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연주자 전유정이 지난 17일 저녁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1층 예술나무카페에서 열린 ‘하우스토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세계무대 유일한 한국인 연주자 전유정
10년간 러시아 유학…수상경력 화려
“강박적일 정도로 연습·공부 매진
한국에 클래식 아코디언 알리고파”
10년간 러시아 유학…수상경력 화려
“강박적일 정도로 연습·공부 매진
한국에 클래식 아코디언 알리고파”
“아코디언은 연주자의 몸에 닿는 면적이 넓은 악기예요. 그래서 몸을 더 과학적으로 사용해야 하죠.”
지난 17일 저녁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1층 예술나무카페에서 열린 ‘하우스토크’. 대담의 주인공은 세계 무대에서 ‘클래식 아코디언’ 전문연주자로 활동중인 유일한 한국인 전유정(25)이다.
그는 몸집의 절반쯤 되어 보이는 검은 아코디언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왼손으로 풀무질해 공기를 불어 넣고, 오른손으로 건반 위를 오르내렸다. 악기를 휘돌아 나오는 소리는 때로 여린 한숨 같았고, 때로 요란한 사자후 같았다.
이틀 전 열린 ‘하우스콘서트’에서 그가 불러일으킨 감흥은 더 컸다. 아코디언용으로 편곡한 스카를라티 피아노 소나타 연주는 나무피리 소리처럼 청아하고 민첩했다. 리처드 갈리아노 아코디언 협주곡은 폭발적인 힘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듣는 이를 소름 돋게 했다.
어떻게 아코디언을 시작했을까. “아버지가 취미로 요들을 부르고 기타를 치셨어요. 제가 중3 때 아버지께서 아코디언을 배우려 하셨는데 건반에 적응을 못 하셨어요. 대신 제가 배웠고 발전 속도가 빨라 금세 공연 무대에도 섰어요. 그러던 중 러시아 유학을 알선해주시는 분을 만났죠. 처음에는 ‘1년만 해외에서 살며 경험을 쌓아보자’라는 가벼운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2007년 16살에 오른 모스크바 유학길이 만만할 리 없었다. 러시아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돼 답답하고 외로웠다. 유학 알선자의 사기 행각 때문에 학교에서 입학 취소를 당하는 불운도 겪었다. 그러나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전씨는 현지 예술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이후 자신을 내쫓았던 학교의 전문 연주자 과정은 물론이고, 명문 그네신 국립음대에도 입학했다. 지난 10년간 스스로 ‘강박적’이었다고 할 만큼 공부와 연습에 중독된 채 살았다.
“이력에 ‘수석 졸업’이 붙으면 연주자로서 활동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코디언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도 악착같이 매달렸어요. 모국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이수하는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으려면 정말 치열하게 살아야 하거든요. 학비까지 직접 벌어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니 더 힘들었죠.”
고단한 노력에 대한 보상은 달콤했다. 전씨는 목표대로 그네신 국립음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재 같은 대학원 석사 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재학 중이다. 국제대회도 휩쓸었다. 2008년 이탈리아 란차노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해 국제 무대에 한국인 최초로 데뷔했으며, 같은 해 쿠레프레바 콩쿠르, 2010년 클라바 콩쿠르, 2011년 발티도네 음악 콩쿠르에서 차례로 우승했다. 전씨의 잠재력을 인정한 지도교수는 ‘아코디언의 토양이 척박한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지도자의 길을 걸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씨의 꿈은 아코디언 전문 연주자로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향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즈, 탱고, 트로트 등 대중음악으로만 아코디언을 접한 이들에게 클래식 아코디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국내에 클래식 아코디언의 정규 교육 과정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러시아에서 배운 것을 전하고 싶기도 하다.
전씨는 “육중한 악기 무게와 연주에 요구되는 강한 완력 등 아코디언은 사실 여성에게 그리 유리한 편이 아니다”라면서도 “장점으로 평가받은 해석의 섬세함을 무기로 삼겠다. 팔 힘을 기르기 위해 팔굽혀펴기도 매일 1000개씩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나 자신의 외로움을 보듬는 데에 급급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