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ESC, 과학기술인들의 새로운 도전 / 윤태웅 고려대 교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7. 6. 21:43

사설.칼럼칼럼

[세상 읽기] ESC, 과학기술인들의 새로운 도전 / 윤태웅

등록 :2016-07-05 18:15수정 :2016-07-06 09:36

 

윤태웅
ESC 대표
고려대 공대 교수

지난해 11월 열여덟명의 과학기술인이 모여 1박2일 동안 ‘과학기술과 진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100여일 뒤인 올해 3월6일 이들을 대표해 저는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띄웁니다.

“시절이 참 엄혹합니다. 안녕들 하신지요?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건만, 대한민국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구 한편에선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고민하며 미래를 모색하려 하는데, 우린 상식마저 잘 통하지 않는 비상식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합니다. 과학적 합리성이 설 자리도 물론 없습니다.

제 주변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과학기술인이 적지 않습니다. 과학적 사유방식과 합리성이 세상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리라 여기는 사람들 말입니다. 하지만 조직화한 과학기술인 사회는 한가롭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문제의 일부가 되기도 하지요. (중략)

제대로 된 과학기술인 공동체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십시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과학기술인으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말입니다. 모입시다. 이제 기존의 과학기술인 단체들을 비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방식과 자유로운 문화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애를 써보십시다. 과학기술이 권력집단이나 엘리트만의 소유가 아니라 시민의 공공재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적 과학기술 활동도 추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도 동참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모임의 이름은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입니다. 영어 이름은 ‘Engineers & Scientists for Change’입니다. 약자는 한국어와 영어를 구별하지 않고 ESC라 하기로 하였습니다. … 과학기술자, 과학기술에 관해 고민하는 과학기술학자와 저술가, 과학기술 관련 교사와 문화·예술·언론인,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는 시민의 집단지성을 저는 믿습니다. … 같이 가시지요.”

이 편지를 보내고 다시 100여일이 흐른 뒤인 6월18일 ESC는 마침내 창립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릅니다. 그사이 110여명의 창립회원이 모였습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들의 네트워크인 ESC(http://www.esckorea.org)는 이렇게 사단법인으로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사유방식입니다. 권위에 맹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시민의 덕목이기도 하지요. 반증 가능성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 태도와 정량적 사고, 합리적 소통을 통해 발휘되는 집단지성…, 과학은 문화로서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꼭 필요한 토대라 여깁니다. 하지만 과학이 경제성장의 도구로만 여겨졌던 곳에서 이런 과학 문화의 토대를 쌓는 건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멀리 보며 한 걸음씩 갈 수밖에요.

과학기술의 공공성과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도 핵심 논점입니다. ESC는 시민사회와 연대할 것이며,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시민이 원하는 연구과제를 시민이 직접 지원하는 시스템도 구현해보려 합니다. 올해엔 특히 청년 과학기술인의 인권과 연구환경 개선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ESC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합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다들 조금씩 다릅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과학기술인들 사이의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이 우리의 힘입니다. 날카로운 논리 대결을 부드러운 언어로 펼치며 숙의하고 합의하는 소통 문화를 잘 가꿔가려 합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ESC의 새로운 도전,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