래프팅·트레킹을 즐기려는 이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한해 관광객이 40만명으로, 도시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는 2500여명이 관광업종에서 일한다.
드넓은 설원을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달려볼 수도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핀란드 여행 마지막날 밤에,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꽤 볼만한 초록색 오로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핀란드 여행 팁
▶인천~헬싱키를 핀란드 국영 핀에어항공이 주 7회 운항한다. 매일 오전 11시15분 출발. 9시간30분~10시간 소요. 헬싱키~키틸레는 매일 2회 이상 운항. 1시간30분 소요(이발로 경유 땐 2시간5분 소요).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겨울 기준). 화폐는 유로(EUR). 통용 언어는 핀란드어지만, 대부분의 호텔·식당에서 영어가 통한다. 전압은 220V로 한국과 같다.
▶체온 보존을 위해 보온성이 좋은 방한용 외투와 여벌의 옷·장갑·모자·양말·워머·목도리·마스크 등은 물론, 다양한 발열 핫팩을 준비하는 게 좋다. 미끄러지지 않는 방한화도 필수. 카메라 배터리도 여유분을 준비하도록 한다. 오로라 탐방, 스노모빌(2인승 25㎞ 코스 1인 72유로)·허스키썰매(2인승 2㎞ 코스 1인 46유로)·순록썰매·스노슈잉(2시간30분 코스 55유로) 등 외부활동 때는 쇠붙이에 맨살이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키틸레 레비 관광단지에 호텔 10여곳, 식당·카페 50여곳이 있고 약 50개 업체에서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레비스파호텔은 가족 물놀이가 가능한 대형 실내 스파시설을 갖췄다. 레비 스키리조트는 슬로프 43개, 리프트 29대를 운용하는 핀란드 최대 스키장이다. 스키장엔 얼음집 안 얼음식탁·얼음의자에서 차를 마시고 식사할 수 있는 ‘스노 돔’도 마련돼 있다.
▶핀에어는 헬싱키 반타공항 안에서 샤워실·바·뷔페·무선인터넷시설 등을 갖춘 3곳의 라운지를 운영해 이용할 만하다. 특히 2년 전 문 연 ‘핀에어 프리미엄 라운지’는 최신식 개별 샤워룸과 핀란드 사우나 시설도 갖췄다. 프리미엄 라운지는 핀에어 플러스 플래티늄 회원 및 골드 회원과 동반인, 원월드 카드 소지 승객이 이용할 수 있다.
핀란드 북부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