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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변화 위해 온몸 던지는 게 나의 소명” / 유승민 인터뷰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7. 16. 11:40

정치정치일반

“보수 변화 위해 온몸 던지는 게 나의 소명”

등록 :2016-07-16 11:06수정 :2016-07-16 11:15

 

과거엔 이기는 게 정의라고 생각
여당 해보니 이기는 것보다
성공한 정부가 더 중요하다 느껴
내년 대선 출마가능성 열려 있어
도전 감당 판단서면 나갈 것

시대정신은 한마디로 정의 회복
경제 정의, 법치 정의 세우고
기울어진 운동장 평평하게 펴야
이대로면 새누리당 내년 암울
보수개혁 통해 희망 만들어야

원내대표 사퇴 전 대통령 면담 요청
만나서 오해 풀려 했으나 안돼
사적 이익으로 뭉치는 시대 지나
친박도 노선·가치 따라 분화중
단체로 마음 닫혀 있지 않아

대기업 총수 사면복권 안돼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만일 한다면 기본권 보완부터
국정교과서에 찬성 못해
검정과 국정 중 선택권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인터뷰

유승민(58) 새누리당 의원은 원조 친박이지만,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 배신자로 찍혀 원내대표에서 쫓겨났으며, 올 총선 공천에서도 끝내 배제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권력에 굴복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가치를 외치는 등 박 대통령에게 맞섰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정치적으로 망하기는커녕 고향인 대구·경북지역에서 차세대 지도자 1위로 꼽히는 등 오히려 훨씬 커졌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명으로 발돋움한 유 의원을 만나 그의 정치철학과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2시간 동안의 인터뷰 내내 거침이 없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내년 대선 출마 문제뿐 아니라 사드 배치, 개헌론, 재벌의 사면복권, 국정교과서 문제까지 각종 현안에 대한 생각을 시원시원하게 밝혔다. 평소에도 소신파였지만, 지난 1년 동안의 풍상을 겪으면서 정치적 자신감이 더 커졌다는 느낌을 줬다. 유 의원은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대선후보 경선에 나갈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선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이긴 뒤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제가 과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며 선을 넘진 않았다. 그러면서 시대적 과제로는 정의와 공동체 회복을 들었다. 진보 정치인이 내놓는 해법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또 “재벌 총수와 임원을 사면복권 하지 않는 게 제대로 된 재벌정책이다”, “국정교과서 하나만 만들어서 모든 학교가 다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발언도 주저없이 내놓았다. 정책방향이나 철학에서 박근혜 정부 등 여권 주류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정치적 세보다는 민심이 중요하다”는 소신에 따른 선택이겠지만, 정치인 유승민의 ‘보수 개혁’ 노선이 성공할지를 지켜보는 것도 앞으로 펼쳐질 대선 국면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의 유 의원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유 의원께서는 정부에서 발표했을 때 영남지역 배치에 부정적인 견해였던 것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감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남지역 배치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쳤다면 그건 와전된 것이다. 사드 배치는 제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8년 가까이 있으면서 일관되게 요구했다. 어디에 둘 것인가는 군사적으로 고려할 문제인데,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면 평택 미군기지 정도를 보호할 수 있을 뿐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상당 부분은 보호가 안 된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데 정부하고 주한미군이 군사적 문제와 외교적 고려까지 해서 사드 배치 지역을 결정했다고 충분한 설명을 하면 납득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드 배치에 찬성한 사람으로서 특정 지역을 놓고 반대한 것은 전혀 아니다.”

-사드는 군사적으로도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동북아 안정이라는 국제정치적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군사적 효용성은 확실히 있다. 2014년과 2015년에 북한이 쏜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의 궤적을 보면 130~150킬로미터 고도로 날아갔다. 두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면 서울과 제주 등 어디든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종심이 짧고, 스커드나 노동 미사일이 낮은 고도로 날아오기에 사드가 소용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패트리엇 미사일은 종말 단계의 15~20킬로미터 고도에서 맞혀 명중시켜야 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1~2초밖에 없다. 40~150킬로미터 고도에서 명중시키는 사드로 노동이나 스커드 미사일을 대응하면 최소한 2~3분의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 대중, 대러 외교는 진작에 강화해서 사드가 외교적 골칫거리가 안 되도록 했어야 한다.”

“우리 돈으로 사서 운용하는 게 맞다”

-사드가 그렇게 효용성이 있는 무기라면 우리 군이 돈 주고 사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보면 운용도 미군이 하고, 방어 지역도 미군기지 위주다. 그래서 결국 미국 엠디체계의 강화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저는 2014년 11월 대정부질문 때 우리 영토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면 사드를 우리가 사서 통제권을 우리가 가지는 게 맞다고 했다. 남한 전역을 제대로 방어하는 데는 2~3개의 사드 포대가 있으면 된다. 우리가 지금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MD)와 킬 체인 구축에 17조원을 투입하는데, 사드 한 개 포대는 1조5천억~2조원 정도 든다. 4조원가량을 들이더라도 우리 돈으로 사서 운용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맞다고 본다.”

-대구공항과 케이투(K-2) 비행장을 옮기겠다고 정부가 며칠 전에 발표했는데, 이것은 대구·경북지역에 사드를 배치하는 데 대한 민심 달래기용 아닌가?

“그런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두 개는 별개의 문제다. 사드는 국가안보 차원의 사안이고, 케이투 이전은 2007년 대선 때부터 매번 선거 때마다 당이 공약한 숙원사업이었다. 그동안 전국 비행장 주변의 소음에 대한 배상 판결의 50% 이상이 케이투 지역에서 나왔을 정도로 이 지역 소음은 기본적 생활권에 관한 문제였다.”

-지난해 6월 국회법 파동 때 유 의원을 직접 공격했던 박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에서 먼저 케이투 문제를 얘기한 직후에 비행장 이전 발표가 나서 그런 관측이 나오는 것 같다. 오랜만에 박 대통령을 만난 느낌은 어땠나?

“직접 뵙는 것은 1년도 넘었다. 지난해 7월8일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기 직전에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을 꼭 뵙고 싶다고 했는데 면담이 안 됐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직접 소통이 안 돼서 생긴 오해를 사퇴 전에 풀고 싶었다. 당시 저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박근혜 정부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서 60~70점짜리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국회법 개정은 청와대와 서로 체감이 달랐던 것 같지만, 저는 그 정도의 야당 요구는 수용할 수 있다고 봤다. 이번에 뵈었으니 앞으로 시간을 두고 자연스레 원내대표 시절의 일들을 직접 대화하면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으면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고 본다.”

지난해 4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중부담-중복지 사회로 가야 한다는 유 의원의 국회 대표연설은 야당한테서도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연설을 계기로 확실하게 유 의원을 눈 밖에 두기 시작했고, 공무원연금법 및 국회법 개정에 야당과 합의한 것을 문제삼아 “배신의 정치”라며 유 의원을 직접 공격했다. 결국 유 의원은 지난해 7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지난 3월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는 청와대의 뜻을 받든 친박 주류가 유 의원을 끝내 배제함으로써 공천 파동이 빚어졌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 의원은 지난달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주도로 복당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과 비박 간의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불출마 결정을 한 제가 뭐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계파 대결로 전대가 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계파 대결로 전당대회가 치러지면 새 지도부도 계파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기 힘들다. 계파 경쟁이 아니라 노선과 가치, 이념, 정책 이런 것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계파 갈등을 종식하고, 노선 경쟁으로 희망을 주는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

“계파 갈등 인물은 전대 출마 자제해야”

-잘못 가고 있는 전당대회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복당한 지 얼마 안 됐고, 경위가 뭐든 간에 1년 이상 당 갈등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래서 제가 출마하는 것은 맞지 않고, 이번에는 백의종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전대가 계파 갈등의 장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그런 분들은 출마를 자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새누리당 당헌에 따르면 이번에 당대표가 되는 사람은 내년 대선 후보 경선에 못 나온다. 혹시 이번 전당대회 불출마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닌가?

“우리 당헌 당규가 1년6개월 전에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도록 돼 있으니, (제가)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제가 결심을 한 것은 전혀 아니다. 또 전대 불출마를 대선만 보고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복당이 이렇게 빨리 될지 몰랐다. 저는 연말까지도 참고 인내할 참이었다.”

-며칠 전에 대선 출마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얘기했는데 어떤 점이 고민인가?

“정치권에 들어온 뒤 16년 동안 야당도 여당도 해봤는데, 야당 때는 대선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때는 이기는 게 정의라고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2007년 승리한 이후 지금까지 지내면서 이기는 것보다는 이긴 뒤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가졌다. 국민에게 지지를 충분히 못 받는 국정 운영이 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같이 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괴감과 책임감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2017년에 뽑히는 대통령은 그동안 수십년간 쌓여온 경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다음 대통령한테는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는 개혁 정신이나 개혁 에너지, 고통받는 국민에게 국가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공감과 열정 등의 덕목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제가 과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느냐, 또 저의 지지자들이나 새누리당이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다. 그 고민을 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치열하게 고민해보고, 스스로 그런 도전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결심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못하는 것이다.”

-언제쯤 고민을 마무리할 건가?

“최소한 연말까지는 깊이 고민하고, 다른 분들 이야기도 들어볼 계획이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보나?

“한마디로 정의다. 우선,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하는 경제 정의가 시급하다. 기회와 희망의 사다리를 다시 만들어드리는 시장 개혁, 노동 및 교육, 복지 개혁도 경제 정의의 범주에 들어간다. 또, 헌법 11조에 규정돼 있는 법치도 정의다. 불공정과 부조리, 부패한 부분을 법을 통해 바로잡는 것도 국민들이 갈망하고 있다. 그런 것을 다 포괄하는 것이 정의다.”

“반기문 출마 긍정적으로 본다”

-지금 당내 주류인 친박계는 대선후보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많다. 반 총장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그분이 출마할지, 친박계가 미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 최대한 많은 분이 나와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반 총장의 (우리 당 후보 경선) 출마를 긍정적으로 본다.”

-친박계가 유 의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는데, 대선 경선에 출마하게 되면 그 부분이 걸림돌이 아닌가?

“저는 지금까지 정치적 계산을 하거나 흥정을 했던 적은 별로 없다. 특정 계파에 대한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노선과 정책 경쟁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계파 갈등에서 노선 경쟁으로 전환하면 정치적으로도 당 안에서 지지하는 분들을 아우를 수 있다. 또 친박이라는 계파도 내부가 이제 다양하고, 노선과 가치 등을 두고 분화할 가능성이 높다. 친박이 단체로 마음이 닫혀 있다고 본 적이 없다. 저는 낙관적이다.”

-유 의원은 꼿꼿하고 선명하지만, 세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것은 옛날 정치에나 통하는 주장이다. 예전처럼 공천이나 다른 사적인 이득을 갖고 계파 형성하고 뭉치는 시대는 지났다. 명분이나 철학 없이 계산에 의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더라. 앞으로는 결국 민심이 중요하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당원들은 의원들보다 앞서가는 투표를 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 대해서는 여당이 힘들 거라고 전망했는데 근거는 뭔가?

“지난 총선 결과로 보면 (대선이) 암울하다. 우리가 변화를 위해 몸부림쳐도 어려울 수 있는데 총선 이후에도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신뢰를 전혀 주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본다. 보수개혁을 반드시 해야 할 상황이다. 개혁을 통해 희망을 만드는 것이 저를 포함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임무다.”

-대선에서 3자 구도가 되면 총선과 달리 새누리당이 유리하다는 분석도 많이 있지 않은가?

“총선 민심은 기존 두 개 정당, 특히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그대로 드러냈다. 2자 구도니 3자 구도니 하는 식의 정치공학적 계산을 하면 안 된다. 그런 구도를 잊고 우리 내부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새누리당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

-무소속이 된 김에 새로운 정치를 위해 신당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복당을 고집했나?

“저한테 왜 새누리당에 다시 가려고 하느냐, 거기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자고 하는 분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나 저는 전혀 한눈을 팔지 않았다. 그것은 이 당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 때문이다. 2000년 2월 입당한 뒤에 저에겐 이 당이 제 집이란 생각이 강하다. 내 집에 문제가 생겼다고 집을 버릴 수는 없지 않나.

더 중요한 것은 보수 개혁에 대한 꿈이다. 저는 보수가 바뀌면 한국이 바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진보가 급진적인 개혁을 하면 보수가 저항한다. 반대로 보수가 합리적인 진보가 주장하는 쪽으로 개혁을 하면 합의가 쉽고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따라서 보수의 변화가 정말 중요하다. 정치를 하는 한 보수 변화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게 저의 정치적 소명이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어찌 유혹에 빠져서 다른 곳을 기웃거리겠나.”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을 치르면서 개혁적인 인재 풀이 굉장히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당 개혁이 가능하겠는가?

“의원들의 인적 구성으로 보면 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19대 국회보다 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에는 의원 129명만 있는 게 아니다. 당협위원장이 있고, 당원 동지들이 있다. 또 지금은 침묵하고 있을지 몰라도 국회에 새로 들어온 분 중에도 지금의 새누리당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공감하는 분들도 많다. 이 정권이 임기 말로 갈수록, 대선이 다가올수록 그런 자각이 늘어날 것이다. 이들과 앞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공감대를 넓혀갈 생각이다. 그 길을 안 가면 희망이 없다.”

“대기업 총수 사면복권 옳지 않아”

-유 의원께서는 지금 개혁적 보수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는 줄푸세 공약(‘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우자’는 2007년 박근혜 대선후보가 내건 공약의 약칭)의 입안자로 알려져 있는 등 다른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저는 학자든 정치인 시절이든 시장지상주의에 빠졌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초기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세울 때 학자로서 재벌 개혁 문제 등에 관여했는데 당시 제 발제문에 전경련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저는 늘 보수 개혁을 생각해왔다. 그 생각을 대중에게 처음 밝힌 것이 2011년 전당대회 출마문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시장경제는 재벌이 지배하고, 갑을관계가 지배하는,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에서 선수들한테 열심히 뛰어보라고 하는 상태다. 이걸 일부 대기업이나 대기업 연구소에서는 자유시장경제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진정한 시장경제주의자라면 시장 자체를 개혁해서 평평한 운동장으로 만들어놓고 사람들한테 창의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라고 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왜곡된 시장경제를 그대로 둔 채 단기적으로 돈만 풀어 경기부양을 시키는 정책이라든가 경제성장 해법을 찾는 것에 저는 동의할 수 없다.

조금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저희 할아버지는 경북 영주의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분이다. 삼형제를 뒀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저희 아버지만 중·고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저도 자연적인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교육 혜택을 받았다. 롤스가 정의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가 받은 혜택을 불리한 처지에 있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이 사회정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분명히 하고픈 것은 줄푸세는 제가 만든 게 아니다. 당시 캠프 내부에서 줄푸세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으며, 저는 감세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냈다.”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 때 유 의원은 각각 이회창 후보 캠프와 박근혜 당내 경선후보 캠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두 후보 모두 중도보다 훨씬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고, 당시 당 안에서도 우경화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유 의원은 이에 대해 “제가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 제 생각이 100%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따뜻한 보수’를 2011년 전당대회에서 전면에 내걸게 된 계기가 있었나?

“1995년부터 지역구 의원이 되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만나 대화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렵게 사는 서민들이 이렇게 지지해주는데 우리는 대체 이들을 위해 뭘 했나를 생각했다. 제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고, 지역구 의원을 하면서 처음의 생각과 시각을 넓혀갔다고 본다.”

-재벌개혁을 언급했는데, 이번 8·15 특별사면에 재벌 총수들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대기업 총수라고 해서 사면복권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일관되게 이야기했다. 그들을 사면복권 해야 경제가 살고, 김영란법 하면 경제가 죽는다는 논리에 대해 저는 늘 거부해왔다. 재벌 총수나 임원들에 대한 사면복권을 안 하는 게 제대로 된 재벌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김영란법은 충격적인 법일 수 있으나, 어떤 영역이든 부패한 나라가 경제 선진국이 된 사례가 없다.”

“세종시로 국회 이전은 검토할 만”

-정치권에서 개헌 주장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개헌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쉽게 될 것 같지 않다. 만약에 고친다면 권력 구조만 바꾸는 개헌에는 반대한다. 국민 기본권과 경제, 사회, 노동, 복지 부분에 대한 전반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거기 대해서 지금 충분한 검토가 안 되어 있는 거 아니냐.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가 맞다고 본다. 5년 단임제의 폐해만 지금 너무 많이 부각해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의 권력 분산이 좋다고들 하는데 그 경우 재벌의 영향력 행사나 정권의 불안정성 등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 같다. 통일이 되고 우리 경제·사회가 선진국 수준이 될 때까지는 내각제는 우리 실정에 안 맞는다고 본다.”

-세종시로 청와대와 국회를 이전하자는 목소리도 정치권에서 나오는데.

“현재의 비효율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는 있지만, 나머지 부처와 청와대, 국회까지 세종시로 옮기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저는 아직 자신이 없다. 국회 옮기는 것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도 주요한 사회 이슈이다.

“이미 진행 중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국정교과서 하나만 만들어서 모든 학교가 다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에는 찬성할 수 없다. 검정교과서에 문제가 많다면 국정교과서를 만들 수는 있지만, 국정과 검정 중에서 채택하는 문제는 학교에 맡기는 방식이 낫다고 본다. 무엇보다 검정교과서의 오류가 심각했다면 정부가 허가 과정에서 바로잡을 문제였다. 안타깝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꿈꾸는 정치인상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의로운 세상과 따듯한 공동체를 만들려고 보수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만족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롤스의 정의론 입문>(F. 러벳),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공화주의>(모리치오 비롤리), <공존의 정치>(김경희) 등이 손때 묻은 채로 그의 책상에 쌓여 있었다. 버니 샌더스에 관한 원서도 눈에 띄었다.

◇관련기사
▶이빨 빠지게 ‘헌신’했으나 돌아온 건 ‘홀대’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유승민 의원의 책상에는 그가 최근 읽은 책 <공화주의>가 놓여 있다. 그는 이 책을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읽고 싶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승민 의원의 책상에는 그가 최근 읽은 책 <공화주의>가 놓여 있다. 그는 이 책을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읽고 싶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회 의원회관 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책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회 의원회관 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책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치정치일반

이빨 빠지게 ‘헌신’했으나 돌아온 건 ‘홀대’

등록 :2016-07-16 11:08

 

최경환 안종범 강석훈 등 친박 실세
2004년 전후 유승민이 데려와
박, ‘바른말’ 유보다 최를 더 총애
2011년 독자 노선 본격화

원조 친박에서 ‘핍박’으로

유승민은 원래 ‘이회창 사람’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 시절 경제정책을 놓고 김대중 정부와 충돌하던 그를 2000년 2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이회창은 해박한 경제 지식과 명쾌한 논리, 꼿꼿한 성품을 가진 젊은 유승민을 아주 가까이 뒀다.

2002년 대선에서 진 뒤 뒷전으로 물러나 있던 그는 2004년 탄핵 역풍으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얼굴로 등장하면서 다시 중앙무대로 나왔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여권 인사는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인 박세일한테 박근혜가 단 한명을 부탁했는데 그가 바로 유승민이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13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처음 듣는 얘기로, 내가 비례대표 의원이 된 내막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유승민은 박근혜 체제에서 승승장구했다. 2005년 1월 초선인 유승민은 당 대표 비서실장에 발탁된다. 그는 당시 사무총장이던 김무성과 함께 박근혜 체제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었다.

이 시절 유승민은 각계의 전문가들을 박근혜 쪽으로 끌어들였다. 최경환, 안종범, 강석훈, 이혜훈, 이종훈 등 이른바 원조 친박 인사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원래 유승민이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일할 때 이회창을 돕기 위해 모은 각계 전문가 그룹 중 일부였다. ‘도덕성이 강한 박근혜가 이명박보다 낫다’는 유승민의 설득에 대부분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지만, 박재완, 이주호 등은 이명박 쪽으로 갔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까지 박근혜에 대한 유승민의 ‘헌신’은 놀라울 정도였다. 2005년 10월 대구 동을 재선거에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후보인 이강철을 이기는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이 한명도 없자, 박근혜는 유승민을 차출했다. 여론조사에서 다소 뒤지는 것으로 나왔는데도 그는 두말없이 이를 수용했다. 경쟁 진영인 이명박 쪽을 꺾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었다는 그는 경선이 끝난 뒤 이빨이 여러 개 빠져서 임플란트를 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를 ‘홀대’했다. 2007년 경선 캠프를 짜면서 정치 경력 면에서 유승민보다 훨씬 뒤처지는 최경환을 종합상황실장에 앉힌 반면에 유승민은 그 아래인 정책메시지총괄단장으로 임명했다. 게다가 2007년 대선이 끝난 뒤 이명박 정부에서 최경환에게는 지식경제부 장관 자리를 받도록 허락한 반면에 유승민에게는 아무런 당직도 맡지 못하게 막았다. 유와 최의 서열을 바꾼 것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보스한테 싫은 소리를 절대로 하지 않는 최경환과 달리 유승민은 꼬장꼬장하게 할 소리를 다 했는데 이런 점이 거북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07년 대선이 끝난 다음부터는 박근혜의 곁에 유승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2011년 전당대회 때도 그는 박근혜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대선 때는 후보 캠프에 유승민이 사실상 없었다. 2015년 2월 원내대표 경선은 친박계와 대척점에 섰다. 유승민은 청와대와 친박이 미는 이주영-홍문종 조에게 맞서 싸웠다. 지난해 7월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박근혜-유승민의 정면 대결, 올해 초 공천 파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와 유승민 두 사람은 선대 때부터 악연이 있었다. 유승민의 선친인 유수호(2015년 작고)는 부산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8월 당시 울산시장 윤동수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윤동수는 그해 4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 개표 때 공화당 후보 박정희에게 유리하도록 개표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학내 시위를 주도했던 부산대 총학생회장 김정길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을 허가했다. 이로 인해 그는 19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유승민은 자신이 정치에 입문할 때 선친이 “의협심을 가져라. 절대 비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