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포장지로 사용하려고 꾸며내는 이들이 더러 있다. ‘가짜 겸손’이다. 사회가 수만 가지 관계로 얽히고 복잡해지면서 ‘진짜 겸손’을 만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맛집 소개 칼럼에서 웬 겸손타령이냐고? ‘요리사 강민구’를 만날 때마다 ‘진짜 겸손’을 만난다. 그는 주목을 받을수록 “부담스럽다”는 말을 특유의 쑥스러워하는 표정과 손짓으로 말하곤 했다.
‘쿡방’(요리하는 방송) 세계에서 최고의 스타 요리사가 최현석이라면, 레스토랑 현장에서 최고 스타는 최근 2년 사이 가장 주목받은 강민구 셰프다. 덴마크의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마’의 요리사 레네 레제피 같은 유명 인사들이 한국 방문길에 꼭 찾는 레스토랑이 그가 운영하는 ‘밍글스’(mingles)다. 지난달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미식행사인 ‘소 프렌치 델리스’에서도 그는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상 부아예와 협업해 만찬 행사를 치렀다. 지난 2월 타이 방콕에서 발표된 ‘2016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그는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쟁쟁한 아시아의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의 셰프들과 경합해 15위에 뽑혔다. 소감을 묻는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줄곧 길을 먼저 닦은 선배 요리사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32살. 84년생이다. 음식업계 전문가들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 중에는 그의 나이도 있다. 그의 요리는 한식을 접목한 서양식이다. 프랑스 요리의 대표적인 식재료인 푸아그라(거위 간)를 된장과 황매실에 하루 동안 재운 백김치로 싼다든가, 우리네 스님들이 자주 먹는 부각에 서양식 소스를 뿌린다든가 하는 식이다. 밍글스의 대표적인 인기 메뉴는 된장에 절인 양갈비구이와 ‘장 트리오’(간장, 된장, 고추장)를 활용한 프랑스 디저트 크렘 브륄레다.
영어로 ‘섞다, 어우러지다’란 뜻인 ‘밍글’(mingle)에서 이름을 따온 밍글스는 2년 전 서울 청담동 한 건물 지하에 문을 열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강씨는 평범한 자영업자처럼 빚을 얻었다. 그는 서울의 조리학과 양대 산맥 중 하나로 꼽히는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일을 하는 등 요리경험을 넓히면서 한식의 독보적인 매력에 눈을 떴다고 한다. 스페인 등에서 연수도 한 강씨는 일식인 스시가 세계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듣는 노부 마쓰히사의 레스토랑 ‘노부’의 바하마지점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력을 가진 이다. 최근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 서울 논현동의 한 건물 1층으로 이전했다. 몇 주 전에 만난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더 이상 지하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에 신경을 안 써도 됩니다.”
좌석은 38석으로 늘었다. 바도 생겼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전통주 등을 마실 수 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지금 ‘밍글스’는 실내도 맛도 다소 어수선하다. 하지만 연인이나 특별한 분과 만찬을 하고 싶다면 이만한 곳도 없다. (강남구 논현동 94-9, 점심 4만~5만5천원/저녁 10만원부터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음식·요리 담당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