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출판사는 ‘역사왜곡과의 전쟁’
짓쿄출판 ‘위안부에 바치는 헌화’ 싣고
도쿄서적은 ‘정부의 수정압력’ 담아
18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내놓은 사회 교과서 검정 결과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내의 치열한 대립을 보여준다. 아베 신조 정부의 개입에 교과서의 기술이 후퇴했지만, 진보적인 교과서에선 관련 기술이 상당 부분 살아남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가장 진보적으로 역사 기술을 하는 ‘짓쿄출판’의 <일본사A>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 출판사의 공방이다. 아베 정권은 2012년 말 집권 뒤 ‘역사교과서의 자학사관’ 수정 의사를 밝히고 2014년 1월 교과서 검정기준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교과서를 집필할 땐 “정부의 각의결정(국무회의 의결)이나 최고재판소의 판결 등에 기초한 기술을 하는 것”이 의무화된다. 발표 두 달 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고노 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는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힌다. 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한 이들 담화를 교과서에서 빼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그러나 무라야마 담화 등은 직간접적으로 모두 각의결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시모무라 문부상의 ‘무리수’는 일본 출판사들에 고노 담화에 근거해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쓸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 셈이다.
짓쿄출판은 이에 따라 여섯 군데에 위안부 관련 기술을 집어넣었다. 출판사는 1993년 8월 고노 담화의 발표를 전하는 <아사히신문> 기사와 함께 “위안부에 대한 강제를 일본 정부가 인정해 사죄한 고노 담화”라는 설명을 달았다. 정부가 “학생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며 “위안부에 관한 고노 담화”라는 식으로 수정명령을 내리자, 출판사에선 이를 수용하며 그 밑에 “감언 등에 의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인 사례가 다수 있다”며 고노 담화의 일부 구절을 인용했다.
짓쿄출판은 ‘위안부들에게 바치는 헌화’라는 제목이 붙은 도미야마 다에코의 그림, 2000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왕의 책임을 추궁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주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 마쓰이 야요리(1934~2002)의 활동도 자세히 소개한다. ‘도쿄서적’은 “일본에서도 예를 들어 종군위안부나 난징대학살 등 자국에 불리한 것을 교과서에 넣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중략) 매우 유감이다”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판사에선 위안부 기술이 상당 부분 후퇴했다. ‘시미즈서원’ 등 출판사는 현행본에서 “일본군에 연행되어”라는 표현을 자체 검열을 통해 “모집된 여성”으로 바꿔버렸다. 필수과목인 <세계사A>엔 이번에 검정을 신청한 5개 출판사 모두 “여성들이 위안부로 전지에 보내졌다”는 정도의 딱 한 줄짜리 기술에 그쳤다.
그 자리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로 채워졌다. 짓쿄출판이 ‘전후 보상을 생각한다’는 심화학습 코너에서 위안부 문제 등을 다시 다루자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각국과 조약으로 해결했다. 개인 보상에는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덧붙이도록 수정명령을 내렸다. 서중석 아시아역사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기술 방식”이라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전정윤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