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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모험가 집안, 삼대가 몸을 던져 미래를 열다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8. 10. 07:53

과학과학일반

과학 모험가 집안, 삼대가 몸을 던져 미래를 열다

등록 :2016-08-08 10:19수정 :2016-08-08 10:29

[곽노필의 미래창]

성층권·해저 개척한 할아버지
아버지는 1만미터 바다 밑까지
아들은 태양광비행기 세계질주

세계적인 모험가 피카르 집안 3대. 왼쪽부터 1대 오귀스트, 2대 자크, 3대 베르트랑.  솔라임펄스, 위키피디아코먼스 제공
세계적인 모험가 피카르 집안 3대. 왼쪽부터 1대 오귀스트, 2대 자크, 3대 베르트랑. 솔라임펄스, 위키피디아코먼스 제공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비전을 말할 때 즐겨 쓰는 문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미래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 행동의 일환으로 과학에 바탕한 모험 활동을 통해 미래를 개척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한 채 직접 미지의 세상에 뛰어든다. 다음 사람들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서다. 스위스의 과학 모험가인 피카르 집안은 3대에 걸쳐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모험엔 인류의 삶을 개선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

최근 사상 첫 태양광 비행기 세계 일주를 해낸 베르트랑 피카르가 이 집안의 3대다. 그는 기름 한 방울 안 쓰고 태양광 에너지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냉난방 장치도, 만약에 대비한 보조 연료도 없이 극한의 환경을 극복해냈다. 그는 자신의 이번 비행이 화석연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청정 에너지의 효용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피카르 집안의 모험 이력은 그의 할아버지 오귀스트 피카르(1884~1962)에서 시작된다. 오귀스트는 물리학자이자 발명가이자 탐험가였다. 그는 1932년 자신이 발명한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6201미터 성층권까지 올라갔다.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우주선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성층권 여행을 위해 발명한 여압실은 오늘날 우주 탐험의 토대가 됐다.

그는 기구 원리를 대양 해저 탐사에도 적용했다. 그 결과 혁명적인 심해잠수정 바티스카프가 탄생했다. 그는 1953년 3150미터 바다속까지 들어갔다. 심해 탐사의 길을 튼 순간이었이다. 그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높이 날고, 가장 깊이 잠수한 인간이었다. 그는 1931년 이런 어록을 남겼다. “지금 물어야 할 것은 인간이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행성에서 살 수 있는지가 아니다. 지구에서의 삶이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사물들을 체계화해야 하는지다.”

아들 자크(1922~2008)는 해양학자로 평생 바다와 호수 보호에 앞장섰다. 자크는 아버지의 기록을 확장시켰다. 심해잠수정을 타고 1960년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의 1만911미터 바다 밑까지 잠수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신발 밑창처럼 납작한 심해어들을 발견해 세계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그런 깊이에서는 생물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역사적 잠수는 사람들의 잘못된 환경 인식을 바로잡았다. 당시 사람들은 독성 폐기물 해결책으로 바다 깊은 곳에 버리는 방안을 거론하던 참이었다. 그가 확인한 심해어들은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해줬다. 그의 심해잠수정 기술은 미 항공우주국이 우주실험실 ‘스페이스랩’을 만드는 데도 기여를 했다.

3대인 베르트랑 피카르(1958~)가 탐험가의 길을 걷게 된 데는 11살 때 아버지를 따라 ‘아폴로 11호’ 발사 현장을 지켜본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때 그는 우주비행사들의 꿈과 개척정신을 배웠다. 비행에 매료됐던 그는 열기구, 항공기, 글라이더 조종면허를 잇따라 취득했다.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행동에도 관심이 많아 정신과 의사가 됐다. 1999년 3월 드디어 탐험가 집안의 3대답게 열기구로 사상 첫 논스톱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열기구 세계 일주는 그가 태양광 비행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는 질문을 안겨줬다. 그는 열기구 비행 도중 연료가 고갈돼 바다 한가운데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로 비행을 시작했을 때 3.7톤이나 됐던 연료(LPG)는 비행을 마칠 무렵 40킬로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다음번에 세계 일주를 한다면 화석연료가 필요없는 엔진으로, 다시는 연료 게이지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2003년 드디어 태양광 비행기 ‘솔라 임펄스’ 개발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베르트랑은 태양광 비행기 개발에 나선 문제의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20세기의 업적은 남극, 북극, 에베레스트, 바다의 심연, 달을 정복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업적은 정복이 아니라 우리 행성에서 삶의 질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는 것들로 이뤄져야 한다.” 그는 솔라 임펄스의 비전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탐험과 혁신을 통해 재생에너지에 기여하는 것, 지속가능한 발전에 청정기술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 과학 탐험의 심장에 꿈과 정서를 되돌려주는 것.” 그는 비행기가 낮에도 밤에도 연료 없이 날 수 있다면 세상의 동력을 청정에너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태양광 비행기로 지구를 돌기로 했다. 그리고 13년 만에 마침내 해내고야 말았다.

그가 청정기술을 퍼뜨리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던져 그 효용성을 직접 확인해주는 것이다. 피카르는 세계 일주 비행을 마친 직후 환영 인파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항공 역사상 최초가 아니다. 이것은 에너지 역사상 최초다. 10년 안에 우리는 50인승 중거리용 전기항공기를 보게 될 것이다.” 인류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한 그의 다음 여정은 어떤 모험이 될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http://plug.hani.co.kr/fu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