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유럽연구센터’(이하 센터)는 이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대학,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일본의 도쿄대학, 중국의 베이징대학 등 세계의 유수 대학에 연이어 세워져 현재 11개국 21개 대학에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각국의 ‘센터’는 독일/유럽에 관한 교육, 연구, 교류의 거점 구실을 하고 있으며, 특히 대학원에 ‘독일유럽학과’를 개설하여 독일전문가, 유럽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통일, 복지, 노동, 정치, 교육,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독일 모델’이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2001년 중앙대에 세워진 ‘독일연구소’는 2013년 공모를 통해 독일학술교류처 ‘독일유럽연구센터’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중앙대가 도쿄대, 베이징대에 이어 아시아에서 3번째로 독일유럽연구의 ‘센터’로 선정된 것이다.
우리는 공모 과정에서부터 동북아에서 독일 연구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강조했다. 현재 동북아가 처해 있는 위기의 본질은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에 있는바, 일본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와 한반도의 분단 현실, 중국의 미래 패권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야만 동북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고, 독일은 동북아가 안고 있는 과거청산, 분단, 패권주의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세계 유일의 국가이기 때문에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한·중·일 3국이 공동 연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나라라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이런 인식에서 우리는 2013년 도쿄대와 베이징대 센터에 ‘동북아독일유럽학회’의 설립을 제안했고, 2015년 마침내 베이징대에서 ‘제1회 동북아 DAAD 센터 콘퍼런스’가 열렸다.
지난 몇 년 동안 베이징대, 도쿄대 교수,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중국과 일본 학자들의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이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고, 무언가 서로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독일에 대한 공동연구를 통해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상을 모색해보자는 우리의 제안에 대해서도 반응은 상이했다. 중국 측은 흔쾌히 응한 데 반해, 일본 측은 매우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학생들의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독일 오첸하우젠에서 열린 ‘유럽 아카데미’에 다녀온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 학생은 상호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고, 한국 학생이 끼어야 대화와 분위기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엔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나 호감이 없는 건 아니다. 망설이는 둘 사이를 이어주는 건 늘 한국인이다. 이렇게 한·중·일의 학문 교류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연결해주는 다리 구실을 한다.
동북아 평화에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몫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동북아 평화의 길을 앞장서 열어갈 수 있다. 한 국가의 영향력이란 반드시 국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동서 냉전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강대국 미·소가 아니라, 분단국 서독이었다. 동북아 평화의 성패도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